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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와 개미가 가르쳐주는 생태적 지혜

물이 오르면 물고기가 개미를 먹고, 물이 빠지면 개미가 물고기를 먹는다

by 정영기

물고기와 개미가 가르쳐주는 생태적 지혜


태국 속담 “물이 오르면 물고기가 개미를 먹고, 물이 빠지면 개미가 물고기를 먹는다”는 말은 단순한 자연 관찰을 넘어, 생태계의 역동적인 균형과 '모든 것은 변한다'는 무상(無常)의 진리를 꿰뚫는 깊은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이 속담은 환경의 변화가 어떻게 강자와 약자의 위치를 순식간에 뒤바꾸는지, 그리고 적응과 타이밍이 생존에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홍수와 물고기의 시간

우기가 되어 물이 차오르면, 강과 호수는 물고기들의 세상이 됩니다. 메기 같은 민물고기들은 범람한 물을 타고 자유롭게 영역을 넓히며 풍부한 먹이를 사냥합니다. 물은 이들에게 압도적인 '기회의 장(場)'입니다.


이때 육지의 강자였던 개미는 속수무책의 약자가 됩니다. 홍수로 개미집이 침수되면 군집은 순식간에 붕괴하고, 물에 떠내려가는 개미들은 물고기에게 더할 나위 없는 먹잇감이 됩니다. 아마존 강 유역 연구에 따르면, 홍수철에 물고기의 곤충 섭취 비율은 약 30% 증가하며, 개미는 그 주요 먹이원 중 하나입니다. 이 순간, 물고기는 물의 지배자로서 생태계의 정점에 서며 속담의 전반부, “물이 오르면 물고기가 개미를 먹는다”를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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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과 개미의 반격

하지만 영원한 강자는 없습니다. 건기가 찾아와 물이 마르면, 전세는 무섭게 역전됩니다. 강바닥이 드러나고 물고기들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얕은 웅덩이에 갇히게 됩니다. 산소 부족과 탈수로 약해진 물고기는 더 이상 물속의 지배자가 아닙니다.


반면, 뭍으로 올라온 개미들은 이제 '기회의 땅'을 맞이합니다. 특히 군대개미 같은 포식성 종들은 조직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갇힌 물고기나 그 사체를 발견한 개미 군단은 강력한 턱과 압도적인 수로 이를 제압하고 분해합니다. 남미 생태학 연구는 건기에 군대개미가 갇힌 물고기를 포식하는 사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물이 빠지면 개미가 물고기를 먹는다”는 속담의 후반부가 냉혹하게 실현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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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가르는 '환경'이라는 무대

물고기와 개미의 이야기는 '절대 강자'란 없으며, '절대 약자'도 없다는 생태계의 기본 원칙을 보여줍니다. 이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며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불교의 핵심 진리인 무상(無常)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강함과 약함은 그 자체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물'이라는 환경 변수(조건)에 따라 잠시 나타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이 원리는 생태계를 넘어 인간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경제의 흐름, 기술의 변화, 사회적 트렌드는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그 자체입니다. 주식 시장의 상승장과 하락장, 스포츠의 홈 경기와 원정 경기, 조직 내에서의 권력 이동까지, 이 모든 것이 '물이 차고 빠지는 현상'과 닮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힘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을 읽고 적응하는 능력입니다. 기후변화로 홍수와 가뭄이 잦아지면서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뒤흔들리듯, 우리 사회 역시 변화의 주기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강자도 환경의 변화를 읽지 못하면 약자가 될 수 있고, 약자도 기회를 포착하면 도약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물고기와 개미의 역전극은 자연의 냉혹한 순환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줍니다. 지금 내가 선 곳이 '물이 찬 곳'인지 '물이 빠진 곳'인지 끊임없이 살펴야 합니다.


강자일 때는 그 힘이 영원하지 않음(무상)을 깨닫고 겸손히 다가올 '가뭄'을 대비해야 하며, 약자일 때는 이 고난 또한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묵묵히 '기회'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오래된 태국 속담이 격변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생생한 생태학적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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