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니카 Feb 15. 2023

동치미로 통한 우정

이란에서 온 그녀

2022년 9월, 초등학교 입학 첫날 교문 앞에 삼삼오오 모여든 학부모와 아이들. A 엄마 S는 나를 보더니, "며칠 후 우리 아이 생일인데, 그때 우진이 초대할게요. 근데 유일한 남자아이예요. 호호" 그러면서 곁에 있는 다른 엄마에게 나를 소개했다. "한국에서 온 모니카인데, 글을 써요." 그녀의 매너 있고, 배려 깊은 말투와 행동에 호감이 갔다. 그녀는 이란계 출신으로 젊은 시절 프랑스에 유학 와서 프랑스인과 결혼해서 현재 20년 넘게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워킹맘이다. 유치원 때에도 아이 둘은 같은 반이었지만, 서로 친한 친구가 달라서인지 그동안 큰 왕래는 없었다. 하지만 A가 집에서는 종종 자기 엄마에게 우진이 얘기를 했던 모양이다. 나는 "여자 친구 생일에 유일하게 초대받은 남자아이라니 영광이네요."라고 수줍게 웃으며 답했다. 그녀는 딸이 우진이란 남자아이가 자기를 잘 챙겨주고, 도와준다고 자기에게 자주 말한다고 했다. 대게 자기 딸은 여자 아이들하고만 노는데, 우진이는 여자 친구처럼 거리낌 없어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이가 학교에서 여자 친구들을 도와준다는 말에 고마웠다. 나는 아이에게 종종 말한다. "젠틀맨이란 여자를 먼저 챙기고 보호하는 남자야. 우진아, 남자는 말이야 젠틀맨이 되어야 해."라고...


그렇더니 S는 내게 다음 주 일요일에 시간이 되냐고 물었다. 우리 집 식구를 자기 집에 초대하고 싶다는 것이다. 가볍게 티 타임을 가지자는 제안에 나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은 시작되었다. 김밥과 맵지 않은 김치전을 만들어 갔다. 차와 함께 먹을 쿠키를 사서 우리 가족 세명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S의 집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정성스레 준비한 다과와 함께 우리 가족을 환대해 주었다. 집에는 온갖 장식품으로 가득했다. 그녀의 취향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장식품 중에 일본 관련 제품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일본을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그랑제꼴 HEC 출신의 물리학 박사인 그녀는 업무 관련해서 일본 출장을 많이 다녔다고 했다. 한국도 출장을 간 적이 있는데, 일본을 더 많이 갔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일본 문화, 일본 사람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됐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그녀는 한국 사람 앞에 두고 일본에 대해 너무 찬양하는 게 실례라며 미안해했다. 나는 그녀에게 괜찮다고 얼마든지 일본 얘기를 해도 된다고 했다. 나도 알고 지내는 가까운 일본인 친구가 있고, 역사적인 것과 개인적인 취향은 다른 것이라며 일본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이란에서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자기 나라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최근 이란 관련해서 뉴스가 많이 나와서 관심 있게 이 나라를 살펴봤다. 여성 인권이 높지 않은 나라였다. 정부에 반하는 발언을 해서 죽음을 당했다는 무시무시한 뉴스도 봤다. 나는 최근 이러한 이란 정부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자기 나라에 대해 좋지 않게 평가했다. 자신은 이러한 여성의 권리가 무참히 짓밟히는 나라를 떠나고 싶었고, 그중 프랑스라는 나라가 어릴 적부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실제 프랑스에는 이란에서 온 고학력 출신자들이 증가 추세이다. 그들은 자기 나라를 떠나 자유를 찾아 이곳에 정착해서 살고 있다. S도 이곳에서 그랑제꼴 졸업 후 고소득자로 살며 안정적으로 터전을 마련했다. 그녀는 일본 문화가 이란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관심이 간다고도 했다. 일본도 여성이 목소리를 크게 내기 어려운 사회이며, 남성 중심의 사회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또한, 일로 알게 되어 연락하고 지내는 모 기업 임원인 한국 여성이 있는데 그녀는 커리어에서도 자녀 양육에서도 둘 다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며 그녀를 존경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S는 한국인들의 빠르고 정확한 업무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S는 자녀 교육열도 높은 편인데 이란 엄마들도 한국 엄마들처럼 교육열이 높은 편이라 했다.


여자 친구 A 생일에 초대된 유일한 남자 아이/ A 동생 M과도 잘 논다./ M과 둘이 같이 할로윈 파티에 참가. 출처: 모니카


나는 프랑스 육아, 교육, 문화예술 관련해서 글을 쓰고 있다고 하니 그녀는 내 관심사를 재빨리 파악하고, 이에 맞는 책을 보여줬다. 교육 및 문화예술 관련 정보가 있으면 내게 알려줬다. 그녀는 주얼리에 관심이 많으며, 은퇴하고 나면 주얼리 관련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더니 자기 책장에 있는 샤넬 책을 내게 줬다. 나는 극구 괜찮다고 했지만,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첫 만남에 우리 둘은 서로의 관심사를 나누며 공통점을 하나씩 발견해 나갔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녀에게 책을 돌려주려는데 이 책을 기념으로 내게 주고 싶다고 했다. 그 후 그녀와 자주 연락을 하며, 종종 서로의 집을 왕래하며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정이 많고, 배려가 몸에 베였으며, 친절하고 상냥한 여성이었다. 그녀의 집에 가면 늘 맛있는 것을 내어주고, 환영했다. 집에 돌아갈 때면 뭐라도 손에 쥐어주며 빈손으로 보내는 법이 없었다. 만날 때마다 내게 이런저런 먹을 것부터 시작해서 각종 소소한 선물을 줘서 우리 집안 곳곳에 그녀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2022년 여름, 그녀의 친정 엄마가 이곳에 오래 있다 가셨는데, 그때 만들어 놓고 가신 이란 음식을 내게 주었다. 맛은 한국 동치미와 비슷한 맛이었다. 나는 동치미를 좋아한다. 프랑스에서 맛보는 동치미라니! 모과 절임, 각종 야채와 닭고기를 마요네즈와 계란에 버무린 샐러드 등 이란 음식이라며 다양하게 주는데, 맛이 꼭 한국 음식과 흡사했다. 모과 절임은 유자차 같고, 샐러드는 한국식 계란 마요네즈 가득 넣은 샐러드맛과 비슷했다. 쌀을 먹는다는 것도 비슷한 문화다. 한국 음식과 이란 음식은 공통점이 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하니 또 한 병 가득히 건네줬다. 나는 극구 사양했지만 그녀의 고집도 대단했다. 끝끝내 받은 나는 맛있게 먹었다. 우리 집에 그녀의 가족을 초대해서 잡채와 각종 만두, 김밥을 만들어 선보였다. 그녀는 아시아 음식이 다 맛있다며 잘 먹었다. 한 번은 그녀의 집에서 잡채를 함께 만들었다. 그녀는 나와 함께 한국 음식인 잡채를 만드는 시간을 너무 좋아했다. "모니카, 우리가 함께 한국 음식을 만들었어. 잊지 못할 좋은 추억 만들어줘서 고마워. 그나저나 이 잡채 너무 맛있다. 다음에 혼자 만들어봐야겠어." 우리는 샹젤리제에 있는 한인 마트에 함께 갔다. 이걸로 잡채를 만든다며 당면을 골라줬다.


그녀의 친정어머니께서 다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잡채를  만들어서 집으로 가져갔다. S 딸은 없었지만, 친정어머니와 둘째 M, 베이비 시터가 있어서 S 오기 전까지   시간 동안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우진이와 M 둘이서 놀고... 그동안 딸을 위해 만들어 놓고 가신 이란식 동치미를 3번이나 얻어먹었다고 말씀드리며 너무 맛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인자한 인상을 지닌 어머니는 내가  얼마든지 만들어놓고 가겠다고 하셨다. 잡채를 맛보시라고 드렸더니, 어머니는 딸이 오면 같이 먹겠다고 하셨다. 시간이 30분이 넘어가자 잡채를 어서 맛보고 싶으신지 잡채를 접시에 담기 시작하셨다. 입에  맞다며 생각보다 많이 드셨다. 인사치레가 아닌 진짜 입에 맞는 모양이었다. 나이 드신 노인들은 입에 맞지 않으면 억지로 먹지는 않는다.   , 우연히 마트에서 발견한 잡채 소스를 보고 잡채를 좋아하는 S 생각나서 하나 구매했다. 잡채와 함께 시판 소스도 줬다. 나는  번도 사용해보지 않아서  소스의 맛은 모른다. 한국인들은 대게 잡채 만들  간장, 설탕, 소금 등으로 간을 하기 때문에 따로 소스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외국인에게는 이런 아이템을 주면 좋아한다.


어머니 아들은 호주에 있는데, 아들네 식구 사진을 내게 보여주셨다. 영어를 약간 하시지만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주로 사진 또는 동영상을 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손주 사진을 보시면서 흐뭇해하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란 상황에 대해 여쭤봤다. 이란에서 나고 오랫동안 생활하신 여성이시니 그 누구보다 이란의 현실에 대해 잘 아실 것 같았다. 유튜브 영상을 보여드리면서 한국 뉴스를 보여드렸다. 이란 상황에 대한 뉴스였는데, 어머니께서는 자기 나라지만 너무 안타깝고,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셨다. 어머니의 딸은 프랑스에, 아들은 호주에 살고 있는 이유일까.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 딸 집을 번갈아 가며 지내신다. 물론 이란에도 계시기도 하지만. 잡채를 너무 잘 드시는 모습이 참 좋았다. 한국음식을 처음 맛본다는 S어머니를 위해 하루 날 잡고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김밥, 김치전, 떡국, 미역국, 잡채를 요리했다. S와 그녀 어머니는 너무 맛있다며 잘 먹었다. 해외에서 외국인에게 한식을 선보이니 나도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이란 음식인데 한국 동치미 맛과 매우 흡사하다. 3번이나 줘서 먹었는데 맛있다. 엊그제 어머니께 가져다 드린 잡채와 시판 소스/ 출처: 모니카
처음 맛보는 이란 아이스크림/ 잡채 요리 교실에 참여한 S와 S어머니/한국 음식을 선보였던 저녁. 출처: 모니카


원래 사람을 좋아하고 친절이 몸에 베인 그녀지만, 일도 하랴 아이 둘도 돌보랴 바쁠 텐데 유독 내게 먹을 것을 자주 챙겨주고, 내가 어디 힘든 것은 없는지 늘 살피는 그녀가 고마우면서도 내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궁금하기도 했다. 그녀는 자기도 처음 이란에서 프랑스 왔을 때 힘든 시절이 있었고, 부모님이 곁에 안계시기 때문에 이방인으로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내 마음을 잘 이해한다고 했다. 필요할 때면 언제든 자기에게 연락하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뭉클했다. 이방인 심정은 이방인이 알아주는 걸까. 그래도 그녀는 이미 20년 넘게 프랑스에서 살고 있고, 프랑스 남편 및 시댁을 비롯한 기존 친구들도 이미 많아서 내 마음과 상황을 잘 이해하기 쉽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녀 성향 자체가 정이 많고, 공감력이 뛰어난 것 같다. 프랑스 엄마들 중에서 친절하고 정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이방인 출신이지만 정이 없고 배려가 없는 사람도 있다. 이곳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국제결혼을 한 외국인들도 많다. 가깝게 지내는 엄마들 중에는 국적이 다양하다. 서로 마음이 맞으면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놀기도 하고, 공원에 가기도 하고, 미술관에도 같이 다닌다.


내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그녀는 언제든 내게 달려왔다. 급식비 납부 방법 관련해서 와츠앱으로 물어봤는데, 그녀는 한걸음에 우리 집으로 달려와서 직접 우리 집 노트북을 켜고 어떻게 하는지 알려줬다. 간간히 재택근무를 하는 그녀는 집에서 한창 일하는 도중일 텐데 이렇게 자리 비워도 되는 것이냐고 물으니, 점심시간이 2시간이라 괜찮다고 했다. 어떨 때는 2시간 반 정도 써도 된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넉넉하니 필요하면 언제든 만나도 괜찮다고 했다. 자기는 긴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한 번씩 동네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하고 온다고 했다. 프랑스 직장인의 점심시간은 정말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인 것 같다.


2022년 연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그녀는 우진이에게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줬다. 큰 선물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나는 그녀의 취향에 맞는 아이템으로 그녀를 위한 선물을 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복주머니를 함께 줬는데, 새해 좋은 일 가득하길 바란다고 기도했다. 그녀는 복주머니를 자기 집 장식대 위에 걸었다. 그렇더니 안 그래도 올해 이뤄지길 바라는 일들이 몇 개 있는데, 복주머니 덕분에 다 이뤄지면 좋겠다고 했다. 2023년 새해를 맞이했고, 우리는 다시 한번 새해맞이 축하 파티를 열었다. 만나면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는 S,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달려와 기꺼이 도움 주는 S. 그런 그녀가 고맙다.


S의 6살 딸 A, 4살 아들 M과 잘 어울려 노는 우진이는 아이들과 함께 핼러윈 파티도 같이 가고, 심야 미술관에도 같이 갔다. 루이뷔통 재단에서는 매달 첫 번째 금요일 저녁에는 밤 11시까지 녹턴 시리즈로 미술관이 하나의 클럽으로 변하는데 아이들과 같이 갔다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S는 다음에 엄마들끼리 둘만 오자고 했다. 그래서 맥주도 한잔 하면서 엄마의 삶이 아닌 여성의 삶으로 돌아가보자고 했다. 나는 좋은 생각이라며 그렇게 하자고 했다. 지난 주말에는 S네 아이들 2명과 함께 루이뷔통 재단 전시를 함께 보고 아뜰리에에 참여했다. 아이들이 아뜰리에 참가하는 동안 우리 둘은 함께 모네 전시를 보며 여행, 교육, 문화 등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미술관 로비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함께 차를 마시며 여성으로서의 삶과 엄마로서의 삶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도 나눴다.


루이비통 재단 모네 밋쉘 전시장에서 그림 감상하는 아이들/ 심야 시간에 꽃 만들기 아뜰리에 참가. 출처: 모니카


그녀는 늘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며, 유쾌하고,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살면서 많은 역경이 있었지만 그것을 하나하나 지혜롭게 긍정적으로 헤쳐나갔다. 현재도 미래도 삶을 늘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S. 타인을 늘 배려하고, 친절하며, 교양과 매너가 몸에 베인 S. 그녀는 엄마로서의 삶, 여성으로서의 삶, 나 자신으로서의 삶 모두 소중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를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사람을 통해 배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S를 보며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잠깐 중국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