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초등학교 알림장에 적힌 내용
9월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아이는 2학년이 되었다. 한 반에 학생들이 총 23명이었다. 한 학년에 학급은 단 두 반이다. 1학년 때에도 두 반이었다. 반 배정을 받았는데, 아이 반은 1학년과 합반이었다. 1학년 때 그대로 같이 올라온 학생들은 단 5명뿐이었다. 다행히 단짝 É도 같은 반에 배정되었다. 다른 4명은 1학년 때 다른 반에 있던 아이들이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9명. 나머지 아이들은 누구인가? 바로 1학년이다. 나머지 14명은 1학년 아이들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우리 아이가 한국인이기도 하니 수업을 잘 못 따라가서 1학년과 함께 합반이 된 줄 알았다. 그렇다고 해도 괜찮다. 조금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노력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주변 엄마들이 내가 생각한 것의 반대라고 했다. 다섯 명은 학교 생활 및 학습 등에서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하며, 학습 태도가 좋고, 매사에 알아서 잘하기 때문에 1학년들에게 모범이 되는 아이들로 구성해서 합반에 배정된 것이라고 했다. 정말인가 싶어서 반장 엄마에게 물어보니 정말 그렇다고 했다. 나는 아이 학교 생활이 어떤지 잘 모른다. 학교에서도 잘 알려주지 않고, 나도 선생님에게 아이 학교 생활에 대해 물어보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알아서 잘하겠지, 학교에서 잘 지내겠지 하며 아이를 늘 믿어주고 응원해주고 북돋아 주기만 했다. 물론 아이가 다양한 친구들과 두루 잘 지내고, 만나는 엄마들이 아이 칭찬을 하며, 지난 일 년 동안 학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큰 걱정 없이 지낸 것도 있다.
그렇게 합반이 되었고, 학부모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그곳에는 1학년 학부모와 2학년 학부모가 혼재되어 있다. 주로 학교 공지 사항 및 학교 숙제가 올라온다. 학생들 중에서 미처 숙제를 챙기지 못한 경우, 부모가 단톡방에 그날의 숙제를 알려달라는 문자가 종종 올라온다. 숙제를 알려달라는 문자가 올라왔다, 유심히 보는데 우진이 숙제 내용과 달랐다. 자세히 읽어보니 1학년 숙제였다. 1학년들 숙제는 어떤 것일까 싶어서 하나씩 읽어 내려가는데 한 곳에서 내 눈이 오래 머물렀다. 덩달아 마음도 오래 머물렀다.
Ne rien faire en avance.
’선행하지 마세요‘라는 말에 많은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선행 학습을 많이 한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한글을 다 떼는 것을 암묵적으로 여기고 미리 한글 공부를 한다. 이곳 프랑스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알파벳을 떼지 않는다. 미리 떼지 말라고 당부한다. 학교에서 다 같이 시작하기를 바란다. 미리 공부를 해오는 것을 선생님들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러면 아이가 수업 시간에 학습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자칫 집중을 못할 수도 있다. 함께 배우는, 알아가는 즐거움을 맛보기를 원한다. 그러다 보면, 조금 앞서 나가는 아이들이 있고, 뒤처지는 아이들이 발생할 수 있다. 뒤처지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학교에서는 따로 모아서 보충 수업을 한다. 그렇게 함께 가자는 분위기다.
한국에서는 선행 학습이 일반적이다 보니, 학교 선생님들도 학원에서 다 해왔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수업을 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사교육이 문제라고 다들 외치지만, 그래서 공교육을 강화하자고 하고 있지만, 정작 부모들은 내 아이가 학교에서 뒤처질까 봐 쉬쉬 하며 다들 학원에 아이들을 보낸다. 다른 아이들이 선행을 하기 때문에 안 할 수가 없다, 다수가 선행을 하니 혼자 안 하면 혼자 뒤처진다. 그러니 선행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프랑스 공교육에서는 선행을 금지하기 때문에 부모들도 부담이 덜하다. 자연스레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경쟁심 같은 것도 덜하다. 학교에서 다함께 같이 시작하고, 공부한다. 자기 스스로의 발전에 집중한다. 선행을 하지 않고, 대신 복습을 강조한다. 그래서 숙제에는 revoir(복습)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금요일은 아이 학교 가방이 무겁다. 일주일 동안 학교에서 배운 책들을 집으로 다 보내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복습하고, 시를 여러 번 암송하라고 한다.
남보다 내가 더 먼저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배운 것들을 얼마만큼 스스로 이해하고 소화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제 일요일에 아이와 함께 집에서 그동안 배운 것들을 함께 복습했다. 아이 교과서 내용이 내 수준에도 맞기(?) 때문에 배우는 자세로 함께 복습했다. 아이 덕분에 더불어 나도 공부가 됐다. 아이도 엄마와 함께 자기가 학교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을 보며, 때로는 자기가 배운 것을 내게 가르쳐 주며 즐거워했다. 나는 아이가 알려줄때마다 처음 배우는 어린 아이 마냥 신기해하고 놀라워하니 아이는 더욱 신이 나서 아예 칠판을 가져와서 선생님처럼 열심히 나를 가르쳐줬다. 뒷 페이지는 아예 넘기지도 않았다. 다음주에 뭘 배우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배운 내용 다시 보기에 집중하며, 우리는 그렇게 복습 과정 속에서 애착도 더불어 차곡차곡 쌓아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