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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Aug 16. 2021

기록이 깨졌다

화를 내던 날...

내 육아 철학은 '아이는 가장 귀한 손님입니다'이다.

이 명제를 바탕으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두 가지만 붙들기로 했다.

첫째,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둘째, 부부가 싸우지 않고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좋다는 것 다 하면 물론 좋겠지만, 체력적으로도 그렇고 내 한계를 잘 안다. 아이에게 대단한 교육을 제공하고, 좋은 것 먹이고 입히는 것도 좋겠지만... 이 두 가지만 잘 지켜도 교육의 반 이상은 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나는 어디 가서 "저는 아이에게 화를 낸 적이 없어요. 아이에게 정말 화가 안 나요."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기록이 깨지는 날이 거짓말처럼 왔다.

(다행히 두번째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아이가 만 5살 생일이 조금 지났을 무렵...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인지,  아이의 행동이 내 눈에 거슬렸던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아마도 이 모든 것이 복합적이었던 것 같다), 아이에게 그 당시 4~5번 정도 짜증을 냈다. 화를 냈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아이는 그때 당시 엄마의 이런 행동에 적지 않게 당황했고, 울음을 터트렸다.


화를 내지 않던 엄마가 갑자기 자기를 향해 화를 내고, 짜증 내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무서울 수밖에...


그렇다.

아이는 그 당시 낯선 엄마의 모습에서 무서움을 느꼈다.

'엄마가 나를 싫어하나?'라는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나도 화를 내고 짜증 내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 자신에게 화가 났고, 내가 왜 이렇지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첫째, 내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 당시 몸이 피곤하고, 신경이 예민하며, 지쳐있기 때문에... 즉, 내 문제가 아이한테 투영된 것이다. 아이는 늘 똑같은 아이였다. 근데 나에게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아이이게 괜스레 화가 난 것이다.

결국 내 문제였다.


둘째, 만 5살이 지났을 무렵, 아이에게 전에 없던 이상한 행동이 나타났다. 우선 헛기침이 잦았다. 처음에는 목감기인 줄 알고, 병원에 데려갔는데 가벼운 염증이 있다면서 항생제를 처방해주었다.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해서 약 먹으면 낫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헛기침은 계속되었다. 목이 아파서가 아니라 일부러 소리 내는 틱 증상 같은 기침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주변에서 누가 기침 한 번만 해도 다들 뒤돌아보는 분위기... 우리 아이는 길거리에서 온갖 눈총을 받았다. 뒤돌아보니 아시아인이다. 그 눈총은 더욱 따갑게만 느껴졌다.


기침이 조금 잦아드나 싶더니, 빈뇨 증상이 새롭게 나타났다. 5분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했다. 헛기침 증상 3주, 빈뇨 증상 3주 이렇게 도합 6주간 전에 없던 새로운 행동을 보였다. 아이의 이상 행동이 내 눈에 조금 거슬렸던 듯싶다.


아이에게 4~5번 화를 낸 그 후로는 다행히 지금까지 화를 내지 않았다. 화를 내는 엄마 모습에 아이는 불안했을 터....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화를 내서 미안해. 사과할게. 용서해줘. 우진이가 헛기침을 자주 하고, 화장실을 자주 가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일 텐데 엄마가 그 모습에 공감하지는 못할 망정 화를 내고 말았네. 미안해."

"엄마가 피곤해서, 엄마가 두통이 있어서 그런 건데 괜히 그 화살이 너에게 돌아갔네. 미안해."


우진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화내지 마. 한국 가서 화내면 안 돼."


나는 이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띵~ 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달력의 숫자를 지워가며 한국 가는 것이 마냥 즐거운 줄만 알았는데, 이와 동시에 마음에 부담도 자리 잡았던 것이다.


성장 과정이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이전에 없던 감정도, 마음도 생겨나고 있었다.


올여름은 한국에서 보내기로 했다. 이 두 증상은 한국 가기 한 두 달 전에 나타났다. 한국 가면 뭔가 자신이 어른스러워져야 하고, 오줌 싸면 안되고, 기저귀 차면 안되고, 한층 성장한 모습을 사촌 동생과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보여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자신에게 화를 내는 엄마의 모습을 원하지 않는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아이에게 화를 내면 안 된다.


비록 내 기록은 61개월 즈음에 깨졌지만, 이를 통해 얻은 값진 교훈이 있다.

아이에게 화를 내면 아이 정서에 정말 좋지 않다는 사실
아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상처를 잘 받는다는 사실
엄마는 따뜻한 존재여야 하지 무서운 존재가 되면 안 된다는 사실


헛기침과 빈뇨 증상은 각각 딱 3주씩만 앓고 끝이 났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한국에 간다고 하니까 여러모로 아이가 불안했던 것 같다.

그 당시 내가 자주 했던 말이,

"우진이는 이제 형아야. 가면 사촌 동생이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컸다고 하실 거야. 올해 9월부터는 이제 유치원에서도 상급생이 되네."


어느 날은 우진이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 한국 가서 침대에 오줌 싸면 어떡하지?”

“사촌 동생이 내가 기저귀 차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떡하지?"


우진이는 오줌을 싸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강박증이 생겼던 것이다. 오줌 싸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에 오줌이 나오는 느낌에 더욱 예민해졌고, 5분마다 화장실을 찾았다.


나는 매일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우진아, 오줌 싸도 괜찮아. 엄마는 8살에 이불에 오줌 싸서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소금 받으러 다녔어. 너는 아직 만 5살이야. 오줌 얼마든지 싸도 괜찮아. 침대에 싸도 되고, 이불에 싸도 괜찮아. 한국 가서 오줌 싸도 괜찮아. 사촌 동생도 아직 오줌 싸. 너는 아직 8살도 안된 어린 아이야."


물병을 들고 다나면서, 오줌 누고 싶다하면 언제든지 물병을 갖다대고 편안하게 오줌 누게 해주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것이 가장 중요했다. 기침도 할때면, 편안하게 바라보고 얼마든지 하도록 편안하게 해주었다.


우진이는 내 말에 솔깃한 관심을 보이면서도 여전히 불안해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5분마다 화장실을 찾던 아이가 3주 만에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아이의 마음을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전에 없던 이상 행동 또는 증상을 보인다면 무작정 혼내거나, 다그치거나, 불안해하기보다는 무엇 때문에 이런 증상이 생겼을까 생각한 뒤, 아이와 차분히 대화를 해서 불안한 무엇인가를 속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분명 아이는 전에 없던 새로운 감정이 생겨나고 있다. 매일 시시각각 마음과 감정이 생겨나고, 자라고 있다. 성장하는 과정이다. 그것을 부모가 잘 살피며, 이해하고, 공감해주며, 아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편안하게 해준다면 아이의 새로운 이상 행동 및 증세는 언젠가는 분명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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