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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Sep 08. 2023

여성의 초현실주의

몽마르트르를 향하여


몽마르트르 언덕

몽마르트르 뮤지엄에서 '여성의 초현실주의'라는 주제의 전시를 하고 있다. 9월 10일까 지기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S는 내가 한국에서 프랑스에 돌아오자 이 전시회에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사실 몽마르트르는 자주 가보고 싶은 곳이기는 하지만 가는 길에 소매치기가 많고, 위험하게 느껴져서 혼자는 잘 안 가게 된다. 소매치기당할 뻔한 경험도 있고 해서 그 후로 더욱 겁이 났다. 그런데 S가 같이 가자고 해서 이번 기회에 몽마르트르에 가보기로 했다. 파리에 돌아왔으니 파리에게 신고식도 할 겸, 몽마르트르 언덕에 인사를 하러 가는 마음으로 9월 7일 목요일 오전에 몽마르트르를 만나러 갔다.


참고로, 한국에 잘 다녀왔다고 파리에 처음 인사를 하러 간 곳은 센 강이다. 내가 좋아하는 센 강변에 찾아가서 센 강에게 인사했다. '한국에서 잘 다녀왔어. 파리 너는 잘 지냈니? 여전히 센 강 너는 유유히 흐르고 있구나. 어디로 와서 어디로 흐르고 있는 것이니? 저 멀리 에펠탑도 안녕? 무더운 여름, 잘 보냈니? 너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파리를 지키고 있구나.' 뛸르리 공원을 걷고, 센 강변을 걸으면서 파리 곳곳에 하나하나씩 인사를 했다. 그리고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센 강변 길에 설치된 야외 카페에서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맥주 한 모금 마시고, 에펠탑 한번 바라보고, 또 한 모금 마시고, 센 강을 바라봤다. 그렇게 1시간 동안 파리를 온전히 느끼며, 마음으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Anvers역에 내려서 몽마르트르 뮤지엄으로 올라가는 길을 천천히 걸으며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관광객이 많았다. 파리는 뒤늦게 여름이 찾아왔다. 나는 더위를 찾아다니는 사람인 것 같다. 한국에서 그렇게 더워서 힘들었는데, 이제 겨우 파리에서 좀 시원하게 보낼까 싶더니, 이곳에서도 다시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언덕 오르막을 걸어 올랐다. 계단을 오르다가 힘들면 뒤돌아 파리 전경을 보면서 한숨을 돌렸다.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테르트르 광장을 지나 한적한 곳에 위치한 뮤지엄에 다다랐다. 규모는 아담했다. 건물 외관에는 이곳에 르누아르, 하울 뒤피 등 여러 유명 화가들이 살면서 작업을 했다고 나와 있었다. 미리 예매한 표를 들이밀자 현장에서 표를 사는 사람들을 제치고 바로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작은 정원이 나왔다. 아담하고 귀여웠다. 르누아르 대표작인 <물랭 드 라 갈레뜨의 무도회> 그림과 함께 르누아르가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설명이 나와 있었다.



그 당시 화가들이 이곳에서 머물며 서로 작품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먹고 마시며, 예술을 사랑했던 모습을 그대로 느껴봤다. 언덕 위에서 저 멀리 파리를 내려다보았겠지. 술에 취해 그림에 대해 논하며, 사랑도 나누고 했겠지. 파리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이것이 아닐까 싶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명 화가들의 채취를 그대로 온전히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곳을 여전히 잘 간직하고 있다는 것. 아무리 미국이 강대국이라고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고,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는데 앞장서며, 대중문화를 선도하고 있으며, 세계 글로벌 언어의 입지를 다지고 있지만, 그래도 미국이 가지지 못한 것이라면 이러한 역사가 깊고, 감성이 풍부하며, 18~19세기 유명 화가들의 흔적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이다. 프랑스도 이것을 잘 알기에 이 부분에서 세계에서 독보적인 유일무이한 도시가 되기 위해 나라 전체가 문화예술 보존에 두 팔 걷고 힘쓰고 있는 것이다.


몽마르트르 미술관

우선 상설전이 열리는 건물로 들어섰다. 예전에 살던 집을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단 나는 미술관에 오면 공부하듯 설명을 거의 다 읽으려고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자세로 이해하려고 한다. 또한 미술관에서 작품을 오래 응시하며 이 작품을 그린 화가가 그림을 그렸을 당시 상황, 느낌, 기분 등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또한 미술관 내부 시설도 찬찬히 둘러보며 온 감각을 다 동원에서 느껴본다. 그래서 시간이 꽤 많이 걸린다. 이런 나만의 감상법 때문에 웬만하면 미술관은 혼자 다니려고 하는 편이다. 같이 온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보폭에 맞춰야 하고, 감정을 살피기 때문에 온전히 미술 작품에 집중하지는 못한다. S가 옆에 있다 보니 그렇지 못했다. S는 생각보다 빨리빨리 지나가 버렸고, 심지어 밖에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읽고 느껴보지도 못하고 S 상황을 신경 쓰고 살피느라, 내 성에 차지 않게 작품을 그냥 지나치게 되었다. S가 사라졌다. 찾아보니 없다. 정원으로 나갔다. S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모니카, 나는 이번 전시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아. 생각했던 것이 아닌 것 같아. 혼자 충분히 보고 와. 나는 여기 앉아 있을게."



여성의 초현실주의

나는 알겠다고 했지만 혼자 보면서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그래도 기왕 왔으니 나는 작품을 최대한 이해하고 보려고 했다. 작품을 점점 볼수록 나는 이번 전시가 마음에 들었다. 주제는 여성성의 초현실주의인데, 여성의 이야기가 담긴 초현실주의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같은 여성으로서 동질감을 느꼈다. 여성의 해방감을 표현한 작품도 많았다. 여성의 업악을 표현한 작품도 있었다. 전시 포스터 그림 앞에 섰다. Jane Graverol(1905-1984) La Sacre du porintemps, 1960이란 작품이다. 여성의 한쪽 가슴을 드러내고, 여성의 어깨 위에 새가 앉았다. 그 새는 가슴을 향해 있다. 여성의 해방을 표현할 때 주로 가슴을 드러낸다. 남성은 가슴을 보여도 되지만 여성은 브래지어로 가슴을 단단히 가린다. 어쩌면 새 생명의 삶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모유가 나오는 가슴을 가리게 하는 것은 여성의 억압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은 가슴이 예뻐야 하고, 그래서 결혼 후 가슴 성형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푹푹 찌는 폭염에도 브래지어를 착용해야 하고, 그래서 그 부분에 땀띠가 나고, 그래도 한국에서는 노브라는 허용되기 아직 그런 사회이기 때문에 땀띠가 나고 가려워도 꿋꿋이 착용한다.



여성이라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명제를 부수고 있는 나라가 바로 프랑스가 아닐까 싶다, 프랑스에서는 여성들이 당당히 노브라를 한다. 젖꼭지가 옷 위로 다 드러나도 개의치 않는다, 여성의 가슴이 섹스어필도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나는 내 가슴을 당당히 드러내고 남성처럼 동등하게 노브라로 드러내며 살아가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가슴 하나로도 수많은 이야기와 토론이 가능하다. 프랑스 영화에도 여성의 가슴 노출은 심심찮게 나온다. 그만큼 여성의 가슴 노출이 더 이상 특별하거나 놀랠만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할지도 모른다. 그 외 여성의 자궁, 여성과 남성을 함께 그린 작품, 소녀가 뒤로 손이 묶여 있는 작품 등 그냥 넘겨보기 힘든 작품들이 꽤 많았다. 피카소의 여인 도라 마르도 자주 등장했다. 유심히 작품을 보고 있는데 내 옆에 흰머리 가득한 노인 한 분께서 직접 쓴 필기가 가득 적힌 종이 2장을 들고 종이 한번 봤다가 그림 한번 봤다가 열심히 작품을 탐구하듯 감상하고 계셨다. 나는 옆에서 잠깐씩 흘깃흘깃 봤다.


* 제인 그라브롤(Jane Garverol)은 벨기에 출신 프랑스 초현실주의 여성 화가.

* Le Sacre du printemps은 봄의 제전이라는 뜻이다. 봄의 신을 예찬하기 위해 산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라고 하는데, 그럼 이 작품의 의미는 여성을 산 제물로 바친다는 의미인가? 작가는 여성이란 존재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본 것일까?


Claude Cahun(1891-1954)의 Autoportrait avec Marcel Moore et un chat, 1930 작품 앞에서 그 탐구적인 할아버지와 둘이서 같은 곳을 응시하게 됐다. 그는 작품을 응시한 채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Claude Cahun 자기를 그린 것이에요." 나는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말이 이번 초현실주의 전시는 아주 귀한 전시라고 했다. 그렇게 유명하거나 대중의 인기를 얻는 그림들은 아니며, 이들의 그림을 자주 전시하지 않기 때문에 매우 좋은 기회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초현실주의 작품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했다. "할아버지, 그 종이에 빽빽하게 쓰신 것은 그림 보러 오시기 전에 미리 공부하신 거예요?", "이것은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었을 때 적은 것이에요. 그때는 필기하며 공부하는 자세로 임했고, 지금은 들은 것을 바탕으로 직접 작품 하나하나 찾아가며 보고 있어요." "그렇군요. 대단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운동화에 녹색 반바지와 흰색 티셔츠, 그리고 크로스로 맨 아디다스 검은색 네모난 가방, 왼손에는 종이, 오른손에는 연필, 그리고 안경을 낀 백발 프랑스 할아버지는 또 다른 작품을 찾아 위층 계단으로 성큼성큼 걸어올라랐다. 미술관 내부에는 노인들이 많았다. 물론 단체로 관람온 고등학생들도 있었지만, 개인으로 온 사람들은 노인도 많았다. 이곳 프랑스 노인들은 노후에 문화생활을 적극적으로 찾아 즐긴다.


* 클로드 커훈은 프랑스 초현실주의 여성 작가이자 사진작가이다. 자화상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 마르셀 무어는 프랑스 초현실주의 여성 사진작가, 일러스트레이터이다.



테르트르 광장에 있는 식당에서

이번 전시 덕분에 나는 여성 작가와 초현실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더 알아보고 싶은 분야다. 밖으로 나와서 S와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 정원 카페에서 식사를 할까, 나가서 먹을까 고민하다가 나가서 먹기로 했다. 테르트르 광장 한가운데 사각형으로 자리 잡고 있는 Au clairon des chasseurs라는 식당에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Perigourdine이라는 샐러드를 똑같이 둘이서 주문했다. 19유로였다. 샐러드에 푸아 그라, 훈제 오리 가슴살, 닭똥집 등이 올려져서 나왔다. 배가 고픈 탓인지 맛이 좋았다. 삶은 감자도 적당히 짭조름한 것이 맛이 좋았다. 샐러드라 배가 부를까 싶었는데 양도 많고, 맛도 좋았다. 먹고 나니 배가 불렀다. 다닥다닥 붙어 앉았는데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아이들 새 학기 관련 이야기, 선생님은 어떻냐, 친구들과 잘 어울리냐, 숙제는 잘하냐 등 학교 이야기를 나눴다. S 딸 A와 작년에는 같은 반이었지만 올해 다른 반이 되었다. 서로 슬프다고 했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 관련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그 외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양하게 나눴다. 바로 옆자리에 미국에서 온 관광객 중년 커플이 앉았다. 자연스레 말을 섞게 되었고,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 줬다. 와이프 생일 기념으로 일주일 놀러 왔는데, 여행은 좋은데 7살 아들이 너무 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 모두 7살 아이들이 있다며 부모의 마음으로 깊이 공감해 줬다. 여행 잘하고 돌아가라고 인사하고는 우리는 2차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


영화 <아멜리에> 촬영했던 카페

내려가는 길에 크레페 가게에 들러 누뗄라와 바나나 올린 크레페를 먹었다. 그리고 커피는 영화 <아멜리에> 촬영 배경지인 Café des deux moulins으로 갔다. 아멜리에에서 주인공이 일하는 카페인데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영화에 나온 딱 그대로였다. 매일 찾아오는 남자가 앉아 있던 자리도 그대 로고, 화장실도 그대로이며, 테이블 배치가 거의 흡사했다. 직원들이 일하는 바도 그대로였다. 바에는 아멜리에 사진이 걸려있고, 또 한 켠에도 큰 영화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 대부분이 영화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다들 하나같이 핸드폰으로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익숙하다는 듯 여성 직원 3명은 사진이 언제 어떻게 찍히는지 기똥차게 알고는 그때마다 얼굴을 살짝 살짝이 숙여서 피했다. 능수능란한 그녀들의 태도에 이곳은 아멜리에가 거의 다 먹여 살리는구나 싶었다. 찐한 에스프레소를 두세 번만에 들이키고는 일어섰다. 날이 무진장 더웠다. 33도로 피부가 타는 듯했다. 지하철을 타고 있는데 갑자기 S 남편이 전화가 왔다. 그렇더니 S는 마들렌 지점 이케아에 가서 침구류를 사고 가야겠다며 나보고 같이 가고 싶으면 가고 혼자 가고 싶으면 가도 된다고 했다. 나는 아이를 곧 픽업해야 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먼저 가봐도 괜찮냐고 물었다. S는 물론이지하며 지하철에서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집으로 가는 길의 발걸음 왠지 모르게 경쾌했다. 그림을 보고, 식사를 함께 하고, 대화를 오래 나누고, 지하철을 타고, 언덕을 오르고 하면 피곤하기 마련인데, 이 날 따라 피곤하지 않았다. 왜일까? 아마도 오랜만에 파리에서 그림을 봐서일까? S와 맛있는 것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눠서 일까? 몽마르트르의 활기참에 매료되어서 일까? 결과적으로 몽마르트르는 참으로 좋았다. 생각보다 위험하지도 않았다. 가방만 잘 여미고 다니면 괜찮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몽마르트르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 앞으로 그곳을 자주 찾아가고 싶다. 예술가들의 영혼이 곳곳에 서려 있는 몽마르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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