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tainsight Nov 16. 2023

우리 집 덕선이, 응원해!

사랑하는 땅꼬마 둘째 딸에게

덕선이가 케이크를 앞에 두고 오열한다. 그렇게 언니와 생일 케이크를 공유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언니 생일 축하 한 후 초 몇 개 제거하고 다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려는 거다. 같은 날도 아니고 3일이나 차이 나는데... 나도 마음이 짠해 살짝 눈에 눈물이 비치는데 옆에서 우리 둘째가 운다. 그것도 완전 나라 잃은 표정으로... 얘가 왜 이래... 우리가 덕선이 엄마, 아빠처럼 큰딸, 막내아들만 편애하는 그런 엄빠는 아니라고 자부했건만 누가 보면 엄청 구박받는 줄 알겠네...


암튼 우리 둘째는 이 집에서 좀 특이한 놈이다. 일단 키다리 유전자가 있는 우리 집의 평균을 깎아 먹는 용서할 수 없는 키를 가지고 있다. 뭐 이 녀석의 키는 대한민국 여자 평균키인 160.9cm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지만 우리 집에선 키 큰 나무들 아래서 햇빛 못 받아 덜 자란 것 같은 관목 수준이다. 이건 누가 봐도 유전자 문제가 아니다. 그녀의 지독한 편식 때문이다. 편식이 시작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게 나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첫째 때는 이유식을 정말 많이 신경 썼다. 책도 보고 검색도 하며 열심히 해 먹였는데 둘째 때는 첫째도 돌보며 이유식을 챙겨야 하니 나름 힘이 들었다. 그래서 멸치 육수에 당근, 호박, 감자 등을 다져 넣은 야채죽이나 소고기 첨가해 소고기죽을 끓여주었다. 여러 다양한 맛을 접하게 했어야 했는데 매번 같은 맛의 죽을 주어 아이의 미각을 개발해주지 못해서가 아닐까... 엄마가 반성한다.


어느 날 큰딸을 데리고 운전하며 어딘가를 가고 있었다.

큰딸: 엄마... 난 가끔 기쁨이한테 미안해요.

엄마: 왜?

큰딸: 내가 공부를 못 해서... 엄마가 더 기쁨이를 혼내는 것 같아서요...

엄마:......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냥 내 치부를 아이에게 다 들킨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큰아이는 난독증 진단을 받아서 그 아이의 학습 능력에 대해서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우리의 좋은 모녀 관계를 위해 공부는 더 이상 손대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둘째를 향해 내가 마수를 뻗고 있었던 것이다. 큰딸은 온몸으로 둘째를 향한 엄마의 욕심과 보상 심리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큰아이에게서 얻지 못한 만족감을 둘째를 통해 얻으려 하고 있었다. 너무나 부끄러웠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가 정해 놓은 기준으로 아이를 끌어올리려고만 했다. 나는 그날 어딜 가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도착할 때까지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엉터리 엄마를 통해서도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울 딸은 엄빠가 할머니 빚 갚느라 돈 없다며 미술 입시 학원을 고2 때부터 보내주었는데 대한민국에서 미술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대학에 다니고 있다. 신통방통한 녀석인데 엄마는 중학교 때 공부 안 한다고 그렇게 구박을 했었다. 미련한 엄마... 어느 교수가 내린 '좋은 엄마란?'에 대한 정의가 큰 인싸이트를 준 적이 있다. 좋은 엄마는 '일단 집에는 있는데 늘 아파서 누워있는 엄마'라고 했다. 존재는 있어야 해, 그런데 늘 아파서 애가 하는 일에 간섭을 못 하는 엄마가 최고의 엄마라는 웃픈 정의였다. 아이들이 어려서 들을 때는 웃어넘겼지만 생각할수록 명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 손을 탈 수록 아이는 망가진다는 것이다. 울 딸은 엄마 손을 더 탔으면 큰 일 날 뻔한 케이스다. '엄마가 애가 셋이라 다행이지 무남독녀였으면 오늘의 너는 없다.'




상하이에서 아이들이 다녔던 국제학교는 매해 앨범을 제작한다. Year Book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이주했던 첫 해의 앨범을 살펴보다가 둘째 딸을 발견했다. 다른 아이들은 카메라를 보면서 활짝 웃고 있는데 우리 딸은 선생님 치맛자락을 붙들고 울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날은 Roman Day라고 그 학년 전체가 로마시대 의상을 입고 학교에 가는 날이었다. 난 그게 뭔지도 몰랐으니 한국 코디네이터가 자기 아이가 입었던 옷이라며 거적데기 같은 튜닉 비스름한 것을 빌려주어서 입혀 보냈는데 그날 여자 아이들이 여신처럼 하고 나타난 것이다. 우리 꼬맹이가 얼마나 샘이 났을까! 선생님 붙잡고 엉엉 운 것이다.

다음 학년이 되었다. Tudor Day! 흠... 이번엔 울 딸을 울리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폭풍 검색을 해서 튜더 시대에 입었을 법한 드레스를 아마존에서 찾아냈다. 영국에서 온단다. 받아보니 메이드인차이나! 난 중국에 있는데 중국산을 영국에서 받았어! 어쨌든 신나서 입고 학교에 갔는데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표정이 안 좋다. 왜냐 물으니 알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며 대성통곡을 한다. 사정은 이랬다. 튜더 시대의 왕과 왕비를 투표로 뽑았나 보다. 베스트 드레서를 뽑은 것이지. 그런데 어떤 잘난 척 대마왕 영국 계집애가 왕비로 뽑혔는데 튜더 시대식으로 왕과 왕비에게 무릎 꿇고 인사를 하라고 했나 보다. 그게 너무너무 억울해서 우는 거다. 엄마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삼키며 같이 그 영국 계집애를 욕해줬다.


엄마는 겉은 좀 까칠해 보이지만 속은 무른 사람인데 울 둘째는 겉은 순해 보이지만 속이 단단한 아이라서 안심이다. 이렇게 단단한 사람이 된 게 둘째여서가 아닐까? 사랑 듬뿍 받은 첫째 딸과 위로 누나가 둘인 귀요미 막내아들 사이에서 자기 위치를 잡고 투쟁하듯 살아낸 저력이 이제 발휘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둘째여서 서럽기보다 자랑스러워야 할 것 같다. 이 세상의 모든 덕선이들, 응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