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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tainsight Oct 25. 2023

힘들어도 셋이 좋았더라

많이 낳아주면 안 되겠니

아이 셋을 키웠으니 난 애국자라며 너스레를 떨어본다. 세 자매로 자란 나는 그냥 당연히 결혼하면 셋은 있어야지 했다. 사춘기 혹독하게 치를 때 왜 셋이나 낳았냐며 엄마에게 대들던 때가 있었는데... 그래도 셋이어서 좋았다. 그래서 당연하게 나도 셋을 낳았다. 딸 둘, 아들 하나. 순둥순둥한 아이들이어서 셋을 남의 손 빌리지 않고 키울 수 있었다.


그래도 애 셋 키우는 일이 만만하지는 않았다. 양가 어머니 찬스도 없었고 오롯이 독박 육아를 했으니... 이제 키울 만큼 키웠으니 좀 천천히 쉬어가고 싶은데 아직도 멀었나 보다. 큰딸은 자기가 벌어 유럽 여행을 다녀오겠노라며 휴학을 했고 한 6개월 아르바이트 한 돈을 모아 유럽행 출발 직전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고등학교 때 쓰레빠 신고 급식실 가다가 살얼음판에서 넘어져 다친 발목이 늘 중요한 일 앞두고 발목을 잡고 있다. 그 발목을 지난여름에 또 다쳤는데 아직도 회복이 덜 되어 엄마 대동해 병원을 들락인다. 둘째는 도자공예를 전공하는데 어제는 작업하다가 새벽에 들어와 가방을 던지고는 쓰러져 엉엉 운다. 잘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석고 작업을 하루 종일 했는데 원형틀이 깨졌다나... 나는 한밤중에 기어 나와 눈도 제대로 못 뜨고 토닥토닥 위로를 건넨다. 셋째는 한 달에 한 번 집에 보내주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카톡 씹기 일쑤인 녀석이 먼저 연락을 하면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뭔 일이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시험 보다가 이명 증세가 생겼다고. 아이고 수업 중에 가슴이 방망이질한다.


엄마 노릇하느라 고생했다고 뭐 칭찬해 주는 사람도 없는데 내가 셀프 칭찬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게 이 정도 했으면 아이들 빨리 독립시키고 내 노년은 멋지게... 까진 아니어도 '하고 싶었던 거 하며 살리라'는 말이 나올 법 한데 난 우리 손자들이 궁금하다. 우리 아이들에겐 실수투성이 엄마였는데 할머니가 되면 아이들 양육을 잘 도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든다는 말이다. 내가 양육하며 반성한 것, 책선생으로 일하며 경험한 것들이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만 같다. 주책이긴 하다. 아이들이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손자 키워줄 생각을 하고 있다니...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결혼을 귀하게 생각한다. 당연히 하는 것으로 생각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요새 아이들은 열 명 중 여덟, 아홉 명은 비혼주의라고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애 셋을 낳겠다고 한다(지엄마 닮아 약간 대책이 없긴 하다). 물론 둘째가 확답을 안 했지만 만약 그 녀석도 셋을 낳아준다면 나는 아홉 명의 손자, 손녀가 생기는 것이다! 와우! 

앗! 아들네는 며느리가 결정해야겠구나...ㅠㅠ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말 걸... 약간의 후회를 하고 있다. 내가 쓸 이야기 중에 많은 부분이 가족 이야기일 텐데 뒷담화를 제대로 못한다는 치명적 딜레마가 생긴 게 아닌가! 사실 속 썩인 놈들 한 녀석, 한 녀석 도마 위에 올려 요리를 제대로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 아쉽네. 남편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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