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슈미트(Eric Schmidt) 전 Google CEO 겸 회장은 2024년 Stanford University에서 진행한 비공개 강연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강연 영상은 잠시 온라인에 공개됐다가 곧바로 사라졌고, 그 과정 자체가 오히려 관심을 키웠다. 핵심은 비밀이 아니라 메시지였다. 슈미트는 향후 10년 안에 AI가 세계 질서를 다시 그릴 것이며, AI를 제대로 활용한 국가는 도약하고 그렇지 못한 국가는 급격히 뒤처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점진적 변화가 아니라 역사적 분기점이라는 경고였다.
그는 이 전환기를 살아남을 수 있는 나라를 손에 꼽았다. 1위는 미국, 2위는 중국, 그리고 많은 이들이 놀랄 만큼 3위로 대한민국을 지목했다. 독일과 프랑스 같은 전통적인 유럽 강국들은 규제와 느린 실행력에 묶여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반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라는 하드웨어와, 스스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동시에 갖춘 드문 나라로 평가받았다. 이 균형이 중요하다. 일본과 인도가 ‘협력 파트너’로만 언급된 이유이기도 하다.
2025년에 접어들면 이 격차는 일상에서 체감된다. 인천공항의 실시간 데이터 시스템이나 강남의 자율주행 서비스는 시작에 불과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는 AI 산업의 핵심을 쥐고 있다. 첨단 AI 시스템 대부분이 한국산 메모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젠슨 황이 이끄는 NVIDIA, 그리고 샘 알트먼이 대표하는 OpenAI조차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를 무시할 수 없다. 하드웨어 중심의 대만과 달리, 한국은 Naver, Kakao 같은 자체 플랫폼도 지켜내고 있다.
한국의 진짜 경쟁력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영역에서 더 빛난다. 교통, 에너지, 안전을 실시간으로 최적화하는 도시 단위 AI 제어 시스템은 이미 작동 중이다. 산업 현장에서는 삼성의 차세대 AI 칩 프로젝트가 전력 소모를 줄이면서 성능을 크게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런 인프라 우위는 쉽게 따라 할 수 없다. 슈미트는 개념이 빠르게 현장에 적용되는 한국 특유의 속도와 강한 엔지니어링 문화가 그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다가오는 AGI 시대는 일자리 문제를 둘러싼 두려움을 동반한다. 슈미트는 그 위험을 인정하면서도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고 봤다. 인구가 줄어드는 국가에서 AI 에이전트는 일자리를 빼앗기보다 노동력 부족을 메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화는 파괴가 아니라 완충 장치가 된다. 더 큰 위험인 AI 통제 상실 문제 역시 기술적 방어력이 강한 국가에 유리하다. 이 지점에서도 한국은 준비가 돼 있다는 평가다.
대한민국의 이야기는 더 이상 ‘추격’이 아니다. 이제는 다음 단계를 설계하는 위치에 와 있다. 반도체, 플랫폼, 도시 규모의 AI 시스템까지 기반은 이미 갖춰졌다. 슈미트의 발언은 예언이나 칭찬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진단에 가깝다. 일찍 준비한 국가가 다음 문명을 정의한다. 그의 기준에서, 한국은 이미 그 길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