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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과 이창호: 바둑판 위의 제비와 돌부처

by 정영기

바둑판 위에서 가장 빛나는 두 별, 조훈현과 이창호. 한 사람은 바둑을 한국의 자랑으로 만든 '바둑 황제'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의 제자로서 스승을 뛰어넘어 세계를 정복한 '돌부처'다. 이들의 대비되는 철학과 생각법은 단순히 바둑 기술을 넘어 인생의 지혜로 승화되었다.


하늘을 나는 제비: 조훈현의 "생각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


1986년 잉창지배 결승, 조훈현 9단은 거의 패배가 확정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다. 모두가 그의 패배를 예상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호텔 방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나는 그저 생각 속으로 들어갔을 뿐이다. 내가 답을 찾은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답을 찾아낸 것이다."


129수째, 그가 놓은 한 수는 바둑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불가능해 보였던 상황에서 그는 역전승을 거두었다. 마치 하늘을 자유롭게 비행하며 순간적으로 먹이를 낚아채는 제비처럼, 조훈현의 바둑은 빠르고 공격적이었다. 그는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포착하는 놀라운 직관력을 가졌다.


"바둑판 위에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반드시 최선의 수가 있다."


조훈현에게 생각이란 단순히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추상적인 활동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능동적인 몰입 과정이었다. 그는 "생각 속으로 들어가라"라고 조언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 헤매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해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승부에 집착하면 오히려 패배한다."


제비처럼 날렵하게 하늘을 날아다니지만, 그는 무모하게 날지 않았다. 승부에 집착하기보다는 과정에 충실할 때 진정한 승리가 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틀에 갇힌 사고방식으로는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조훈현은 틀에서 벗어나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에게 바둑은 정답이 정해진 게임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예술이었다. 바로 이 창의성이 그를 '바둑 황제'로 만들었다.


흔들리지 않는 돌부처: 이창호의 "부득탐승(不得貪勝)"


'돌부처' 이창호. 그의 별명은 경기 중 감정의 기복 없이 깊은 집중력을 유지하는 그의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마치 바위처럼 견고하고, 산처럼 거대한 존재감을 풍기는 그의 철학은 단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부득탐승(不得貪勝)" - 승리를 탐하면 오히려 얻지 못한다.


바둑의 십계명인 위기십결(圍棋十訣)의 첫 번째 가르침이기도 한 이 문구는 이창호의 바둑 인생을 관통하는 핵심 철학이 되었다. 그는 눈앞의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전체 판을 조망하며 신중하게 수를 두었다.


"바둑은 상대방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창호에게 바둑은 자기 수양의 과정이었다. 상대를 이기는 것보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의 바둑은 '느린 듯 두텁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그의 인내심과 균형 감각을 반영했다.


"한 수 한 수 최선을 다하면 결과는 자연히 따라온다."


그는 초반부터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기보다는 견고한 '두터움'을 쌓으며 안정적인 바둑을 지향했다. '바둑은 실수를 적게 하는 쪽이 이기는 게임'이라는 신념 하에 극도로 신중한 태도로 매 순간 최선의 수를 찾고자 노력했다.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이창호는 '신산(神算)'이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계산력을 바탕으로 정교한 끝내기를 선보이며 수많은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는 욕심을 버리고 전체적인 균형을 중시했으며, 이러한 철학은 그의 바둑 스타일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대조되는 길, 하나의 목적지


제비처럼 날아다니는 조훈현과 돌부처처럼 흔들리지 않는 이창호. 이들의 스타일과 철학은 대조적이다.


조훈현의 바둑이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문제 해결 방식을 강조한다면, 이창호의 바둑은 절제와 균형, 그리고 정확성을 추구한다. 조훈현이 때로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지는 위험 감수적인 스타일이라면, 이창호는 안정적인 운영을 통해 확실한 승리를 추구하는 신중한 스타일이다.


조훈현의 바둑에는 번뜩이는 직관과 창의적인 발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이창호의 바둑은 철저한 계산과 논리적 판단에 기반했다. 조훈현은 때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발한 수를 통해 승리를 쟁취했지만, 이창호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꼼꼼하게 계산하여 가장 정확한 수를 선택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이 두 고수의 철학은 결국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있다. 그것은 바로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다.


바둑판을 넘어선 삶의 지혜


조훈현의 "생각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는 철학은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생각하면 반드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다. 이는 개인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직업적인 도전, 창의적인 문제 해결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번의 실수는 경험이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무지다."


이창호의 "부득탐승"은 과도한 욕심과 조급함을 경계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내하며 꾸준히 노력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기보다는 꾸준한 자기 계발과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결국 더 큰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교훈을 준다.


"공격만 생각하면 허점이 생기고, 수비만 생각하면 기회를 놓친다."


두 고수의 생각법은 언뜻 보기에 대조적이지만, 삶의 다양한 상황에 따라 상호 보완적인 지혜를 제공한다. 때로는 제비처럼 날갯짓하며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때로는 돌부처처럼 침착하게 상황을 관망하며 균형을 찾아야 한다.


"상대를 이기려 하기보다 자신을 이기려 노력하라."


두 고수가 남긴 이 지혜는 바둑판을 넘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빛을 발한다. 그들의 삶과 바둑을 통해 우리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성장을 위한 노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답을 찾아 나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바둑판 위의 제비와 돌부처, 그들이 그려낸 한 수 한 수는 우리 인생의 모든 국면에서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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