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로 이주한 지 8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갈 생각에 들떠 있었다. 중국 깨가 한국에서는 수입산이라며 천대받지만 중국 현지에서 사는 질 좋은 깨는 한국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선물이었다. 친정 엄마 드리려고 한국 마트에서 참깨를 10KG이나 샀다. 한여름 한낮의 상하이는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한산하다. 40도에 육박하는 땡볕을 누가 걸어 다니고 싶겠는가. 그런데 차가 없는 이주민 노동자의 아내는 조그만 카트에 참깨를 싣고 아이들 점심 챙겨주겠다고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 집은 금색비엔나라는 고즈넉한 유럽풍 아파트 단지였다. 우리 단지 앞에 자전거 도로까지 합하면 거의 12차선이 되는 엄청 큰 도로가 있었는데 그 도로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전봇대 옆에서 시커먼 사람이 나오더니 나에게 물총 같은 것으로 화학 약품 냄새가 나는 액체를 마구 뿌려댔다. 한 10~20초 정도였던 것 같은데 나는 그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얼굴, 목, 팔이 화끈거리고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 소리를 지르며 기침을 해댔다. 염산이라고 생각했다. 그 짧은 시간에 파노라마로 내 인생이 정리되었고 남편과 아이들 얼굴이 지나갔다. 큰 횡단보도 쪽으로 거의 기다시피 걸어갔는데 그곳에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게 아닌가! 마작을 같이 하다가 한 사람이 죽어도 계속 마작을 한다는 중국인의 무관심을 보았다. 남의 일에 끼어들어 괜히 봉변당할까 싶어 그들은 그냥 모른 척한다. 유모차를 끌던 아기 엄마가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영어로 119에 전화하라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전화했고 막 식사하려던 남편은 혼비백산해서 달려왔다. 그때 이후로 남편은 내게서 전화가 오면 살짝 놀라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아파트 수위 아저씨도 건너편 수위실에서 내 흉악한 몰골을 보고 무슨 사건이 터졌다는 걸 감지했는지 달려왔다. 그 아파트 단지에 한국 가족은 우리 밖에 없어 모든 수위 아저씨들이 나를 알았다. 아저씨가 냄새를 맡더니 최루액인 것 같다고 했다. 데모할 때 경찰들이 터뜨리던 최루탄의 원액을 내가 뒤집어쓴 거다. 아저씨의 부축을 받고 집으로 들어갔는데 집에 있던 아이들이 처음엔 내 몰골에 놀라 울고 잠시 후엔 최루액 냄새 때문에 울고 불고 난리였다. 이 사건은 아이들에게도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샤워를 하는데 목 부분의 살갗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얼굴은 선글라스도 끼고 선크림도 바른 상태여서 화끈거리기만 하고 껍질이 벗겨지지는 않았다.
남편이 도착했고 한국 부동산에서 일하는 조선족 아가씨가 경찰서까지 함께 가줬다. 중국 공안 취조실까지 들어가 본 여자다, 내가. 별 일 아니라는 표정으로 공안이 담배 뻑뻑 피우며 묻는 말이 '원한 관계가 있냐?'였다. 지갑이 들어있는 가방은 손도 대지 않고 도망갔기 때문이다. 난 기가 막혔다. 니네 나라 온 지 8개월 된 아줌마가 누구와 무슨 원한 관계가 있겠니... 공안은 17억 속으로 도망간 사람을 어떻게 잡겠냐고 했다. 예의상 근처 cctv를 살펴보겠다고 했지만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행히 며칠 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그리운 사람들 속에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악몽을 잊게 되었고 나의 이야기는 상하이 괴담으로 돌다가 사람들에게서도 잊혔다. 어떤 또라이에게 당했다고 생각하고 마침표를 찍었다. 그런데 얼마 전 옛 생각을 하다가 정말 나는 원한 관계로 인해 테러를 당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어린 사촌 동생도 우리 아이들과 함께 국제학교에 다녔다. 그 아이는 학교에서 방과 후 과정을 하고 가끔 택시를 타고 집에 오곤 했다. 그날도 택시를 타고 집에 왔는데 택시에 지갑을 두고 내렸다는 것이다. 한참 꾸지람을 하고 저녁을 먹고 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열어보니 수위 아저씨였다. 그리고 그 뒤에 젊은 남자가 웃으며 지갑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깜짝 놀라 돌려받고는 아이를 불러 함께 '페이창 셰셰니!'를 연발하며 인사를 했다. 와~~ 누가 중국인의 예의 없음을 욕했나! 우리가 꼭 이 이야기를 널리 퍼트리리라! 정말 우린 감동했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그 택시 기사였을 것 같단 말이다. 내게 최루액 세례를 준 사람이. 우리 아이를 내려주고 자기 갈 길을 가다가 보니 지갑이 뒷좌석에 있는 것을 보았다. 다시 돌아와 수위 아저씨에게 통통하고 키 작은 한국 남자애가 사는 집이 어디냐 물었을 것이고 한국인은 우리 밖에 없었으니 잘 찾아왔다. 기껏 이 수고를 하고 지갑을 전달했는데 이 한국 아줌마는 고맙다고 너스레를 떨고는 문을 닫는다. 열받은 것이다! 지갑을 전달해 주면 돈을 얼마간 주어야 하는 것이 관례였나 보다.(사실 학생 지갑에 돈이 있어야 얼마 있었겠는가...ㅠㅠㅠ) 그 사람은 그걸 바라고 온 건데 이 세상물정 모르는 눈치 없는 아줌마는 '고맙다'만 연신 날리고 문을 닫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다음 단계는 거의 스릴러 수준이다. 매일 우리 집을 지킨다. 사람의 왕래가 없는 시간에 테러를 하기로 정한다. 마침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아줌마가 걸어오고 있다. 그리고 공격!
좀 창피하다. 어쩜 그렇게 마음을 쓰지 못했을까? 일단 중국어를 못하니 이 중국 사람들을 빨리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었을 것이고 어떤 이의 호의에 물질로 보답하는 데 나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가 돈을 바라고 그런 수고를 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정도로 나는 숙맥이었다. 그렇다고 그 인간의 복수가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쪼금 미안해진다.
미궁 속에 빠져있던 상하이 최루액 사건은 내 뇌피셜로 원한 관계에 의한 것이 맞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 퍼즐이 맞춰지기까지 몇 년이 걸렸나... 이렇게 시간은 고통과 분노에 대한 감각을 둔화시킨다. 내가 그때 얼마나 놀랐고 아팠고 치를 떨었는지 이렇게 잊고 그 택시기사 청년에게 미안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내가 그때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부족했는지 알게 되어 다행이다. 그 청년은 나에게 복수해서 시원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