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는 너무 다른 어린이집 분위기
2018년 10월 중순, 드디어 우진이가 들어가기 하늘에 별따기라는 크레쉬에 입성하는 날이다. 집에서는 걸어서 15분 정도면 도착하는 Francois Millet 크레쉬 정문 앞에 도착하자 벨을 눌렀다. 10초 후, 문이 철컹하고 자동으로 열렸다. 나는 우진이와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입구로 향했다. 말도 잘 못하는 아이가 해리포터에나 나올법한 이 중세 건물같이 생긴 공간에서 하루를 온전히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들어갔다. 크레쉬 선생님 한 분이 아이 이름을 물어보고는 해당 반으로 친절히 안내를 해주셨다. 기다란 복도를 지나 맨 안쪽 끝에 위치한 방에 들어서니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안은 꽤 넓었다. 넓은 홀에 우진이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 25명 정도가 놀고 있었다. 크레쉬는 만 3개월에서 만 1살, 만 1살에서 만 2살, 그리고 만 2살에서 만 3살까지의 아이들로 나뉘어서 하루를 보낸다. 각 반마다 선생님은 3명 정도 된다. 그러나 중간중간에 보조 선생님 또는 인턴 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그날 선생님이 없을 경우에는 다른 반 선생님이 오셔서 같이 봐주시기도 했다. 적응 기간 동안 엄마는 아이와 함께 하며 그 시간은 날이 갈수록 점점 줄어든다. 우진이는 내 예상대로 낯선 공간이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두려움 없이 친구들 속으로 들어갔다. 물론 엄마가 같은 공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수도 있다. 점심시간에는 식탁이 놓여 있는 식사 공간에서 아이들은 제 앞에 놓인 턱받이를 일제히 하고서는 식판이 올 때까지 비교적 잘 기다렸다. 나는 이런 광경을 처음 봤기 때문에 동그랗게 눈을 뜨고 지켜보았다. 선생님은 음식을 각 아이들 식판에 하나씩 배분해 주었다. 아이들은 자기 입에 맞는 음식은 잘 먹으며,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은 먹지 않았다. 안 먹는다고 해서 선생님이 억지로 먹으라고 강요하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아이의 입맛을 존중하는 편이었다. 식사 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은 낮잠을 잔다. 그 시간에는 선생님들도 함께 휴식을 취하는데, 당번제로 돌아가면서 선생님 한 분씩 잠자는 아이들 곁에서 아이들이 자다가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지 지켜보았다. 아이들 중에서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들이 있을 경우, 그 아이는 조용히 다른 곳에서 책을 읽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게 허락하였다. 잠이 오지 않는 아이에게 잠을 자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이지만 규율 속에서 비교적 잘 따라가는 아이들이 대견해 보였다. 티티라는 담당 선생님께서는 우진이가 크레쉬 생활에 너무 잘 적응하고 있기 때문에 예정된 2주간의 적응 기간이 끝나면 더 이상 부모님은 안 오셔도 된다고 하였다.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나는 우진이를 믿으니까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크레쉬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이 재미있는지 아침부터 크레쉬 가는 것을 좋아했다. 2018년 겨울, 나는 그제야 파리에서의 자유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1여 년 간의 귀머거리 벙어리로 살았던 치욕의 시간을 만회하겠노라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당장 프랑스어 학원 등록부터 하였다.
프랑스어 학원을 무던히 잘 다니던 어느 겨울날, 학원 수업을 마치고 우진이를 픽업하러 크레쉬에 들어섰는데, 아이 얼굴에 고양이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이마에서 인중까지 확 긁어놓은 것처럼 새빨간 줄 세 개가 세로로 그어져 있었다. 나는 순간 너무 놀래서 담당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아이 얼굴이 어떻게 된 거예요?”
선생님은 우진이가 친구의 책을 보려고 가져가려고 하다가 그 친구에서 할큄을 당했다고 설명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우리들은 일일이 한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챙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원장 선생님께 보여주며 아이가 이렇게 되었다고 보여주었다. 원장 선생님 또한 마찬가지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는 식으로 말하였다. 그러면서 아직 우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는 법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즉, 아이가 아직 아이들과 어울리는 법을 몰라서 할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뉘앙스였다. 나는 순간 화가 났다. 아이 얼굴이 이렇게 되어 많이 놀래기도 놀랬을 터이고, 많이 아팠을 텐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며, 할퀸 아이가 잘못되었지 어찌해서 할큄을 당한 아이가 잘못되었단 말인가. 내 아이가 아이들과 노는 법을 몰라서 그렇다는 발언은 심히 문제가 있어 보였다. 나는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영어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원장의 태도는 여전히 냉담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한국이라면 이런 상황이 어땠을까? 선생님과 원장 선생님 모두가 일단 우선은 미안하다고 말했을 것 같다. 본인 잘못이 아니지만, 아이 얼굴에 심한 상처가 났으니 죄송한 표정이라도 지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달랐다. 당당했다. 아이들이 놀다 보면 다칠 수도 있고, 이 정도는 별것 아니라고 여겼다. 게다가 미안하다는 말조차도 없고, 미안한 뉘앙스도, 몸짓도 전혀 없었다. 그 후로 유심히 관찰한 결과, 이 곳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조금 다치는 것은 크게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 부모들에 비해서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조금 무덤덤한 편이었다. 그래도 큰 사고가 났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프랑스의 경우 어떤 사건에 있어서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잘 안 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즉시, 나중에 혹시라도 법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상황이 닥쳤을 때, 법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가장 흔한 상황이 마트에서 계산이 잘못되었을 때, 손님이 영수증을 들고 계산원에게 가서 계산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계산원은 미안하다는 말을 거의 안 한다. 프랑스의 마트는 계산 실수가 너무 잦아서 어느 날부터 영수증을 일일이 체크하면서 계산 실수가 몇 번 일어나는지 통계를 내기 시작했다. 4번 중 1번은 계산 실수가 일어났으며, 3년 넘게 살면서 계산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들은 적은 단 3번이었다. 너무 궁금해서 주변에 물어보고, 조사를 하기도 한 결과, 법적 상황으로까지 갈 경우를 대비해서 절대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정말이지 사람 간의 정 보다는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프랑스인들이다. 인간미는 너무 떨어지지만,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 했던가… 이런 프랑스인들의 태도에 내가 적응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