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아이

학교 수업 만으로도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다

by 모니카


9월 28일 목요일 오후 4시 반,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 아이 옆에는 V가 함께 있었고, 둘은 잠깐 볼로뉴 숲에서 놀고 싶다고 했다. 계획에 없던 일인데, 집으로 가야 하는데 아이들은 간절한 눈빛을 발사한다. 볼로뉴 숲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동안 나는 V엄마 C와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 반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근황 토크를 했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 둘은 각자 다른 반이 되었지만, 여전히 친하게 가깝게 지낸다. 30분 정도 숲 속에서 놀다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하교 후, 볼로뉴 숲에서 뛰노는 아이들


집으로 가는 길에 아이는 내게 "엄마, 집에 가서 내가 재미있는 것 보여줄게. 엄마, 처음에 찌찌가 나올 거야."라고 했다. 1학년 때에도 학교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또는 낙서를 한 종이를 매일 가져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장난스러운 낙서를 했겠지 하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해자 아이는 책가방을 열어 꼬깃꼬깃 접은 종이 한 장을 꺼내 펼쳐 보였다. A4 용지에는 자신이 그린 그림과 함께 말풍선 속에 글도 함께 있었다. 밑에는 페이지 번호까지 있었다. 종이를 보여주면서 아이는 자신이 쓴 이야기를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첫 장면부터 정말로 찌찌가 나왔다. 말풍선에는 '누가 우유를 원해?'로 시작했다. 그러자 어떤 동물이 '나는 우유를 원해'라고 하자, 그 옆에 다른 물체가 '나는 우유 말고, 똥을 원해'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똥은 언제나 재미있는 소재이다. 그러자 기린, 뱀, 박쥐 등 각종 동물이 등장한다. 그 외 침, 머리카락, 번개 등 온갖 사물들이 의인화되어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 침도 말하고, 머리카락도 한 마디씩 한다. 내용은 머리카락이 '나는 너무 예뻐'라고 말하면, 옆에 있는 침이 '나는 못생겼어'라고 한다. 그러면 옆에서는 '내가 더 못생겼어'라며 못생김 배틀을 벌인다.


알파벳이 올바르지는 않았다. 틀린 것도 있고, 빼먹은 것도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이 단어 스펠링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엄마에게 흥분하며 신나게 말하는 아이한테 글자 틀렸다는 지적은 할 필요가 없는 무의미한 일이다. 내용이 꽤나 흥미롭고 재미가 있었다. 나름대로 이야기의 구성을 생각하며, 이야기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 나갔다. 만 7세 남자아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것이구나.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재미있어한다고 생각하는구나.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Je suis(쥬 쉬, 나는 ~이다.라는 뜻으로 영어로 I am에 해당)을 줄여서 Chui(취)로 쓴 것을 보고, 아이들끼리 '쥬 쉬'를 빠르게 발음해서 '취'라고 말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찾아보니, 실제로 Je suis = J'suis = Chui 라고 나와 있었다. 구어체로써 사람들이 빨리 발음을 하다보면 이렇게 줄여서 발음을 한다고 되어 있다. 한국에도 줄임말이 많이 있듯이, 이곳에도 SNS 상에서 쓰는 줄임말이 있는데 이렇게도 쓴다고 나와 있었다. 물론 제대로 된 문장을 쓸 때에는 Chui 라고 쓰면 안된다.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를 그림을 곁들여 글로 풀어냈다.


무엇보다도 프랑스어로 글을 썼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단어와 단어를 이어 문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처음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알파벳을 배우고, 단어를 익히고, 글쓰기를 조금씩 했다. 초등학교에 다닌 지 1년이 되자, 아이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사실이 너무도 놀라웠다. 내가 시킨 것도 아니고, 글을 쓰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학교에서 글자를 배우고, 글쓰기를 배워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표현한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림, 춤, 악기, 글... 그동안에는 주로 그림과 춤으로 표현을 했다면 이제는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1년 만에 글을 쓰게 된 아이를 보고, 나는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물론 1년이란 시간이면 충분히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왜냐면 아이에게 집에서 공부하라고 하지 않았고, 글을 쓰라고도 하지 않았다. 이전에 매일 일기를 써보자고 하긴 했지만 3일 정도 하다가 말았다. 그랬던 아이가 학교에서 보낸 시간을 통해 프랑스어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학생들의 문해력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아이들이 글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고, 글을 잘 쓰지도 못해서 문제가 많다고 한다. 이런 뉴스 기사를 접할 때면 우리 아이는 잘 되고 있는 건지 싶었다. 우리 아이 문해력은 어떤가 궁금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내가 어떻게 해준 것도 없었다. 학교에서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하니까 학교 수업만 잘 따라가면 잘하겠지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2학년이 되자마자 스스로 책을 읽고, 책의 내용을 이해한다. 또한, 그림을 곁들여 3 페이지 짜리의 이야기를 스스로 엮어냈다. 프랑스 공립학교 1년을 꼬박 다니고 난 뒤에 얻어낸 결과이다. 누구는 별것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이보다 더 일찍 책을 읽고 이해하고, 글을 쓰는 아이들도 많다. 하지만 나에게는 의미 있는 결과이다.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알파벳을 잘 몰랐다. 이곳은 선행을 하지 않는 문화라서 미리 글자를 공부시키거나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입학해서부터 책을 접하고 글자를 배웠다. 참고로, 나는 집에서 아이에게 책을 잘 안 읽어줬다. 이는 결코 잘한 것은 아니다. 책을 읽어주면 아이에게 여러모로 좋다고들 하지만 그래서 아이에게 동화책을 자주 읽어줘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솔직히 그게 쉽사리 잘 안되었다. 집에서는 매우 적은 양의 학교 숙제만 했다.


아이에게 학교에서 모든 공부를 끝내야 하니, 학교 수업 시간에 최대한 집중을 하라고만 자주 얘기했다. 사교육 하지 않고, 학원도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서 하는 수업만 잘 따라가도 아이는 책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아이라는 존재는 잠재력이 풍부하다. 아이에게 여유와 시간을 주면, 그리고 아이를 믿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아이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책 읽고 글을 쓰는 과정은 아이가 한국어와 프랑스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게 된 것도 비슷하다. 나는 아이에게 한국어와 프랑스어를 가르치지 않았다. 아이는 엄마 아빠가 대화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한국어를 따라 배웠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프랑스어를 말하게 되었다. 두 언어를 말하게 되기까지 시간은 다소 걸렸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한국말이 느리다고 걱정하지 않았고 조바심을 내지도 않았다. 그저 아이를 믿고 기다렸다. 언젠가는 말하겠지 하며 하루하루 즐겁게 보냈다. 그런 시간이 쌓이고 쌓여서 아이는 만 4살이 되자 한국어를 하게 되었고, 만 5세가 되자 프랑스어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두 언어 모두 유창하다. 주변 지인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외국인 악센트가 전혀 없으며, 프랑스 아이들과 똑같이 말한다고 했다.


한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배움에 있어서 믿음과 기다림의 미학을 깨달았는데, 이번에 아이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믿음과 기다림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 아이들의 잠재력을 믿자. 곁에서 응원하고 칭찬해주자. 아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속도대로 한 발 한 발 스스로 내딛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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