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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Apr 17. 2023

벽에는 귀가 있었다

도시 거리 예술

파리 시청에서 도시 거리 예술 전시가 한창이다. 인기가 많은지 전시가 연장 됐다. 유명 거리 화가들의 작품도 대거 참여했다. 뱅크시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무료지만 예약을 하고 가야 한다. 안전 문제로 가방 검색을 철저하게 했다. 들어서니 이번 전시는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파리 시청 한 켠에서는 늘 이렇게 문화예술 관련 전시를 한다. 시민들은 예술을 언제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한다. 시청에서 일하는 직원, 이곳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 시청 주변에 쇼핑하러 온 사람들, 시청 주변을 우연히 지나가는 남녀노소 모두 잠깐 이곳에 들러 예술을 감상할 수 있다. 입구 한 켠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거리 예술을 체험해보도록 디지털 기기를 설치해 놨다. 실제 스프레이가 아닌 디지털 스프레이를 가지고 나도 마치 거리 예술가가 된 마냥 자유롭게 그래피티를 했다.


이번 전시 메인 포스터. 수도(파리 도시 예술의 60년)라고 적혀있다. 인베이더가 작업하는 모습./ 전시장 내부/ 그라피티와 거리예술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출처: 모니카


세계 곳곳으로 증식해 나가는 인베이더


파리 곳곳을 거닐다 보면 모자이크 타일이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떻게 저기에 붙였을까 싶을 정도로 생각지도 못한 곳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인베이더라는 거리 예술 화가인데, 얼굴을 숨기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인베이더를 처음 만났던 때는 2015년 여름으로 돌아간다. 홍콩에 살았을 때였다. 아직 아이가 태어나기 전이었다. 신랑은 일하러 가고, 혼자 후덥지근하고 무더운 여름에 홍콩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결혼 전, 늘 바쁘게 일하며 살던 내가 시간이 무한정 주어지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때였다. 내가 홍콩으로 간다고 가깝게 지내는 싱가포르 지인 F에게 말하니 어린 시절부터 아는 친한 친구가 홍콩에 있다며 내게 소개를 해줬다. 나와 A는 그렇게 서로 어색하게 홍콩 어느 시내에서 만났고, A는 내게 PMQ라는 곳이 요즘 핫한 곳이라며 내게 소개를 해줬다. A의 안내를 받고 간 PMQ는 멋진 공간이었다.


경찰 기숙사로 사용된 곳을 예술 공간으로 바꾼 PMQ에는 늘 다양한 전시 및 예술이 펼쳐졌다. 신진 아티스트들의 전시도 자주 열렸다. 그때 꽤나 큰 규모로 인베이더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인베이더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의 전시를 봤다.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 곳곳에 이것을 붙인다고? 희한한 사람이군. 다양한 모양의 네모 타일로 만들어진 그의 커다란 작품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그때 사진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사진 속 엄마가 되기 전 내 모습, 결혼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맑고 밝다. 주름이 많지 않은 내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색하기도 하고, 다양한 감정이 교차한다.


그렇게 멋모르고 봤던 인베이더를 파리에서 재회했다. 홍콩에 거주할 당시, 내가 파리에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연한 계기로 인베이더를 만난 것이 어쩌면 내가 파리에 살게 될 것이라는 운명적 만남이자 예언이었을까? 파리를 걷다 보면 인베이더를 자주 만난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다가 인베이더를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인베이더가 나를 따라다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인베이더를 따라다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re yo

here do you come from?

세계 곳곳에 있는 인베이더. 한국에도 있다./ 인베이더가 작업실에서 찍은 사진. 얼굴은 늘 가린다. 거리 작업은 언제 어떻게 하는 것일까? 출처: 인베이더 홈페인지
파리 곳곳에 있는 인베이더. 너무 많다./PSY라는 예술가의 작품. 자유로운 그림이다. 새, 에펠탑, 지붕 위에서 바라보는 파리/ 키스 해링의 작품. 출처: 모니카


작은 그림으로 큰 사회 문제를 세상에 알리는 뱅크시


소더비 경매장에서 <풍선을 든 소녀> 깜짝 퍼포먼스로 세상 사람들을 또 한번 놀라게 한 바 있는, 스스로를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뱅크시의 작품 앞에 섰다. 이번 전시에는 예술가들이 이번 전시를 위해 작품 활동을 하는 현장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30년 전 파리 거리 예술 관련 뉴스 등 미디어를 활용해서 다양하게 보여줬다. 그 중 뱅크시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상도 있었다.


그의 작품 세계와 19세기 유명 프랑스 화가 제리코를 비교 분석한 다큐멘터리였다. 뱅크시는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을 패러디해서 난민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바 있다. 그는 프랑스 북단 칼레에 그의 작품을 남겼다. 영국과 칼레는 영국 해협을 두고 서로 마주하며,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다. 그래서 난민들이 이 곳으로 많이 들어온다. 제리코도 이민자, 난민, 흑인 인권 등에 관심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는데, 뱅크시도 그렇하다.


뱅크시는 주로 스텐실로 작업을 하고 있다. 인베이더처럼 뱅크시도 얼굴을 알리지 않고 있다. 이들은 언제 어떻게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다 잠자고 있는 한밤에 하는 것일까? 실내 작업도 아니고, 일반 대중들이 다니는 길거리에서 작품을 해야 하기 때문에 대체 언제 하는 것일까?


메두사호의 뗏목을 보고 뱅크시는 패러디 작품을 남겼다./ 칼레에 있는 뱅크시 작품/ 런던 콜링 칼레라고 적혀있다. 출처: 모니카


뱅크시는 사회 문제를 고발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그런 작품을 많이 남기고 있는데,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참으로 기발하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해냈을까 싶은 작품이 한두 개가 아니다. 작고 심플한데 의미는 꽤나 깊다. 이를 위해서는 평소 사회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사유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작은 그림 하나로 커다란 사회 문제를 드러내는 것을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탄 나폴레옹의 작품의 경우, 빨간 망토가 얼굴을 다 가렸다. 2010년 무슬림 여성들이 히잡을 쓰지 못하도록 금지한 것에 대한 반감을 표현했다. 커플 쥐가 우산을 쓰고 걸어가고 있다. 모퉁이 끝에는 에펠탑이 저 멀리서 보인다. 흑인 소녀가 뱅크시처럼 그림을 벽에 그린다. 그 그림 속에는 나치 문양이 있다. 바닥에는 인형이 떨어져 있다. 히틀러를 닮은 개 주인이 자기 개에게 뼈다귀를 주려고 하고 개는 받아먹고 싶어 한다. 근데 다른 한 팔은 뒷짐 졌는데 그 손에는 톱이 들려있다. 다시 개를 보니 개 한쪽 발이 잘려있다. 나치 학살 피해자들을 개로 표현했다. 샴페인을 터뜨리는 코르크 마개가 날아가는데 날아가는 마개 위에 쥐가 올라타고 함께 날아간다.


그림 하나하나 다 독특하고, 재미있고, 의미가 있고, 사상이 담겨있다. 특이한 점은 그림마다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나비가 꼭 들어가 있다는 점. 자기가 그렸다는 인증을 나비 문양으로 대신하는 것 같다. 나비는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나비처럼 뱅크시도 여기저기 자유롭게 훨훨 다니면서 세상 곳곳에 자기를 표현한다. 나비가 꽃에 살며시 앉듯이 자신도 이 거리에 왔다 간다.


망토로 얼굴이 가려진 나폴레옹/ 샴페인 뚜껑을 타고 나르는 쥐/ 개 발을 자른 뒤, 개에게 뼈다귀를 주려는 남자/ 출처: 모니카


벽에는 귀가 있었다


이 외에도 수많은 거리 예술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C215, 세스, 키스 해링 등 기존에 내가 알고 있는 작가들도 있고,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작가도 있었다. 1982년, 파리에는 거리 예술 붐이 일었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며칠 전 바스키야 X 워홀 전시를 보고 왔는데, 거리 예술 연보에서 두 사람의 이름도 각각 올라와 있었다. 미국에서 거리예술이 시작되었고, 이는 세계 곳곳에 영향을 줬다.


뱅크시 관련 영상물을 보다가  마음에 꽤나 오랫동안 머물렀던 짧은 세 문장이 다.


Walls had ears.
Now they have a voice.

(벽에는 귀가 있었다. 이제 그들은 목소리를 낸다.)


Beauty is in the street.
(거리에 아름다움이 있다.)



그렇게 거리를 사랑한 수많은 아티스트. 계급, 사회적 지위, 경제적 지위, 나이, 국적, 인종을 막론하고 누구나 평등하고 공평하게 다닐  있는 거리라는 곳을 선택한 이들. 이들은 거리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었다. 거리와 벽은 살아 있으며  눈과 귀를 가졌다고 믿었다. 거리와 수많은 벽들은 시민들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을 저질렀는지  보고 있고  듣고 있었다. 이제 거리의 벽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거리 예술가들은 이러한 살아  쉬는 거리를 사랑한다. 그리고 거리와 연결되어 곳곳에 자신들의 사상과 철학을 담으며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 이번 전시에 참가한 예술가 리스트 **

Villeglé, Zlotykamien, Ernest Pignon-Ernest, Surface Active, Captain Fluo, Edmond Marie Rouffet, Blek le Rat, Miss.Tic, Vive La Peinture, Speedy Graphito, Jean Faucheur, Mesnager, Mosko, Jef Aérosol, Bando, Ash, Jay0 ne, SKKI, Keith, Haring, Mambo, Nasty, Slice, Psyckoze, Lokiss, Shoe, Futura, A-One, Rammellzee, Jon0 ne, André, Zevs, Dize, Invader, Shepard Fairey, JR, Vhils, Swoon, Banksy, C215, L’Atlas, YZ, Seth, Tarek Benaoum, El Seed, Ludo, Rero, Dran, O’Clock, Tanc, Lek, Sowat, Cristobal Diaz, Philippe Baudelocque, Levalet, Madame, Kashink, Vision, Pest, Greky, Sébastien Preschoux, Romain Froquet, Kraken, 9 eme Concept, Les Francs Colle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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