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날뛰는 원숭이를 위한 마음 사용 설명서

by 정영기

마음 챙김'이라는 말이 요즘 유행처럼 번지지만, 사실 이건 2천 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에서 부처님은 우리 마음을 "나무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는 원숭이" 같다고 하셨지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찾는 내 손, 영상 하나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음 영상으로 훌쩍 넘어가는 내 모습. 이 오래된 비유가 오늘 나의 하루를 너무나 정확하게 그리고 있어서, 가끔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가 있습니다.

7bca43fa5be67a4c5fa48a338c39f648bd452971


요즘 우리가 사는 숲은 훨씬 더 빽빽하고 정신없습니다. 예전엔 글자라는 가지를 타던 원숭이가 이젠 영상이라는 덩굴을 붙잡고 날아다닙니다. 숏폼이나 릴스처럼 짧고 강렬한 자극이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숲. 자동 재생이라는 급류에, 무한 스크롤이라는 아찔한 절벽까지. 알고리즘은 내가 잠시 멈췄던 순간, 소리를 키웠던 장면을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그걸 미끼 삼아 새로운 가지를 눈앞에 쓱 내밉니다.

겉보기엔 "아, 재밌다"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지만, 사실 이건 갈애( (渴愛), 즉 '더, 더!'를 외치는 마음의 목마름입니다. 한 장면이 사라지면 다음 장면이 그 자리를 채우고, 우리 마음의 원숭이는 '지금 여기'에 발 한번 제대로 붙여보지 못한 채 또 다른 가지로 몸을 날려버립니다.

7d51a9511f17ad854ca0ac91b84cea036e34408d


불교에서는 이걸 그냥 '마음이 산만해서'라고 보지 않습니다. 이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고통의 구조 그 자체라고 말합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무명'이라는 안개, 그리고 손에 쥔 가지를 놓지 못하게 하는 '집착'이라는 끈. 영상의 숲에서 무명은 "괜찮아, 그냥 쉬는 시간이잖아?"라고 속삭이고, 집착은 "이것만 더 보고"라며 우리를 붙듭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인 습관이 '업'이 되는 것입니다. "난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할까" 자책하는 마음조차 또 다른 영상으로 도피하게 될 때쯤이면, 우리 안의 원숭이는 걷잡을 수 없이 날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원수처럼 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불교의 지혜인 '연기(緣起)'는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얽혀있다고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영상 하나, 알고리즘의 유혹, 그날 내 기분, 늦은 밤이라는 시간, 쌓인 피로… 이 모든 조건이 얽혀서 지금 스크롤을 멈추지 못하는 '나'를 만듭니다. 그러니 그 조건 중 하나만 살짝 바꿔도 괜찮습니다. 화면 밝기를 조금 낮추거나, 자동 재생 기능을 꺼두는 아주 작은 행동처럼 말입니다.

a8243924f56262537807a7b86114bc3ee3daf593


그래서 수행이란 "이 나쁜 습관을 뿌리 뽑겠어!"라며 자신을 몰아붙이는 게 아니라, "원숭이가 좀 편안하게 쉴 공간을 만들어주자"하며 주변을 다독이는 일에 가깝습니다. 마음을 억지로 묶어두는 게 아니라, 지친 원숭이가 "아, 여기선 잠시 앉아 있어도 괜찮겠다"하고 스스로 머물고 싶어 하는 아늑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기술입니다.

결국 마음의 원숭이는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그저 주인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오늘 딱 한 번만, 영상을 재생하기 전에 내 호흡부터 재생해 보는 작은 시도가 그 시작입니다. 그 찰나의 멈춤이 나무와 나무 사이에 작은 다리를 놓아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문득 깨닫게 됩니다. 내 마음을 다스린다는 건 억누르는 게 아니라, 기댈 곳을 마련해 주는 다정함이라는 것을. 그때가 되면, 영상은 더 이상 우리를 휘두르는 주인이 아니라, 필요할 때 가볍게 집어 드는 편안한 도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정말잘돼 #안심정사 #법안스님 #서산죽림정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