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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Dec 20. 2022

르노 카퓌송 연주회와 월드컵 결승전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 박지윤 바이올리니스트

12 18 오후 4(지시각), 라디오 프랑스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송(Renaud Capuçon) 연주회가 있었다. 그는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의 친형이다. 음악가 형제이다. 한국에서는 피아니스트 임동민, 임동혁 형제를 음악가 형제로 꼽을  있다. 그의 연주를 보기 위해 몇일  표를 예매했다. 그런데 같은 , 같은 시각 프랑스 아르헨티나 월드컵 결승전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라디오 프랑스 측으로부터  의 이메일을 받았다. 월드컵 결승전 시각과 연주회가 겹치니 그날 교통 혼잡을 예상하시고 시간 맞춰 도착하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12 18 오전 11 , 우리 가족은 차를 타고 라파예트  쁘랭땅 백화점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러 아이와 함께 갔다. 올해 라파예트 백화점의 콘셉트는 사팡(Sapin, 크리스마스 트리에 쓰이는 나무)이다. 사팡을 의인화해서 표현했다. 쇼윈도에는 사팡이 사람처럼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며 움직였다. 쁘랭땅 백화점 콘셉트는 서커스다. 쁘랭땅 백화점 실내를 걷고 있는데, 전자 기기 판매 매장에 오락 기기 3대가 놓여있었다. 무료로   있게 되어 있었다.   많이 하던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이었다. 아이는 보자마자 게임기에 꽂혀서 시간 가는  모르고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또 다시 매장에 찾아가서 게임을 했다. 나는 아이가 이렇게 집중하며 열을 올리며 하는 모습을 보고 그냥 놔뒀다. 그러다가 시간은 흘렀고, 어느새 오후 3시가 넘었다. 오후 3 20분쯤 이곳을 빠져나왔다.


라파예트 및 쁘랭땅 백화점 크리스마스 장식. 출처: 모니카
쁘랭땅 백화점에 설치되어 있는 게임기. 출처: 모니카


 안에서 나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마들렌 성당 앞은 차로  막혔다. 콩코드 광장까지 차는 앞으로  생각이 없었다. 거리에 온통 차로 가득했고, 오후 4 축구 경기를 보러 가는 차들인지 다들 급한 모양이었다. 식당  호프집, 카페 곳곳에서는 축구 결승전을 보기 사람들로 가득했다. 오후 3 35. 나는 혼자 계속 궁시렁댔다. 아이한테 직접적으로 화를 지는 않았지만 그냥 차창 밖을 바라보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혼잣말하듯 계속 궁시렁궁시렁댔다. 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은 불가피하게  들리기 마련.


" 게임을 해서  야단일까. 나는 여유 있게 음악회 가고 싶은데  이렇게 급하게 마음 졸이며 가네.” 괜히 애꿎은 아이와 신랑에게 화살이 돌아갔다. 게임만  했어도 늦지 않았다는 그런 뉘앙스였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아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내가 음악회가 있다고 재촉했어야 했다. 말하지 않고, 그저 아이가 게임을 하도록 놔뒀다. 심지어 집중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놓고는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 가자고 말하지 않았으니 아이는 엄마가 음악회가 있는지, 급한지  턱이 없다. 자신의 자신의 본능과 열정에 충실했을 뿐이다.


늦게 출발해놓고는 늦었다고 혼자 열을 내고 있었다. 신랑은 속도를 냈다. 이렇다 사고가 날 수도 있다. 그래서 속도를 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반, 음악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반으로 혼란스러웠다. 음악회에 여유 있게 가지 않고, 분주하게 마음 졸이며 가는 이 상황이 싫을 뿐이었다. 라디오 프랑스 건물 앞에 오후 3시 58분에 도착했다. 바로 뛰어 들어갔다. 오후 4시가 넘어서도 사람들은 들어왔다. 오후 4시 5분쯤부터 연주회가 시작됐다. 객석은 많이 찼는데, 주로 중년 노인들이었다. 젊은이들은 다들 축구 보러 갔나 보다. 대게 음악회에 가면 중년 노인분들이 많이 온다. 이 날도 그랬다. 쉬는 시간 없이 1시간 연주했다. 실내악이었다. 르노 카퓌송이 오른쪽에 앉아있고, 그 외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등 다른 악기와 함께 5~6명이 함께 연주했다.


그중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 연주자였다. 4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박지윤 씨는 소년한국일보 콩쿠르 대상, 조선일보 콩쿠르 1위로 두각을 드러냈다. 2000년 예원학교 3학년 재학 중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으며, 그 이듬해 프랑스의 Concours des jeunes interpretes에서 우승하고 2002년 파리 고등 국립음악원에 입학하여 로랑 도가 레일을 사사했다. 2004년, 바딤 레핀, 장 자크 캉 토로프, 김남윤을 배출한 티보 바르가 콩쿠르에서 18세의 나이로 1위 및 청중상을 석권한 그녀는 2005 롱티보 콩쿠르, 2009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입상했다. 2018년 11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종신 악장으로 임명되며 명실공히 프랑스 최고의 관현악단을 이끄는 첫 동양인 악장이 되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괜히 내가 다 뿌듯했다.


박지윤 바이올리니스트가 르노 카퓌송 옆에 나란히 앉아서 함께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었다. 둘 다 연주 솜씨가 훌륭했다. 1부는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단원 중 4명과 함께 연주를 했고, 2부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중 6명과 함께 연주했다. 연주곡은 모차르트의 Quintette pour clarinette et cordes와 슈트라우스의 Métamorphoses를 연주했다.


르노 카퓌송과 박지윤 바이올리니스트가 보인다. 출처: 모니카


아쉽게도 1시간 동안 음악에 집중하지는 못했다. 미리 도착해서 여유 있게 들어와서 음악회를 편안하게 감상했야 하는데, 부랴부랴 마음 졸이면서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으며, 차 안에서 나쁜 에너지를 뿜어냈기 때문에 그 죄책감으로 인해 1시간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30분이 넘어가자 혹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을까 걱정도 되었다. 오만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연주회가 끝났고, 바로 연주회장을 급히 빠져나왔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두 남자는 라디오 프랑스 로비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해맑게 웃으면서 나를 반겨주었다. 아무 일이 없어서 감사한 마음과 함께 미안함이 배로 올라왔다. 주변에 차를 세워 놓고 주변을 걷다가, 근처 쇼핑몰에 들러 잠시 구경하다가, 급하게 간 나를 되려 안심시키려고 미리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엄마"하며 해맑게 웃어줬다. 아이를 와락 감싸 안으며, "엄마가 미안해. 아까 엄마가 화 내서 미안해. 너 잘못이 아니야. 엄마가 다 잘못한 거야. 엄마 책임인데 남 탓해서 미안해." 아이는 언제 그런 말을 들었냐는 듯 웃으면서 나를 안아줬다. 역시 아이가 나보다 큰 사람이다. 아이가 나의 스승이다. 아이가 나의 어둠을 비춰주는 빛이다.


우리는 라디오 프랑스 근처를 조금 걸었다. 이전에 살던 동네다. 자주 이곳을 지나다녔다. 아이가 다녔던 어린이집도 지나갔다. 유모차를 끌고 드나들었던 어린이집을 이제는 이렇게나 커서 우산을 한 손에 들고서 어린이집 건물 앞을 지나간다.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파리의 겨울. 근처에서 디저트를 사서 집으로 향한다.


여전히 아르헨티나가 2골을 넣어 이기고 있는 상황이다. 프랑스는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있었다. 차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시곗바늘은 오후 6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거의 끝날 무렵이다. 자동적으로 리모컨을 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파리 16구 라디오 프랑스에서 뇌이쉬르센까지 차를 타고 이동한 약 15분 간의 시간 동안 프랑스가 2골을 넣었다. 80분, 82분에 음바페가 넣은 골이다. 나는 아이에게 "이것이 인생이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쎄라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끝나갈 무렵 한 골도 아닌 무려 두 골을 넣었다. 흥미진진한 상황이 연출됐다. 각본 없는 드라마다. 연장전에 메시가 한 골을 추가로 넣었다. 3 대 2.


그렇다가 음바페의 페널티킥으로 1골 추가. 3 대 3. 아마도 이 시간 프랑스 곳곳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오고 있을 테다. 다들 두 손 모으고 조마조마한 상황. 결국 승부차기. 세계 1등은 아무나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결승전 다운 경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아이는 프랑스를 응원했지만 나는 아르헨티나를 응원했다. 프랑스에 사니까 프랑스를 응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조금 달랐다. 물론 어느 나라가 이겨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 조금 더 마음이 기울었다. 사실 모로코 프랑스 경기 때도 모로코가 내심 이겼으면 했다.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국가의 설움을 스포츠로 이겨내면 좋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모로코가 4강에 올라왔을때 이곳은 뉴스로 도배됐다. 모로코인들은 좋아서 난리났다. 모로코 출신 F에게 축하한다고 전했다. 아이 반에는 모로코 출신 아이들이 있다. 아이 친한 여자 친구 중에 아빠는 프랑스인, 엄마는 모로코인이 있다. 피가 반반 섞인 딸은 어느 나라를 응원해야 했을까.


아이는 왜 아르헨티나를 응원하냐고 물었다. 3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아르헨티나는 프랑스보다 잘 살지는 못하다. 프랑스도 경제적으로 어렵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경제적, 정치적으로 아르헨티나가 더 어렵기 때문에 이번에 상이라도 안겨줘서 나라의 사기를 북돋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톡파원 25시라는 방송에서 우연히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봤다.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이 카타르 월드컵에서 프랑스만 빼고 어느 나라가 일등해도 괜찮다고 했다. 사회자가 그 이유를 물으니 프랑스인은 너무 잘난 척을 해서 우승하면 4년 내내 월드컵 우승 자랑하는 얘기를 들어야 한다는 농담 섞인 발언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공감했다. 셋째, 지난번 우승국이 프랑스였으니, 이번에는 다른 나라에게 줘도 좋다는 생각이다. 승리의 여신은 아르헨티나를 선택했다. 축구 선수 이름이 메씨(Messi)인데 프랑스어로 고맙다는 표현인 멕씨(Merci)와 발음이 매우 비슷하다. 멕씨 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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