스웨덴 국립 미술관은 스톡홀름 중심부의 Blasieholmen에 위치하고 있다. 1792년 왕실 박물관으로 설립되었다. 현재 건물은 1866년 개관하여 국립미술관으로 개칭했다. 1844년에서 1866년 지어진 현재 건물은 북부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 양식에서 영감을 받았다.
11월 4일(현지시각) 오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높은 천장과 함께 양옆으로 그려진 벽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초상화를 그리고, 조각상을 만드는 그림이었다. 들어가니 중앙에는 기념품 샵이 있었다. 왼쪽으로는 식당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유모차와 휠체어가 많이 있었다. 어떤 곳인지 들여다보니, 아이들을 위한 키즈 아뜰리에 공간이었다.
아뜰리에 실 앞에는 한 여성이 입구에서 등록을 받고 있었다. 현장에서 바로 등록해서 참여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안내 데스크에서 신청하고 이곳으로 시간에 맞춰 오면 된다고 했다. 국립 미술관 입장도 무료인 데다 키즈 아뜰리에도 무료다. 예약도 따라 하지 않아도 된다. 파리의 경우, 키즈 아뜰리에 예약은 필수며, 비용도 지불한다. 스웨덴은 아이들에게 자연뿐 아니라 문화예술적으로도 매우 친화적인 환경이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시대별로 나뉜 갤러리가 있었다.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회화, 조각, 그림, 그래픽, 사진, 디자인 등이 연대기별로 구성되어 있다. 상설 전시는 무료이며, 특별 전시는 유료다. 특별 전시는 파리 초상화라는 주제로 진행되고 있었다. 노르딕 뮤지엄에서도 파리 패션 스타일에 관한 특별전이 하고 있는 등 스톡홀름 미술관 곳곳에는 프랑스 및 파리와 관련된 전시가 많이 열리고 있다. 상설 전시만 봐도 시간이 꽤 걸린다. 물론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에 비교하자면 규모가 작다. 하지만 스웨덴 미술의 역사를 알기에는 충분하다. 규모가 방대하지 않으니 오히려 그림을 감상하는데 마음도 편했다.
먼저, 1800-1870년이라고 적힌 갤러리에 들어갔다. 갤러리는 온통 노란색이다. 스톡홀름 날씨가 우중충했는데, 창문에 커튼을 쳐서 갤러리는 더욱 어두웠다. 커튼을 열면 밖에 풍경도 보고 좋을 것 같은데 모든 커튼을 다 내려놔서 조금 의아했다.
루브르를 포함해서 파리에 있는 미술관들은 커다란 창문 너머로 햇빛이 잘 들어올 수 있도록 하며, 창 밖 풍경도 함께 볼 수 있도록 해놓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상주의 근원지답게 파리 미술관은 자연 햇살 및 채광을 중요시 한다면, 스웨덴은 채광이 덜하며, 다소 어둡고 은은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종 레스토랑도 대부분 양초를 많이 켜놨다. 양초 빛으로 실내 분위기를 낼 뿐, 밝은 조명을 사용하지 않는 편이었다. 밝고 화려한 것보다는 은은하고 차분한 것을 좋아하는 국민성이 있나보다.
물과 바다 및 자연으로 뒤덮인 스웨덴인만큼 이를 주제로 한 그림이 많았다. 국립미술관 관람 중에서 몇몇 회화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이끌리거나, 편안해진 그림들이 있었다. 밤에 물에 비친 달빛, 배를 타고 가는 가족들, 물에 비친 북유럽 특유의 높이 솟은 나무들에 한참을 서 있었다.
주로 스웨덴 회화가 많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다른 유럽 국가 회화도 많았는데, 그중에서 프랑스 작품이 많았다. 프랑스 작품 중,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The Parisian(1883)이 눈에 들어왔다. 모델은 파리지엔 Ellen André이며, 노동자 계급으로 모델, 점원, 웨이트리스, 매춘부 등의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그녀는 외모와 패션에 특히 신경을 썼으며,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했다. 그 당시 이러한 여성들은 소비 사회에서 우상이자 동시에 금기로 여겨졌다.
가장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그림은 바로 Berthe Morisot(1841-1895)의 In the Bois de Boulogne(1870s)이다. 모리소는 야외에서 그리는 독특한 스케치 기법과 눈에 띄는 컬러감으로 인상주의 전시에서 당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녀는 당시 부르쥬아 계급 여성들의 규범에 높은 관심과 함께 이 그림에서는 긴밀한 모녀 관계를 그렸다. 브르주아 계급 여성들은 그 당시 행동반경이 백화점, 극장, 레스토랑, 공원 등으로 극히 제한적이었다.
오랫동안 응시한 이유는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이 바로 볼로뉴 숲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볼로뉴 숲 바로 옆에 사는 나는 이 그림을 오래 들여다봤다. 그 당시 볼로뉴 숲은 브르주아들이 즐기는 그런 곳이었을까? 늘 걷는 볼로뉴 숲을 거닐때, 이 그림을 떠올리며 그녀들의 발자취를 다시 한번 느껴봐야겠다.
엄마와 딸로 보이는 여성 둘은 숲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성으로서 지녀야 할 행동에 대해 엄마는 딸에게 가르치고 있는 듯 하다. 어느 스웨덴 모녀가 함께 그림을 보고 있었다. 엄마는 딸에게 그림을 설명하고 있었다.
1960년대 유럽은 경제 성장이 활발했고, 대량 생산, 산업화가 붐을 이루었다. 동시에 사람들은 대량 생산에 반대하는 소규모 생산, 수공예 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디자인 영역에 있어 자유의 바람이 불었다. 1970년대 환경 운동 바람이 불면서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며, 수공예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20세기 중반부터 스웨덴은 디자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산업화 및 대량 생산에 반대하는 운동과 함께 스웨덴 사람들은 환경, 지속 가능한 성장, 지역 생산, 수공예 및 소규모 생산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새로운 소재 및 기술 개발을 통해 디자인이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여겼다. 스웨덴 정부는 2005년을 디자인의 해로 공식 선포한 바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수공예 및 지역 소규모 생산이 급격히 성장했다.
국립미술관 지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화장실 구조 및 디자인이 눈에 띄었다. 구스타비언 스타일의 특징 중 하나인 대칭적 디자인 및 깔끔한 선이 있는 원목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화장실조차도 은은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구스타비언(Gustavian) 스타일은 구스타비언 시대에 스웨덴 건축, 장식 및 공예 등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스타일을 말한다. 이는 프랑스 네오고전주의에 영향을 받아 1780년대 만들어졌으며, 구스타프 3세 왕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스웨덴 디자인은 기능과 아름다움을 결합하고자 하는 미니멀하고 깔끔한 접근 방식이 특징이다.
한 켠에는 도서관도 잘 구비되어 있었다. 각종 뮤지엄의 공통된 특징은 키즈 룸과 도서관을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국립미술관 내 도서관은 매우 아늑한 디자인으로 설계되었으며, 동시에 예술문화 관련 서적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