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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이 모이면 사자도 묶는다

by 정영기

거미줄이 모이면 사자도 묶는다


에티오피아의 오래된 속담입니다. 처음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죠. 가늘고 약한 거미줄이 어떻게 동물의 왕 사자를 묶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문장 속에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는 놀라운 지혜가 숨어 있습니다.


약해 보이지만 강한 거미줄의 비밀


우리는 거미줄을 쉽게 끊어지는 약한 존재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거미줄을 '자연이 만든 슈퍼 물질'이라고 부릅니다.


UC Berkeley의 연구에 따르면, 거미줄의 인장 강도는 강철과 비슷하지만 밀도가 훨씬 낮아 같은 무게일 경우 강철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싱가포르 국립대학 연구팀은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연필 굵기의 거미줄 한 가닥은 비행 중인 보잉 747기를 멈출 수 있다."


놀랍지 않나요? 겉보기에는 약하고 보잘것없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존재. 이것이 바로 속담 속 '거미줄'이 상징하는 의미입니다. 우리 평범한 개개인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사자'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프리카 문화에서 사자는 왕권, 용기, 지혜, 힘을 상징하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이 속담에서 사자는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하고 압도적인 문제를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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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라는 마법


이 속담의 핵심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평범하고 작은 개인이라도 함께 힘을 합치면, 불가능해 보이는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사회 심리학에서는 이를 '집단행동(Collective Action)'이라고 부르며,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칠 때 단순히 힘을 더한 것 이상의 시너지가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그 비밀은 다음 세 가지에 있습니다.


1. 공유된 정체성 - '우리는 하나'라는 소속감이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묶어줍니다.

2. 집단적 효능감 - "함께라면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게 만듭니다.

3. 상호 보완 - 각자의 장점이 합쳐져 더 완벽하고 강한 팀을 만듭니다.


실제로 사자를 묶은 거미줄: 아프리카 정보 혁명 이야기


이 속담은 단순한 격언이 아닙니다. 실제로 세상을 바꾼 프로젝트의 이름이자 철학이 되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아프리카의 말라리아 연구자들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인터넷 접속이 어렵고


최신 의학 저널을 구할 수 없어서 연구에 큰 어려움을 겪었죠. **'정보 부족'**이라는 거대한 '사자'가 아프리카 과학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국립의학도서관(NLM)을 중심으로 전 세계 30개가 넘는 기관과 사람들이 '거미줄'처럼 힘을 합쳤습니다. 그들은 'MIMCom'이라는 통신망을 구축하여 아프리카 연구 현장에 인터넷과 최신 의학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한 아프리카 과학자는 당시의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요. 마침내 '여기'에 함께 있습니다."


수많은 '거미줄'이 모여 '정보 고립'이라는 '사자'를 묶어버린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When spider webs unite, they can tie up a lion"이라는 속담을 제목으로 사용할 만큼, 이 지혜를 완벽하게 실현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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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적 관점에서 본 거미줄의 지혜


흥미롭게도 이 속담은 불교의 핵심 개념인 '연기(緣起)'와닿아 있습니다. 연기는 모든 것이 홀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의지하며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거미줄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약하지만, 서로 엮이고 연결될 때 비로소 사자를 묶는 힘이 됩니다. 이는 마치 '인드라망(因陀羅網)'과 같습니다. 인드라망은 무수한 구슬들이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고, 각 구슬이 다른 모든 구슬을 비추는 불교의 비유입니다. 한 구슬의 빛이 다른 구슬에 반사되고, 그 반사된 빛이 또 다른 구슬을 비춥니다.


결국 나와 타인, 개인과 공동체는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연결망인 셈이죠. 거미줄이 모여 사자를 묶는다는 것은 단순히 힘을 합친다는 의미를 넘어, 우리가 본래부터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깨달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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