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퇴직연금으로 집 사는 한국

연금까지 끌어 집 사는 한국, 위험한 내 집 마련 현실

by 김용년

연금까지 끌어 집 사는 한국, 위험한 내 집 마련 현실


퇴직연금을 중도 인출해 주택을 구매하는 사례가 한국에서 급증하고 있다. 미래 노후 대비를 위한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연금의 본래 목적이 퇴색되고 있다. 반면, 같은 제도를 운영하는 호주는 철저한 규제로 연금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것을 막고 있다.


퇴직연금 중도 인출, 4년 만에 두 배 증가


통계청의 2023년 퇴직연금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 구입을 위한 퇴직연금 중도 인출액은 1조 5217억 원으로 집계됐다. 2019년 8382억 원에서 4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퇴직연금 적립액 대비 중도 인출 비율을 보면, 한국은 0.87%에 해당하지만, 같은 기간 호주는 0.006%에 불과하다. 한국이 호주보다 100배 이상 미래의 노후 자금을 부동산에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퇴직연금을 통한 주택 구매가 급증한 이유는 중도 인출 요건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무주택자임을 입증하면 확정기여형 퇴직연금과 개인형 퇴직연금에서 연금을 끌어다 쓸 수 있다. 인출 금액과 횟수 제한도 없고, 실거주 요건도 없어 투자 목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호주는 ‘3중 규제’로 연금 유출 차단


호주는 퇴직연금 중도 인출 제도를 운영하면서도 강력한 규제를 통해 연금이 부동산으로 과도하게 흘러가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FHSS(First Home Super Saver) 제도를 통해 퇴직연금에서 주택 구입 자금 일부를 인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만, 세 가지 엄격한 제한을 적용하고 있다.


첫째, 연간 최대 1만 5000 호주달러, 누적 최대 5만 호주달러까지만 인출할 수 있다. 둘째, 생애 첫 주택 구매자만 이용할 수 있다. 셋째, 주택 매입 후 실거주가 필수다.


이러한 규제는 퇴직연금이 본래의 목적을 유지하도록 철저히 관리하며, 부동산 투자로 인해 연금 시장이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퇴직연금으로 집 사는 한국


퇴직연금은 노후 생활을 위한 필수 자산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집값 불안과 내 집 마련 압박 속에서 연금을 미리 당겨 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퇴직 후 안정적인 노후 생활이 어려워질 수 있다.


호주 시드니대 경영대학 교수는 현재 퇴직연금 중도 인출 제도를 정비하지 않으면, 향후 부동산 시장이 상승장에 접어들었을 때 대규모 연금 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의 퇴직연금 시장이 이제 막 성장하는 단계인데, 부동산으로 지나치게 쏠리면 연금 시장 자체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퇴직연금을 이용한 무리한 부동산 투자에 제동 필요


전문가들은 한국에서도 호주처럼 퇴직연금 중도 인출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과 영국도 퇴직연금 중도 인출에 세제 페널티를 부과하고 있다.


미국은 중도 인출 시 10% 페널티 세율이 적용되며, 영국은 55세 이전 인출 시 소득세율 55%를 부과한다. 선진국들은 연금의 조기 인출을 최소화하며 본래의 노후 대비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세금 부담 없이 무제한 인출이 가능해 부동산 투자의 또 다른 자금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처럼 미래를 담보로 하는 주택 매수가 이어진다면, 노후 빈곤층 증가와 연금 시장 불안정성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퇴직연금을 무리하게 주택 구매에 사용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미래를 갉아먹는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후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퇴직연금, 부동산이 아닌 노후를 위해 써야


한국에서 내 집 마련은 생존의 문제로까지 여겨질 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미래를 위한 퇴직연금을 무리하게 당겨 쓰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


퇴직연금의 본래 목적은 노후 생활 안정이다. 연금을 끌어다 지금 당장의 집을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삶을 위한 균형 잡힌 재정 계획이 필요하다. 퇴직연금으로 무리하게 집을 사는 한국과 이를 철저히 제한하는 호주의 차이는 결국 장기적인 금융 안정성과 노후 대비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 한국도 이제는 연금의 본래 목적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지키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저출산, 초등학교 폐교 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