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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tainsight Nov 29. 2023

나답게 살자

슈퍼 토끼/ 슈퍼 거북

유설화 글. 그림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우리 동네에는 청운문학도서관이라는 한옥 도서관이 있는데  작은 폭포에 고즈넉한 정자까지 종로살이의 즐거움 중 하나다. 수업이 갑자기 취소되면 가끔 들러 동화 읽기 삼매경에 빠진다. 


오늘은 너구나! 표지부터 느낌 오는 책 두 권이 내 손에 걸렸다. 토끼와 거북이 비장한 표정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있다. 토끼는 '뛰지 말자', 거북은 '빠르게 살자'. 표지를 보며 왠지 짠하다. 이 녀석들 고생 깨나하며 살았군!


<슈퍼 토끼>는 우리가 다 아는 그 이야기, 토끼가 거북에게 처절하게 패한 이후의 이야기이다. 토끼는 그 경주가 무효라며 여기저기에 호소하고 다니지만 친구들은 이미 냉소적이다. 토끼는 이내 잊히고 결심한다. 다시는 달리지 않겠다고. 달리지 않으려고 도 닦듯 노력을 하다가 털도 빠지고 배도 툭 튀어나온 이상한 토끼가 되어간다. 땅만 보고 걷던 토끼는 얼떨결에 '무작정 달리기 대회'에 휩쓸려 달리게 되고 정말 오랜만에 달리고 또 달리며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자신이 '토끼'임을 확인한다.  


<슈퍼 거북>도 우리가 다 아는 그 이야기, 거북이 토끼에게 통쾌한 승리를 한 이후의 이야기이다. 거북은 슈퍼 거북 신드롬을 일으키며 인기 스타가 되어갔다. 그런데 선천적으로 느린 자신의 모습을 보고 동물들이 실망할까 봐 진짜 슈퍼 거북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공부도 하고 빠르게 달리기 위한 갖가지 험한 훈련을 한다. 거북은 지나갔는지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른 슈퍼 거북이 되어갔다. 그러나 거북은 점점 지쳐간다. 

토끼의 설욕의 도전장을 받아 들고 거북은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다. 경기 당일 거북은 슈퍼 거북의 진가를 보여주며 토끼를 훨씬 앞서 나간다. 한참 앞서 달리던 거북은 며칠 밤을 설쳐서 피곤한 나머지 잠시 쉬어가려다 잠이 들고 이번엔 토끼가 승리한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간 거북은 아주 오랜만에 단잠에 빠져들고 거북으로 누릴 수 있는 느림을 누린다.


뒷이야기 쓰기는 매력적이다. 자기가 이야기를 바꾸고 대장 노릇할 수 있는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슈퍼 토끼>와 <슈퍼 거북>은 참 괜찮은 뒷이야기이다. 전 세계인이 다 아는 그 이야기 속의 토끼와 거북이 정말 이런 애환과 부침을 겪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작가의 상상력과 유머 감각 그리고 통찰력이 멋진 작품이다. 세상의 수많은 어른 토끼와 어른 거북이 읽었으면 좋겠다. 자기가 토끼인 것을 잊고 혹은 거부하고 달리지 않는 토끼에게, 거북인데 빠르게 살겠다고 눈에 실핏줄 터져가며 자신을 볶아 때리는 거북에게 '너답게 살아'라고 메시지를 전한다. 

둘의 공통점은 남의 판단과 평가가 기준이었다는 것이다. 남이 한물 간 토끼라고 하건, 쟤는 더 이상 토끼가 아니야라고 하건 간에 그런 외부의 이야기가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면 내가 나를 가장 잘 알아야 하고 나는 늘 나와 대화를 하고 있어야 한다(글쓰기는 가장 좋은 대화 채널^^).

그리고 이야기 속 토끼와 거북은 실패를 통해서 가장 연약해져 있을 때 자기정체성을 깨닫고 성장했다. 갑각류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단단한 껍질에 싸여있는 갑각류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그 아이들은 허물을 벗는다. 킹크랩, 왕가재도 허물을 벗고 나온 순간은 누구에게나 잡아먹힐 수 있는 연약한 상태이면서 성장을 이루는 순간이다. 우리도 상처받고 무너지고 실패했을 때 그때가 더 단단해지기 위해 준비하는 순간 아닐까?


아름답다를 15세기에는 ‘아람답다’로 표기했는데 ‘아람’이라고 하는 명사는 15세기어에서 나(私)의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아름답다의 뜻은 '나답다'라는 것이다. 토끼는 달릴 때 아름답고, 거북은 목을 쑥 빼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볼 때 아름답다. 나의 나다움은 무엇일까? 반백년을 살아도 명확한 답을 내리긴 어렵지만 그래도 얼추 내게 어울리는 길에 올라서 있는 것 같다.




위 그림의 디테일을 보자. 거북이 가지고 있는 파워스트레칭 교본은 토끼용이다. 가지고 있는 컵에도 모두 토끼가 그려져 있다. 거북의 경쟁 상대가 토끼라는 설정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않은가!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경쟁 상대가 아닌 사람과 싸우려고 실핏줄이 터지고 천년은 늙은 사람처럼 살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토끼인지 거북인지 확실히 알게 되길, 그리고 알았으면 자기답게 아름답게 살아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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