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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와 한강의 대화

by 정영기

박경리 선생의 초대로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가 원주 박경리문학공원을 찾았다. 토지의 산실이자 박경리의 삶과 문학 세계가 고스란히 담긴 이곳에서 두 거장의 특별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두 여성 작가가 나눈 문학, 삶, 인간, 그리고 여성에 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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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서곡: 노벨문학상과 한국문학


역사적인 초대


박경리 선생은 소설 《토지》를 완성했던 원주의 옛집에서 한강 작가를 반갑게 맞이했다. 1980년 서울을 떠나 이곳 단구동에 정착해 《토지》 4부와 5부를 집필했던 공간은 현재 박경리문학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입구에는 손수 만든 연못이 있고, 마당 한켠에는 박경리가 가꾸었던 텃밭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이곳에서 두 작가의 의미 있는 대화가 시작되었다.


박경리: "한강 선생, 우리 문학계의 쾌거를 축하드립니다." 박경리 선생이 환한 미소로 말문을 열었다. "평생 한국 문학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 싶었는데, 선생께서 그 꿈을 이루어주셨습니다."


한강: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선생님의 《토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제 작품의 뿌리는 선생님과 같은 선배 작가들이 일구어놓은 터전 위에 있습니다."


노벨상 그 이후의 한국문학


박경리: "노벨문학상이 한국 문학에 미친 영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경리 선생이 물었다.


한강: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상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한 카테고리로 독립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일본이나 중국 문학의 하위 범주가 아닌, 그 자체로 독특한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죠."


박경리: "그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지요." 박경리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문학의 독창성과 깊이가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은 분명 축하할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문학의 진정한 가치는 상이 아닌 작품 자체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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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본질과 창작의 고통


토지에서 채식주의자까지


두 사람은 박경리문학공원의 평사리마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은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고향인 평사리를 재현한 공간으로, 섬진강 선착장과 둑길 등이 조성되어 있다.


한강: "《토지》를 25년 동안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어떻게 한 작품에 집중하실 수 있었는지요?" 한강이 물었다.


박경리: 선생은 잠시 멀리 바라보다 답했다. "목이 메어 강가에서 울 적에 별도 크고 물살 소리도 크고, 아하아 내가 살아 있었고나. 목이 메이면 메일수록 뼈다귀에 사무치는 설움, 그런 것이 있인께 사는 것이 소중허게 생각되더라. 이 구절처럼, 삶 자체가 소설의 원동력이었지요.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가 소설을 쓰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한강: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 "저도 《소년이 온다》를 쓸 때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이런 현실의 고통을 마주할 때 글을 쓰는 것은 고통이면서도 필연이었습니다."


창작의 원천과 과정


박경리: "한강 선생의 작품에는 몸의 정치, 성별의 정치, 국가에 맞서 싸우는 정치를 다루면서도 문학적 상상력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고 하더군요." 박경리 선생이 말했다.


한강: 겸손하게 미소 지었다. "선생님께서는 대하소설 《토지》를 통해 우리 민족의 역사와 삶을 아우르는 거대한 이야기를 완성하셨습니다. 제 작품은 개인의 내면과 사회의 상처를 연결하는 더 제한적인 시도에 불과합니다."


박경리: "그렇지 않아요. 소설은 크기가 아니라 깊이로 평가받는 것이지요." 박경리 선생이 따뜻하게 답했다. "당신의 글은 인간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 보편적 감성을 건드립니다. 그것이 바로 노벨상을 받게 된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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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작가로서의 삶과 문학


시대를 넘어선 대화


두 사람은 박경리의 옛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은 박경리가 18년간 살면서 《토지》를 완성한 공간으로, 1층은 생활하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한강: "여성 작가로서 겪으신 어려움이 있으셨나요?" 한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박경리: 선생은 잠시 침묵했다가 대답했다. "제가 소설가로 나선 1950년대는 여성 작가가 드물었습니다. 더구나 저는 한국 전쟁 중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도 잃었지요. 그 상실감 속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여성이기에 더 많은 시선을 견뎌야 했고, 더 강해져야 했습니다."


한강: 자신의 경험을 나눴다. "저도 '여성 작가'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에서 여성이 한국 문학의 노벨상 가뭄을 끝냈다'고 보도했는데, 이런 시선은 양면성을 가집니다. 여성이라는 점이 부각되는 것보다 작품 자체로 평가받고 싶었습니다."


박경리: "그렇지만 우리의 여성으로서의 경험은 분명 작품에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박경리 선생이 덧붙였다. "그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지요. 다만 '여성 문학'이라는 범주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보편의 이야기를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과 사회적 책임


한강: "문학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강이 물었다.


박경리: 선생은 단호하게 답했다. "문학은 사회의 거울이자 양심이어야 합니다. 제가 《토지》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우리 민족의 아픔과 희망, 그리고 그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인간의 존엄성이었습니다."


한강: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 한림원은 전쟁이 한창인 지금 이 순간, 상실과 치유, 규범의 거부와 갈등, 잔인한 현실에 대한 '증언 문학'을 써 온 저에게 문학상을 수여했습니다. 문학이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고 치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받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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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의 미래


번역과 세계화의 과제


두 작가는 박경리문학의 집 5층 세미나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은 작가의 생애와 작품 세계에 관한 영상물들을 상영하고 각종 문학 행사들이 열리는 공간이다.


박경리: "한국 문학의 번역과 세계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경리 선생이 물었다.


한강: 진지하게 답했다. "저의 작품이 세계에 알려진 것은 번역의 힘이 컸습니다. 제 작품은 2007년부터 지금까지 28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76종의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번역계는 토양이 부실합니다. 전업 번역가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수입이 일반 중견기업 연봉보다 적은 것이 현실입니다."


한강: "선생님의 《토지》도 세계에 더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권에 달하는 방대한 대하소설을 제대로 번역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그 깊이와 가치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같은 세계적 명작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


박경리: 선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 소설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문학 전체의 성장입니다. 이제 문학계는 제2, 제3의 한강이 활동 중이며, 이미 한강을 뛰어넘는 문장력을 인정받은 문인들이 즐비합니다. 그들의 작품이 세계에 알려질 수 있도록 번역과 출판에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후배 작가들에게


한강: "혹시 문학을 시작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한강이 물었다.


박경리: 선생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생존하는 것 이상의 진실은 없습니다. 삶을 온전히 경험하고, 그 고통과 기쁨을 글로 담아내는 것이 바로 문학입니다. 언제나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는 작가가 되길 바랍니다."


한강: "저 역시 후배 작가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상이나 명예를 위해 글을 쓰지 말고,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 그것을 온전히 표현하는 데 집중하라고요. 그것이 결국 한국 문학을 풍요롭게 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문학의 유산과 미래


대화를 마치며 두 작가는 박경리문학공원의 홍이동산으로 향했다. 소설 《토지》 속의 아이 주인공인 홍이에서 따온 이 공간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동산이다.


박경리: "문학은 결국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식입니다." 박경리 선생이 말했다. "한강 선생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문학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강: 깊이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의 《토지》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세대가 선생님의 작품을 통해 우리의 역사와 삶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저 역시 그 유산을 이어받아 더 많은 독자들과 소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두 작가의 만남은 단순한 축하의 자리를 넘어, 한국 문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의미 있는 대화의 시간이었다. 박경리문학공원의 고요한 풍경 속에서, 두 거장의 문학적 유산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독자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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