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유경의 한 이야기는 기묘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머리에 털이 없는 사람이 있었다. 누군가가 배 [梨] 를 들고 와서 그의 머리를 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상처가 났다. 피가 났다. 그런데도 그는 피하지 않았다. 그저 서서 맞고만 있었다.
옆 사람이 물었다. "왜 피하지 않습니까? 머리에 상처가 났는데도요."
그가 대답했다. "저 사람은 힘만 믿고 교만하며 어리석습니다. 내 머리에 털이 없는 걸 보고 돌인 줄 알고 배로 때린 겁니다. 참으로 어리석지 않습니까?"
옆 사람이 말했다. "어리석은 건 당신입니다. 맞으면서도 피할 줄 모르고, 머리에 상처까지 입으면서 도리어 남을 어리석다고 하니 말입니다."
우화는 이렇게 경고한다. 남을 비난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비구들도 그렇다. 믿음과 계율과 지혜를 닦지 않고 오직 겉모습만 갖추며 남의 허물만 지적하다가, 정작 자신은 상처투성이가 된다.
댓글 창의 배[梨]
어느 직장인 B씨는 주말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 따뜻한 햇살, 여유로운 오후. B씨는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익명의 댓글 하나가 달렸다.
"그곳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돈 낭비야, 바보같아."
B씨의 손가락이 멈췄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이 사람이 왜 이래?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리고 곧바로 반격 댓글을 쳤다.
"너야말로 제대로 살아본 적 없나 봐? 그런 헛소리나 지껄이는 게 네 수준이야!"
상대는 곧바로 답했다. B씨도 답했다. 댓글이 쌓였다. 다른 익명들이 끼어들었다. 누구는 B씨 편, 누구는 트롤 편. 댓글창은 전장이 되었다. B씨는 밤새 휴대폰을 붙들고 있었다. '이 어리석은 사람들을 가만 놔둘 수 없어.'
다음 날 아침, B씨는 피곤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친구가 물었다.
"너 또 온라인 싸움했어? 왜 그래." B씨는 변명했다. "걔네가 먼저 시작했어. 너무 어리석잖아." 친구가 한숨을 쉬었다. "어리석은 건 너야. 왜 피하지 않고 계속 맞고만 있어?"
그제야 B씨는 깨달았다. 자신은 배에 맞은 머리의 주인공이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악의적 댓글이라는 배를 맞으면서도 피하지 않고, 도리어 '저 사람이 어리석다'고 비난하며 서 있었던 것이다. 상처는 B씨의 머리에 났다. 잠 못 이룬 밤, 망가진 기분, 멀어진 친구들. 정작 트롤은 아무 상처도 없었다.
비난의 역설: 나를 잊는 순간
심리학자 칼 융은 "우리가 타인에게서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은, 종종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그림자"라고 했다. 백유경의 털 없는 사람이 상대를 "교만하고 어리석다"고 비난하는 순간, 그는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을 보지 못한다.
불교의 '아상(我相)' 개념이 여기서 작동한다. 아상이란 '나'라는 고정된 자아에 대한 집착이다. "나는 옳고, 저 사람은 틀렸다"는 확신. 이 확신은 우리를 방어적으로 만든다. 공격받았다고 느끼면, 즉시 반격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나 자신'을 돌보는 것을 잊는다.
불교에서는 이런 마음을 '만(慢)'이라 부른다. 교만과 비교에서 비롯되는 마음의 경직이다. 체면과 위엄에 매달릴수록 타인의 말 한마디에 즉각 반응하며 분노한다. 그 사이 상처는 내 몫으로만 쌓인다. 백유경의 어리석은 사람이 배를 피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피하면 '진 것' 같고, 체면이 구겨질 것 같았다. 하지만 체면을 지키려다 머리를 잃었다.
백유경의 교훈은 명확하다. "믿음과 계율과 지혜를 닦지 않고 오직 위엄만 갖추고"—겉모습, 체면, 자존심만 챙기며, 정작 내면의 평안과 성장은 방치한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온라인에서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에너지를 쏟으며, 정작 내 정신 건강, 내 관계, 내 시간은 손상된다.
피하는 지혜: 선택의 회복
B씨의 변화는 다음 주말에 시작되었다. 또 다른 사진을 올렸다. 이번엔 책 한 권과 커피 한 잔. 평화로운 오후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또 악의적 댓글이 달렸다.
"한가하네, 백수냐?"
B씨의 손가락이 키보드로 향했다. 그런데 멈췄다. 백유경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배를 맞으면서 왜 피하지 않는가?' B씨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댓글을 지우지도, 답하지도 않고, 그냥 화면을 껐다.
처음엔 불편했다. '내가 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댓글은 그대로 있었지만, B씨의 마음은 평온했다. 밤에 잠도 잘 왔다. 다음 날 친구와 점심을 먹으며 웃었다. 사진 속 그 오후의 평화가 계속되었다.
이후 작은 실천들이 이어졌다. 악의적 댓글은 무시하거나 차단했다. 프라이버시 설정을 강화했다. 긍정적인 댓글에만 답했다. 무엇보다, 온라인에서 '옳음'을 증명하는 데 쓰던 시간을, 독서하고 산책하고 사람들과 직접 만나는 데 썼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소셜 미디어가 다시 즐거워졌다. 논쟁이 사라지자, 진짜 소통이 보였다. 무엇보다, 거울 속 자신의 표정이 달라졌다. 경직되고 방어적이던 얼굴이, 편안하고 여유로워졌다.
백유경의 교훈은 단순하다. 배가 날아오면 피해라. 맞으면서 '저 사람이 어리석다'고 비난하지 말고, 자신을 지켜라. 지혜는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싸울 필요 없는 자리로 이동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