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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음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장자가 들려주는 단단한 마음의 기술 01

by 김용년

쓸모 있음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송나라의 형씨 지방에는 노나무, 잣나무, 뽕나무가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그러나 이 나무들은 제대로 자라기도 전에 베어졌습니다. 굵기가 한 움큼쯤 되면 원숭이를 잡아두는 말뚝이 되었고, 서너 아름쯤 되면 집을 짓는 재목으로 쓰였으며, 일고여덟 아름쯤 되면 부잣집에서 관을 만드는 용도로 베어졌습니다. 결국, 그곳의 나무들은 ‘쓸모 있음’ 때문에 자신의 천명을 다하지 못하고 일찍 잘려나가야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쓸모 있는 것이 가치 있다고 믿습니다. 사회에 기여하고, 조직에서 인정받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 성공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쓸모 있음’은 때로는 너무 이른 희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나무가 단단한 재목으로 성장할수록 더 빠르게 도끼에 베이듯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더 많은 책임을 떠안고, 더 많은 요구를 받으며, 결국 더 빨리 소진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한없이 쓸모없어 보이는 존재들은 오히려 오랫동안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튀지 않는 것들을 쉽게 지나치고, 쓸모없는 것을 건드릴 이유를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출세를 위해 자신을 불태우고, 누군가는 평범함 속에서 조용히 자신의 삶을 유지합니다.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항상 더 유능해지기를, 더 인정받기를, 더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행복한 삶’과 연결되는 것일까요?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아 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장자는 세상의 기준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마가 하얀 소, 들창코 돼지는 불길하다고 여겨져 제사의 희생양으로 선택되지 않습니다. 즉, 세상이 배척하는 것이 오히려 더 안전한 삶을 누릴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가장 쓸모 있는 것들은 너무 빨리 소모됩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더 많은 일을 떠맡으며, 높은 기대치를 충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다가 결국 번아웃에 이르기도 합니다. 반면, 적절히 자신의 역할을 조절하고 균형을 맞추는 사람들은 오히려 무너지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쓸모없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가 정한 ‘쓸모’라는 기준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의 방향은 무엇인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나무가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도끼에 잘리지 않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높이 자라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속도에 맞게 성장하면서도 무리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천명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천명이 ‘더 유능해지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남들이 보기에 ‘쓸모없다’고 평가하는 것이 오히려 더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들의 기준이 아니라, 나만의 기준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스스로를 불태우며 너무 빨리 소진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속도로 천명을 다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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