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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tainsight Apr 18. 2024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를 읽고

글: 류귀복

출판사: 지성사


브런치 작가님들은 천사 같다. 지금도 햇병아리이지만 글 몇 개 올리고 잔뜩 소심해져 있을 때 따뜻한 댓글로 자존감에 날개 달아주시는 작가님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브런치를 소리소문 없이 접었을 것이다. 이분들은 응원이 필요한 작가들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명감을 가진 듯 부족한 나의 글에 과분한 칭찬과 격려를 부어주셨다. 그 천사들 중에 남자 천사는 드물었는데, 이 남자 천사, 천재 작가님은 와우! 댓글의 정겨움이 만렙이다. 


이미 많은 작가님들이 독후감을 쓰셔서 부족한 글로 누를 끼치는 건 아닌가 싶다가 내가 매일 아이들에게 말하는 '읽었으면 써야지!'가 생각나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이 책은 '당신은 지금 잘 지내고 계신가요?'로 시작하고 끝이 난다. 작가에겐 '잘 못 지낸다'라고 답할 이유가 있다. 그는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난치질환을 앓고 있어 2주에 한 번씩 주사치료를 받고 있고 한 달의 반은 아픈 상태로 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잘 지낸다'의 기준치를 낮게 잡고 잘 지내는 것을 선택한다. 다른 말로 그는 행복을 '선택'한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그런 그의 의지를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가족에게 맛있는 꽃게탕을 끓여주기로 한 날, 칼퇴를 방해하는 미션이 내려지고 늦어지자 짜증이 올라온다. 그러나 그는 외식을 하기로 계획을 수정하고 예기치 않은 불쾌함을 몰아낸 뒤 달달함과 행복함으로 가득 채운 저녁시간을 만든다. 나도 잘 못 지낼 이유가 수십 가지는 되는 사람이다. 10년 전 상해에서 돌아와 지금까지 우리 가정을 재정적으로 무너지게 만든 시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분노를 계속 쌓아두고 있었다면 나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가만히 감정의 파도가 이끄는 대로 방치하면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인생을 살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 영혼의  닻을 깊은 바다에 내리기로 했다. 살기 위해서. 작가의 '행복하기로 결정했다'는 표현이 그 당시 나의 마음과 같아 팍 꽂혔다. 


이분은 서점을 '북페'라고 부른다. 매우 훌륭한 작명이다. 먹음직스러운 음식들로 가득 찬 뷔페에 갔을 때 이것들을 다 먹고 싶은데 내 작은 위가 아쉽다는 느낌처럼 서점에 가면 읽고 싶은 책이 넘쳐나 딸아이를 위한 아동 도서 코너까시 가는 길이 멀기만 하다고 한다. 매달 10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는 작가의 부지런함과 꾸준함이 존경스럽다. 아프느라고 누워 지내는 시간, 딸과 놀아줘야 하는 시간, 방사선사로 열심히 일하는 시간, 남편으로, 아들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떼어내고 남는 그 귀한 시간 1분, 1초에 의미를 부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세상의 잔재미 하나도 놓치기 싫어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내 삶이 부끄러워지는 지점이다. 꾸준한 사람이 승자라는 말이 떠오른다. 누가 한 말이냐고? 내가 한 말이다!ㅎㅎㅎ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꾸준히 책을 읽고 일상의 영감을 적어 내려가는 그 우직함의 원동력은 뭘까? 자기 삶을 사랑하는 힘 아닐까? 이 책의 선한 영향력이 내게 전달되고 있다. 나도 그렇게 꾸준하게 우직하게 밀어붙여보고 싶으니 말이다. 


딸아이가 안경을 쓰고 등원한 날 작가님은 아이가 놀림당하는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했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원장 선생님이 하루 종일 자기와 같이 안경을 쓰고 있었다는 딸아이의 말에 나는 눈물이 났다. 이렇게 사려 깊고, 작은 영혼들의 마음을 귀히 여기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는 늘 나를 울린다. 또 아픈 아들의 투정에 '엄마가 아프게 낳아줘서 미안해'라고 말씀하신 작가님 어머니의 말씀에는 목젖 움직이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꿀꺽꿀꺽 울음을 삼켰다. 작가는 이렇게 코를 훌쩍이게도 하지만 킥킥거리며 어깨를 들썩이게도 한다. 투철한 애국정신으로 국가의 세수 증대에 기여하기로 결심하고 각종 신고를 열심히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운 거다. 스마트폰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이를 가능하게 하는데 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하셨던 S 선생님의 행태를 고발하려고 잠복근무까지 한 작가님의 열정은 한 신고한다는 나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책이 출간되고 S 선생님께 이 사실이 들어갈까 봐 걱정이 된다... 몸조심하소서!ㅎㅎㅎ


꽃들 사이에서 꽃꽂이를 배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꽃에게 꽃을 선물하는 남자. 여자인 나도 나이가 드니 낭만파를 버리고 현실파의 대열에 들어섰는데 작가는 낭만이 현실을 이긴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가장 소중한 순간에
아름다움이 절정에 다다른
꽃을 선물한다는 것은
전달하는 사람에게까지
큰 선물이 되기도 한다.


작가가 주변 사람들을 세심하게 살피고 전달하는 마음이 너무나 아름답다. 배려나 세심함을 가르쳐야 하는 남자와 살고 있는 나는 책을 읽으며 이런 남자는 어떻게 탄생되는 걸까 궁금해졌다. 아마도 부모님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받은 사랑을 그는 아내와 딸, 주변의 사람들에게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까닭 모를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나는 이렇게 말해줬다. 우리 인생의 디폴트값은 사실 고통과 아픔이라고. 아프고 슬픈 게 정상이고 안 아프고 안 슬프면 감사할 일이라고. 고통과 아픔에 절망하며 고개를 떨구면 땅바닥의 먼지 밖에 안 보인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볼 때 파란 하늘과 구름이 보인다. 작가님도 진흙탕에 발을 딛고 있지만 하늘을 바라볼 줄 아는 분 같다. 책 제목이 말하듯 행복을 '찾아내' 촬영하는 사람말이다. 힘들고 지칠 때 다시 읽어보고 싶어질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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