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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Mar 13. 2020

두 할아버지는 늘 같이 다닌다

프랑스의 동성 커플

내가 사는 파리 16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거주하신다. 16구는 파리 부촌으로 알려져 있고,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노인 분들이 남은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며 살아가신다. 서울 집값이 비싸서 일산과 분당으로 나가서 사는 한국인들처럼 파리도 집값이 비싸서 파리지앵들이 파리 외곽 지역으로 나가서 많이들 산다. 돈 자랑하려는 의도는 아니고, 우리는 회사에서 집 값을 서포트해주기 때문에 높은 월세를 감당할 수 있다. 같은 층에 4가구가 사는데 다 노인 분들이고, 우리 집 위층에도 모두 노인분들이다. 나의 가장 친한 이웃은 바로 윗집 크리스티안 할머니와 기 할아버지라는 웃픈 현실. 덩달아 우리집 아이도 또래 친구들과 할 플레이 데이트를 할머니 할아버지와 한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오며 가며 이웃들과 자주 마주친다. 거의 대부분이 노인분들인데 그중 눈에 띄는 할아버지 커플이 있다. 처음에는 단짝 친구분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시고 늘 같이 다니신다. 마트도 같이, 모든 것을 함께 하셨다. 보통 게이는 한눈에 알아보지 않는가. 한 할아버지 차림새가 게이 같다. 약간 여성스럽다고 날까. 마른 몸에 딱 붙는 청바지에 구두, 늘 크로스 백 착용. 영락없는 게이 노인 패션이다. 그런데 연세는 70세는 족히 넘어 뵌다. 그야말로 노인 게이 커플! 왜 게이들은 나이가 들어도 하나같이 몸매가 좋은 것일까.


처음 파리에 왔을 때는 게이들이 서슴없이 뽀뽀하고 팔짱 끼고 다녀서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작년에 소르본 어학당에서 한 학기 프랑스어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선생님도 레즈비언 할머니였다. 말하고 나니 좀 웃기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 할머니는 남성미가 물씬했다. 늘 짧은 커트 머리, 마른 몸매에 딱 붙는 블루진 또는 블랙진(슬프게도 청바지 핏감이 너무 좋다.) 운동화 차림에 목소리는 남성적이었다. 남자처럼 말하는 오랜 습관으로 말투라던지 목소리가 굳어진 듯했다. 그리고 줄담배를 피우신다. 발음 담당 선생님이신데 발음을 따라 해 보세요 하며 입을 열면 담배 냄새로 진동을 한다. 한 학기 내내 옷차림이 그렇했다. 액세서리, 스카프, 가방은 일절 없었다. 한국 같으면 할머니를 학원 선생님으로 고용도 안 했을뿐더러, 동성애자 할머니면 더욱 꺼렸을 것이다. 종로, 강남 일대 학원가를 한때 나도 줄기차게 다녀봤지만 인기 스타 강사라고 해서 일단 포스터에 강사의 인물들이 무슨 미인 미남 대회 선발하듯이 하나같이 외모가 출중하다. 외모가 출중해야 학생들도 더 수강을 하는 기이한 현상은 우리나라뿐일듯하다. 프랑스는 학원에 젊고 예쁘고 잘생긴 강사보다는 경력이 많은 늙은 강사들이 더 많다. 내 개인적인 경험에 국한될 수도 있는 발언이지만 최소한 내가 경험한 학원 강사들은 대부분 연세가 있고 (물론 젊은 강사도 있다. 그런데 할머니 강사는 정말 신선한 경험이었다.) 옷차림과 화장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분들이셨다. 자유분방하고, 남 의식하지 않고 개방적인 것으로는 탑을 찍는 도시가 아닐까 싶다. 결론적으로 프랑스는 고용에 있어서 개인의 성적 취향과 외모는 크게 고려 대상이 아니다.


아이 학교에서 학부모 모임이 있어서 갔다. 아이와 친한 친구 Anouk의 어머니는 남자였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어머니 하면 우리는 으레 여자라고 무의식 중에 떠올리지만 남자가 어머니일 수도 있다! 편견을 깨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Anouk 어머니라고 소개하며 내게 인사를 하는 그 어머니는(아버지라고 해야 할지 순간 망설였다.) 명문대를 졸업한 훈남 변호사이다. 그는 프랑스인이고, 그의 남편은 미국인인데 부부가 아이를 입양한 것 같았다. 딸아이는 참으로 똘똘하고 밝았다. 하루하루 성장하면서 그녀는 왜 우리 엄마는 남자일까 하며 다른 집 엄마들과 비교하며 의아해하겠지만,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조금 더 일찍 성에 대해, 사회적 편견에 대해, 인생에 대해 철학하고 사고하는 멋진 여성으로 자라날 것이다.


한국인인 나는 아직은 할아버지 동성 커플이, 할머니 동성애자 선생님이, 남성이 어머니인 사실이 조금은 낯설지만, 한국의 커밍아웃 대명사 홍석천 씨도 먼 훗날 나이가 들면 그런 모습일 것이다. 시대감이 조금 빠른 파리의 모습은 곧 도래할 한국의 미래 모습들이 아닐까 싶다. (유교 문화가 강한 한국이라 곧 도래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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