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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Feb 25. 2023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

전 세계 돌풍 일으키는 한국 음악가들

작년 9월 루이비통 재단에서 주최한 Sir András Schiff 피아노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하고 있던 어느 날, 나눠준 프로그램 종이 뒤편을 보고 내 눈을 의심할만한 이름 석자를 발견했다. 임. 윤. 찬. 그 당시 루이비통 재단 홈페이지에는 3월까지의 음악회 일정이 나와 있었는데 임윤찬 공연은 없었다. 그런데 2월 2일 음악회 일정이 갑자기 생겨났다.


임윤찬 씨는 어린 나이에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 콩쿠르에서 1등을 한 한국인 피아니스트이다. 반 클라이번은 미국 피아니스트로서, 각종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미국을 음악 강국으로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그의 업적을 기려 1962년부터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시에서 4년마다 열리고 있다.


임윤찬 씨는 국내 순수파로 스승인 손민수 피아니스트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다. 대게 10대 때 해외 유학을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달랐다. 오직 한국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만 7세에 동네 피아노 학원을 시작으로 예원학교를 거쳐 한예종에 입학했다. 그의 연주는 한국의 위상을 더욱 높였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연습해도 충분히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1등 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더불어 한국 피아노 교습법 및 레슨도 세계적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한국 교수님들의 러브콜도 많을 듯하다. 선순환이다. 한국의 클래식계는 요즘 뜨겁다. 바이올린 양인모 씨를 비롯해서 다양한 악기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분들이 많다. 피아노는 참으로 많다. 임동민, 임동혁, 조성진, 손열음, 임윤찬, 선우예권, 김선우 등등... 최근에는 백혜선 피아니스트가 자서전을 출간했다. 출중한 피아니스트들이 너무 많아서 이름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2월 2일 연주회 당일, 나는 1시간 전인 저녁 7시 30분에 도착했다. 루이뷔통 재단 근처에 살고 있는 이점을 확실히 활용하기 위해 아이 밥을 다 차려주고, 목욕까지 시키고, 모든 것을 다 끝내고 기분 좋게 공연장으로 향했다. 나는 속으로 내가 1등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건물 안에 들어갈 때까지도 그 생각은 변함없었다. 그런데 건물에 입장하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평소 보지 못한 기나긴 줄이 있었다. 루이비통 재단을 자주 들락거렸지만 이런 긴 줄은 처음 봤다. 지하 오디토리움 입구에서부터 재단 입구까지 늘어선 줄은 거의 다 한국인이었다. 게 중에 한 두 명 외국인이 있었지만, 극소수였다. 2시간 전에 왔나 보다.


긴 줄을 서며 음악회를 기다리는 한국 사람들. 출처: 모니카


한국인들의 이 열정이란. 해외에 나오면 없던 애국심도 생긴다던데 혹시 이게 말로만 듣던 국뽕이란 걸까? 나는 줄 맨 끝에 붙었다. 내 뒤로 또 하나둘씩 붙어나기 시작했다. 꼬리는 점점 길어지고, 안내 요원들은 한국인의 애국심에 놀란 듯 멋쩍게 웃으면서 자리를 차근차근 정리해 줬다. 임윤찬 공연이 올라오자마자 바로 매진된 것 같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작은 나라에서 위대한 인물이 나오면 그 인물을 추앙하고 환영한다. 애국심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민족으로서 뿌듯한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함께 공연을 보기로 한 지인이 도착했다. 같은 성당을 다니는 그녀는 꽁세흐바투아(Conservatoire, 음악원) 피아노 선생님이다. 피아노를 전공한 그녀가 임윤찬을 특히 좋아한다고 내게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이번 연주회 소식을 바로 알려줬다. 내 멤버십 카드로 할인이 2명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지인도 같이 할인가 혜택을 받아 표를 샀다.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이 광경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단한 한국인이다. 파리에서 한 이렇게 많은 한국인이 모인 것은 처음 본다고 했다.


내가 더욱 놀란 것은 바로 어린아이들이었다. 만 4~5세 정도 보이는 아이들도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왔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도 꽤 많았다. 목요일 저녁 8시 반부터 약 10시 넘어서 끝날 텐데, 바로 다음날 금요일에 유치원 또는 학교도 가야 하는데 이런 늦은 시간에 어린아이들이 왔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아이들이 과연 조용히 잘 들을까? 힘들어하진 않을까? 자칫 소리라도 내면 어떡하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연주가 시작되었다. 어린 나이에 곡을 대하는 태도 및 깊이가 남달랐다. 모두 숨죽여 그의 연주를 들었다. 긴 머리카락이 두 눈을 덮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2017년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바로 저기 같은 무대 위에서 연주했을 당시에 긴 머리카락이 두 눈을 덮었다. 그때는 생머리카락이 눈을 덮었고, 이번에는 약간 파마한 머리카락이 눈을 덮었다. 파마를 한 듯한 머리카락은 온몸을 다해 힘 있게 건반을 누를 때마다 함께 휘날렸다. 그의 피아노 연주 특징은 과한 표정과 몸짓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물론 어떤 곡, 어떤 부분에서는 작은 체구가 선율에 따라 함께 덜썩덜썩 춤을 추듯 역동적으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그런 것 같다. 특히 눈빛을 포함한 얼굴 표정과 손가락 및 팔의 움직임이 다른 피아노 연주자들에 비해 크지 않은 것 같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생각이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잘 듣는 듯싶다가 30분 지나니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2시간 동안 한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런 어린아이들에게는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이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주고 싶고, 한국인 연주자의 연주를 직접 들려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해외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한국인 연주자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너도 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줬을 것이다. 그래도 만 5살 정도는 아직 힘들지 않을까 안쓰러운 마음도 동시에 들었다.


나도 아이에게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이 하는 좋은 공연, 좋은 연주를 보고 듣고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아이가 싫어하거나, 힘들어할 것 같으면 안 하는 것이 좋다는 주의다. 뭐든 억지로 하다 보면 탈이 나기 마련. 연주가 끝날 무렵, 몇몇 어린아이들은 잠이 들어있었다. 다행히 2시간가량 진행된 연주에서 아이 울음소리는 고사하고 작은 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휴대폰을 무릎에서 떨어뜨리는 소리는 약 5번 정도 있었다. 쿵. 쿵. 그래도 벨소리 안 울린 게 어디냐며 위안 삼아 본다.


한국인으로 가득찬 청중석/ 임윤찬 피아니스트. 출처: 모니카


피아노 선생님은 임윤찬 씨 연주는 판타스틱 그 자체라고 무한 칭찬이 이어졌다.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개인적으로 조성진 피아니스트를 더 좋아한다. 다들 끌리는 피아니스트가 다르기 마련이다. 나는 집에 있으면서 자주 피아노 또는 바이올린 연주를 유튜브로 시청하는 편이다. 피아노는 조성진, 바이올린은 양인모 위주로 듣고, 임동혁 피아니스트 20주년 기념 방송을 유튜브로 몇 개 찾아봤다.


2017년 10월, 바로 이 루이비통 재단에서 젊은 차세대 유망주 시리즈로 조성진 씨가 피아노 연주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앞에 앉아서 그의 공연에 정말 심취했고, 끝나고 직접 사인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때 산 CD를 조성진 씨에게 들이밀면서 "제 이름을 적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했고, 조성진 씨는 중저음의 매력적인 보이스로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었다. 그때 그 순간을 포착한 루이뷔통 재단 전속 사진사는 카메라 셔터를 엄청나게 눌러댔고,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뉴스에 내가 조성진 씨와 서로 눈을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실렸다.


여전히 모유수유를 하며 만 1세 반이 된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던 나는 그 당시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다. 그 와중에 조성진 씨 공연을 보겠다고 신랑과 아기는 공연장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고, 혼자 지하 오디토리움으로 내려갔다. 그 공연은 내게 힐링이 되었다. 공연을 마치고 신랑과 아기와 함께 파리 16구 집으로 돌아갔던 그날 밤이 생생하다.


뉴스 기사에 난 사인받는사진. 출처: 뉴시스/ 앞에서 두번째 줄에서 찍은 사진/조성진 씨 자리 뒤로 보이는 아이 유모차. 출처: 모니카


6년이란 시간이 어느덧 흘러, 나도 육아 및 해외 생활이 조금은 수월해졌고,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엄마 없이도 집에서 아빠와 잘 지내며 "엄마, 피아노 공연 잘 보고 와!"라고 밝게 말한다. 6년이란 시간 동안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외모도 연주의 깊이도 더욱 성숙해졌다. 더불어 여유도 있어 보인다. 그 사이 임윤찬 씨는 피나는 연습을 통해 콩쿠르에서 1등을 하고 조성진 씨가 2017년에 섰던 똑같은 젊은 차세대 유망주 시리즈 무대에 올랐다. 그다음 6년 후에는 또 어떤 한국인 피아니스트가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루이비통 재단이 주최하는 젊은 차세대 유망주 시리즈에 오를까? 6년 후 혜성처럼 나타날 어느 누군가가 그 어딘가에서 기다림의 자세로 지금 이 순간 묵묵히 실력을 갈고닦고 있다.



함께 감상해요

아래 링크한 루이비통 재단 홈페이지에서 임윤찬 피아니스트 공연을 5월 10일까지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fondationlouisvuitton.fr/fr/flv-play/piano-nouvelle-generation-yunchan-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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