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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Oct 04. 2021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유튜브에서 우연한 알고리즘에 의해 '멜로다큐: 9살 승준이'의 삶에 관한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은 옛날 것이고, 지금쯤 아마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한다. 승준이의 엄마는 승준이를 낳고 1년 정도 있다 유방암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이런 이야기는 흔해서 여기까지는 그다지 감동을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5편에 이르는 영상을 다 본 뒤에 나는 이 영상을 반복해서 보았다. 각 5번 정도 본 것 같다. 그 이유는 이 영상 속의 승준이가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외할머니가 승준이를 홀로 키웠는데, 둘은 너무도 가난한 집에 살고 있었다. 부산 범일동이었다. 판자촌에 살고 있었다. 승준이는 티 없이 해맑았다.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는데, 둘은 너무도 애틋했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였다. 집은 가난하지만, 방에는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지만, 먹을 음식은 별로 없지만, 승준이는 행복해 보였고, 안정감 있어 보였다. 엄마 아빠가 없어서 슬프진 않을까 싶었는데 5편 내내 아이 얼굴은 밝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았다. 태권도도 열심히 했다. 할머니가 차려주는 소박한 밥상도 불평불만 없이 잘 먹었다. 딱딱한 방바닥에 이불 한 장 깔아놓고 잠을 자지만 둘이 껴안으며 등을 서로 토닥토닥하며 자는데 그 어떤 잠자리보다 다정하고 편안해 보였다.


엄마 또는 부모라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어떤 누구라도 좋으니 단 한 명이라도 어릴 적부터 아이 옆에서 무한 사랑과 신뢰와 지지를 해주면 그 아이는 안정적으로 잘 자란다. 승준이에게는 외할머니가 그런 존재였다. 구김 없이 밝고 맑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외할머니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 덕분이었다. 할머니는 손자를 볼 때마다 딸이 생각나고, 엄마 없이 크는 손자가 불쌍해서 사랑만 주었을 것이다. 자식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보면 아이에게 화낼 수 없고, 혼낼 수 없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서, 내가 투자한 만큼 뭔가 아웃풋이 나오지 않아서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승준이 할머니는 자신의 뜻대로도 없으며, 투자한 것도 없으니, 아니 해준 게 없으니 되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이를 무조건 사랑하고 아껴줬을 것이다. 화를 내고 싶어도 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이다. 해준 게 없으니까, 엄마 없이 커서 미안하니까, 불쌍하니까 그냥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 잘 크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미안하고 불쌍하고 안됐고... 복잡한 심정으로 그저 손자를 사랑으로 키웠을 것이다. 


요즘 아이 키우는 것이 힘들다고들 한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에게 화가 난다고들 한다. TV 채널 또는 유튜브 채널에 아이에게 문제가 있어서 고민이라고 사연을 들고 나오는 방송들이 있다. 대게 승준이 또래 아이들인데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부모들이 솔루션이 없을까 답답한 마음에 출연한다. 문제가 생긴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고, 각자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승준이 경제적 사정보다는 낫고, 부모 둘 다 또는 한 명은 살아 있다는 점이다. 


승준이는 부모도 없고, 오직 할머니와 함께 판자촌에서 살았다.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고, 태권도 등 운동도 좋아하며, 밝고 씩씩하다. 또한 어른스럽다. 취재진이 엄마 아빠 관련 질문을 해도, 슬픈 내색 하나 없이 자신은 괜찮다고 말한다. 물론 그 사정을 알고, 일찍 애어른이 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5부에 걸친 영상에서 본 승준이는 내가 생각할 때 멋졌다. 멋짐 그 자체였다. 너무 사랑스러웠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일은 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좋은 것 사다 해주려고 애쓰기보다는 사랑을 주려고 하자. 아이를 때로는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가 불쌍해...라고 생각하면 화를 낼 수가 없다. 욕심을 가질 수가 없다. 다그칠 수가 없다. 그저 사랑해...라는 말 밖에는... 


68세 할머니가 없는 돈에 무슨 교육을 시키셨을까. 그저 잘 먹고, 잘 자는 것을 도와줄 수밖에... 그리고 학교에 잘 다니게 하는 것 밖에는 해주실 수가 없었을 것이다. 국가 보조금 27만 원, 급식 도우미 20만 원이 한 달 수입이다. 그것으로 생활을 해나가는데 승준이에게 대단한 교육을 해줄 수는 없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승준이는 잘 컸다. 내가 본 봐로는 잘 컸다고 말할 수 있다. 


김붕년 서울대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EBS 초대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일상의 기적이라는 말을 쓰고 싶습니다. 아이의 의지, 관심사와 무관하게 부모가 좋은 선생님, 좋은 교구, 좋은 교육을 제공하는 등 일시적 자극이나 경험으로는 부분적인 변화만 있을 뿐입니다. 매일매일의 생활이 중요합니다. 매일의 생활 속에서 아이의 정서를 살피고, 정서적 교감을 하며,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며, 매일 이뤄지는 자연스러운 일상적 삶을 통해 아이는 바르게 자랄 수 있습니다."


일상의 기적. 정말 멋진 말이다! 매일매일 아이와 나누는 시간이 중요하다. 순간순간 나누는 눈빛, 대화, 말투, 포옹... 그리고 함께 시간 보내며 몸으로 같이 놀기... 그 속에서 서로의 애정과 믿음이 굳건해지고, 공감력을 키우며, 자존감이 높아지며, 유대감은 쌓인다. 


다른 대단한 공부, 교육, 과외...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이와 서로 눈을 지그시 마주 보는 시간이 있는가? 아이의 눈동자를 부드럽고 따뜻한 눈빛으로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아이는 부모에게 무한한 애정과 안정감을 느낀다. 아이 눈은 보지는 않은 채, 아이와 책상 앞에 나란히 앉아서 책만 뚫어져라 읽거나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서 악보와 건반만 쳐다보며 연습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 아이와 서로 두 눈을 마주 보는 것이 더 낫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좋은 것을 더 해주고 싶어 하지 말고, 그저 내 아이를 한번 더 앉아주고, 눈을 마주 보며,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자. 


승준아. 잘 지내니?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하던데 여전히 행복한 미소를 간직하며 지내는지... 

할머니는 잘 계시는지...


https://youtu.be/ROaDHHiSudA

9살 승준이와 외할머니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2ZqaGLnQYJ8

김붕년 교수의 유튜브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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