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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tainsight Nov 08. 2023

사랑은 꽃씨를 타고

<리디아의 정원>을 읽고

THE GARDENER

By Sarah Stewart

Illustrated by David Small


내 마음을 끄는 주인공들은 늘 아픔이 있는 아이들이다. 우리 인생의 아픔과 고통은 여러 색의 물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색의 물감을 마음 창고에 차곡차곡 쌓는다. 가지고 있다가 하나하나 꺼내 조용히 색칠하는 거다. 찬란한 빛깔로!


우리의 주인공, 리디아도 아픔이 있다. 대공황의 여파로 아빠가 직장을 잃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외삼촌인 짐이 리디아를 자신에게 맡기고 살아낼 궁리를 하라고 했나 보다. 리디아는 생면부지의 무뚝뚝한 삼촌 짐에게 간다.


리디아는 꼬마 원예가이다. 할머니와 함께 텃밭도 가꾸고 꽃과 나무 돌보는 일을 무척 좋아했다. 짐 삼촌에게 가면서도 꽃씨를 챙겨간다. 리디아가 삼촌에게 간 후로 삼촌의 빵집은 예쁜 꽃들이 담긴 화분으로 가득 차 활기가 넘친다. 리디아는 어느 날 버려진 박스들이 널브러져 있고 굶주린 비둘기들만 날아드는 황량한 옥상을 발견하고 멋진 계획을 세운다. 짐 삼촌을 웃게 만드는 계획. 보이는 컵과 화분마다 꽃씨를 심고 창 밖 화분마다 무, 양파, 상추를 기른다.


독립기념일날이 디데이다. '엄마, 아빠, 할머니께서 저에게 가르쳐주신 아름다움을 다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고사리 손으로 한 수고를 편지로 전한다. 그리고 무뚝뚝한 삼촌을 깜짝 놀라게 한다. 책에서는 웃는 모습이 나오지 않았지만 분명 세상에서 가장 멋진 웃음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정이 담뿍 들었는데 아빠가 취직하셨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고 리디아는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웃을 줄 모르던 삼촌은 떠나는 리디아를 꼭 안아주고 가게에서 기르던 검은 고양이 오티스를 딸려 보낸다.


리디아는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인 게 분명하다. 사랑받은 사람은 사랑을 나눌 줄 알고 주변을 밝게 변화시킨다. 온통 칙칙함이 가득했던 짐 삼촌네 빵집도, 짐 삼촌의 얼굴도 리디아 덕에 환해졌다. 책을 읽으며 나는 리디아를 이렇게 예쁘게 키운 부모님이 보였다. 그들은 삽화로만 등장한다. 그것도 매우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직장을 잃고 딸아이를 혼자 사는 무뚝뚝한 처남의 집에 보내야 하는 가장의 참담한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림이다.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 상의하는 부부의 모습에서 그들의 한숨이 들린다. 기차역에서 딸아이를 쳐다보지 못하고 외면하고 있는 아빠의 안경 속 눈물이 내게는 보인다. 돈이 없으면 참 불편하다. 하나 있는 자식도 건사하지 못할 정도의 가난이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가난의 불편함을 무색하게 하는 이 가족의 힘이 있다. 그 힘을 무슨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리디아가 삼촌에게 가 있으면서 엄마, 아빠, 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 힘이 담겨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매몰되어 한숨 쉬고 주눅 들거나 자기 연민에 빠져있지 않는다. 리디아는 할 일을 찾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그런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을 회복탄력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고 넘어지면 툭툭 털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그 힘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사람에게서 강하게 나타난다고 읽은 적이 있다. 리디아가 이렇게 강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와 부모님에게서 받은 무조건적인 사랑 덕분이었을 것이다. 리디아는 그 힘으로 주변을 찬란하게 채색한다.




딸: 엄마, 참 어려운 일 겪은 애들이 많아요.

엄마: 그래?

딸: 난 참 평탄하게 살아온 것 같아요.

엄마:....


딸아이가 엠티 다녀와 친구들 사는 이야기를 듣고는 해준 이야기다. 우리 가정도 그다지 평탄한 길을 걸은 건 아닌데 우리 딸은 그 굴곡을 못 느꼈나 보다. 그 굴곡을 못 느꼈다는 건 누군가 쿠션 역할을 했다는 뜻일 거다. 낭떠러지 바로 앞에서 세찬 바람맞으며 나는 덜덜 떨며 울었는데 우리 딸은 그 바람을 못 느꼈나 보다. 누군가 덮어준 따뜻한 담요 덕에.

리디아는 리디아가 마주하는 작은 파도를 잘 감당했다. 그러나 아빠와 엄마가 감당해야 할 파도는 훨씬 크고 무서운 파도였다. 아빠와 엄마가 잘 버티고 있었기에 리디아가 그렇게 밝고 아름다운 아이로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은 <리디아의 정원>인데 난 리디아의 부모님을 묵상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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