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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tainsight Dec 04. 2023

아빠는 업그레이드 중

<수영장에 간 아빠>를 읽고

<수영장에 간 아빠>

유진 글. 그림


수영 이야기만 나오면 나는 작아진다. 수영을 못한다. 시도를 안 한 건 아닌데... 수영 강사도 거의 포기했다 해야 할까? 물에 뜨긴 한다. 그런데 발차기를 신경 쓰면 팔 돌리기가 안되고 팔 돌리기를 애써 하면 숨쉬기를 못한다. 결국 강사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난 자존심 상해서 그만두었다. 제대로 익힐 때까지 참고 계속 연습을 했어야 했는데 물이 주는 공포가 그걸 이어가지 못하게 했다. 다행히 울 아이들은 수영 강습을 잘 따라와 주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엄마의 필사의 고집으로 끝까지 하게 만들었다. 엄마가 물에 빠지면 너희가 구해줘야 하지 않겠니?


사람은 외모로 취하면 안 되지만 책은 외모가 매우 중요하다. 읽을지 말 지 선택의 기로에서 표지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표지 선정에 심혈을 기울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배가 남산 만한 아빠가 수영장 벽에 붙어있는 모습이 익살스러워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보라의 아빠는 수영을 못하는 아빠다.  이론만 빠삭한. 수영도 못하고 물도 무서운 아빠가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딸이 걱정되어 함께 수영장에 간다. 아빠는 숨쉬기도 발차기도 어렵다. 보라는 아빠에게 유아풀에서 함께 연습하자 한다. 표지 그림이 바로 아빠가 주위 눈치를 살피며 게걸음으로 유아풀로 향하는 장면이다. 아빠와 보라는 서로의 자세를 봐주며 유아풀에서 연습을 한다. 그러다가 보라가 킥판 없이 수영을 해야 하는 날이 다가왔다. 몸이 가라앉았지만 당황하지 않고 보라는 바닥을 치고 올라왔다. 보라는 수영을 혼자 다니고 아빠의 수영도 늘었다.


줄거리를 쓰고 보니 참 밋밋하고 재미가 없다. 그러나 이 책은 일러스트와 함께 볼 때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책의 초반에 나오는 보라는 아빠의 손바닥 만한 크기로 그려져 있다. 아빠의 어깨에 올라타고 유아풀에서 연습하고 놀 때 작고 귀여운 새 같다. 그런데 킥판 없이 수영하던 날 바닥을 치고 물 밖으로 혼자의 힘으로 올라왔을 때 보라는 거인처럼 커져있다.

"보라야, 괜찮아?"
허둥지둥 헤엄쳐 온 아빠가 물었어.
"응. 근데 나 물속에서 올라오는 거 봤어?"
"봤지. 아주 멋지던걸."

엄마는 원더우먼이고 아빠는 슈퍼맨이던 시절, 그들이 내 세상의 알파와 오메가이던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다. 엄마는 뭐든 다 아는 척척박사요 아빠는 못하는 게 없었다. 그땐 그렇게 크고 넓어 보이던 아빠의 어깨가 점점 작아지고 엄마, 아빠도 결점투성이의 인간인 것을 알아버리는 날이 온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복잡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갑자기 보조바퀴가 사라진 자전거를 타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 책 속의 부녀 관계는 참 독특하다. 처음부터 아빠가 약간 지질하다. 딸은 잘한다고 칭찬받는데 아빠는 그까짓 발차기랑 숨쉬기도 어려워한다. 세숫대야에서 연습하면서도 아빠는 자꾸 물을 마신다. 그렇게 딸 옆에서 딸의 성장을 보는 아빠는 근육 빵빵 슈퍼맨 아빠가 아니라 배불뚝이 맥주병 아빠다. 아빠도 못하는 게 있고 무서운 게 있다. 그러나 굳이 도전을 한다. 아빠니까. 그런 아빠를 보는 딸의 따뜻한 시선이 좋고 '그래, 나 무서워'라는 아빠의 솔직함이 좋다.


부모 고시 같은 게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엄마, 아빠가 되어 아이들에게 못 보일 꼴을 많이 보인 탓에 부모 되려는 자들은 모두 시험을 쳐야 한다고 넋두리를 했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완벽하게 준비된 부모가 어디 있으랴. 어쩌다 보니 엄마, 아빠라는 감당 못할 호칭을 부여받고는 좌충우돌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부모란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아이들과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며 함께 성장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작가의 자기소개 글이 너무 좋다.

딸이라면 쩔쩔매며 걱정하는 아빠, 무슨 일이든 쫓아다니며 다 챙겨주는 아빠
딸 앞에서는 슈퍼 히어로가 되고 싶은 아빠지만, 사실 아빠는 못하는 것도 많고 겁도 많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딸은 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니까요.
딸과 함께 자라고 있는 세상 모든 아빠들에게 드립니다.




약간 뜬금없지만 내 감정선을 건드린 장면이 있었는데, 보라가 키판 없이 물에 들어갔다가 가라앉는 장면이다.



사람들이 보였지만 도와 달라고 말할 수 없었어.
그래도 당황하지는 않았어.
어떻게 올라가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거든.
나는 힘을 빼고 바닥에 발이 닿을 때까지 기다렸어.




가라앉을 때 가라앉지 않으려고 몸에 힘을 주다가는 허우적대다가 물만 먹는다는 것을 수영을 못하는 나도 이론적으로 안다. 보라가 했듯이 힘을 빼고 바닥에 발이 닿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툭 차고 올라오는 것이다. 인생의 바다에서 많이 허우적거렸다. 지금도 그러고 있는지도... 보라의 가르침대로, 올라가야 하는 방법은 평안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바닥을 칠 때까지. 그리고 툭 차고 오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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