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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김장하"를 아시나요?

조용한 기부자의 삶과 헌신

by 정영기 Mar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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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에는 오랫동안 지역 사회에 헌신해 온, 그러나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어른 김장하'로 불리는 김장하 선생님입니다. 그는 평생을 한약사로 살면서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하며 번 돈을 자신을 위해서는 거의 쓰지 않고, 지역 사회의 교육, 문화,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 조용히 기부해 왔습니다. 특히 100억 원이 넘는 사재를 털어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국가에 기증하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 1,000명이 넘는 인원에게 장학금을 지원한 그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존경을 자아냅니다.


2023년에는 그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 김장하'가 개봉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의 숭고한 정신은 각박한 현대 사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김장하 선생님의 이야기는 진정한 이타주의란 무엇인지, 그리고 한 개인이 어떻게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던져줍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처럼, 그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천에서 한약업사로 시작한 한 어른의 여정


김장하 선생님은 1944년 경상남도 사천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삼천포의 한약방에서 일하며 공부하여 한약업사 자격을 취득한 그는, 사천에서 처음 한약방을 개업한 후 진주시로 이전하여 약 50년 동안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했습니다. 2022년 5월, 그는 은퇴와 함께 한약방 문을 닫았지만, 그의 삶의 철학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김장하 선생님은 돈에 대한 독특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돈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고 열매도 맺습니다"라고 말하며,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단순히 말에 그치지 않고 평생 동안 실천으로 이어진 그의 삶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그의 호 '남성(南星)'은 남두육성을 의미하며, 그 별이 비치는 곳에서는 오래 산다는 속설처럼, 약방에서 지어준 약을 먹고 사람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는 그의 직업관과 나눔의 정신이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픈 사람을 상대로 번 돈... 함부로 쓸 수 없었다"


김장하 선생님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사재 100억 원이 넘는 거액을 투자하여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하고 국가에 기증한 것입니다. 1983년 학교법인 남성학숙을 설립한 그는 이듬해 명신고등학교를 개교했으며, 10여 년간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학교의 체육관과 도서관 등 모든 시설을 완비했습니다. 그리고 1991년, 그는 이 완벽하게 갖춰진 학교를 국가에 기부했습니다. 당시 100억 원은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2,000억 원에 달하는 큰 금액입니다.



학교를 설립하면서 그는 세 가지 원칙을 세웠는데, 이는 친척을 채용하지 않고, 돈을 받고 교사를 임용하지 않으며, 권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의 교육에 대한 철학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한약방을 운영하며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했던 그의 오랜 염원이 명신고등학교 설립이라는 결실로 맺어진 것입니다.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갚아라"


이뿐만 아니라 김장하 선생님은 수십 년 동안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익명으로 장학금을 지원해 왔습니다. 그가 장학금을 지원한 학생 수는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대학교, 대학원까지 꾸준히 지원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감사 인사를 전하면 그는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갚아라"라고 답하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문형배 헌법재판관 또한 김장하 선생님의 도움으로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학생 중 한 명입니다. 이처럼 그는 교육을 통해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으며, 그의 조용한 선행은 많은 이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의 꾸준한 장학금 지원은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깊은 믿음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진주 지역 사회를 위한 다방면의 헌신


김장하 선생님의 사회 공헌은 교육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주 지역 사회의 문화, 예술, 역사, 여성, 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아낌없는 지원을 펼쳤습니다.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창간했던 옛 <진주신문>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으며, 27년간 '진주가을문예'를 후원하여 지역 문학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또한, '진주문화를 찾아서'라는 문고 발간 사업을 지속적으로 지원하여 지역 문화유산의 보존과 확산에 힘썼습니다.


최초의 백정 해방 운동 단체였던 형평운동기념사업회와 진주문화연구소 설립을 주도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했으며, 진주문고가 어려움을 겪을 때 두 차례나 큰 도움을 주어 지역 서점을 살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여성 평등 기금 조성과 가정 폭력 피해 여성 지원, 진주여성민우회 창립 지원 등 여성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극단 현장이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을 때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남명학, 진주오광대, 진주솟대놀이 등 지역 고유문화의 재조명에도 힘을 보탰으며, 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 영남대표와 지리산생명연대 공동의장을 역임하며 환경 보호 운동에도 참여했습니다. 이 외에도 진주환경운동연합 고문, 형평운동기념사업회장, 진주문화사랑모임 부회장,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진주지부 이사장, 경상국립대 발전후원회장, 진주오광대보존회 이사장, 진주문화연구소 이사 등 수많은 지역 사회단체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지역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묵묵히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기 꺼려하여 언론 인터뷰조차 극구 사양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숨겨진 영웅의 발견



2023년 11월 1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 김장하'는 이처럼 숨겨진 영웅과 같았던 김장하 선생의 삶과 업적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MBC경남에서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는 60년 동안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김장하 선생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김장하 선생님 본인의 인터뷰는 거의 없고, 그 대신 그의 도움을 받았던 다양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그의 삶을 조명하는 독특한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선행을 알리기를 극도로 꺼렸던 김장하 선생님의 뜻을 존중한 결과입니다. 다큐멘터리는 개봉 후 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으며, 제59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교양 작품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지역 방송사의 프로그램이 백상예술대상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그의 겸손함과 헌신적인 삶에 감탄하며, 진정한 어른의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다큐멘터리 제작에는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이 공동 취재로 참여했으며,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김장하 선생님의 삶을 기록한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우리 사회에 진정한 어른의 의미를 되새기고, 꼰대 문제와 노인 혐오 등 어른에 대한 갈망이 있는 시기에 '이런 어른도 있다'는 깨달음을 주고자 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사회보장제도"


김장하 선생님의 삶은 진정한 나눔과 헌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귀감이 됩니다. 그는 명신고등학교 설립과 기증, 1,0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베푼 장학금, 그리고 지역 사회 곳곳에 꾸준 지원을 통해 헤아릴 수 없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평생 겸손한 자세로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했으며, 돈을 단순히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그의 철학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줍니다.


그가 60여 년간 운영했던 남성당한약방 건물은 2025년 '진주 남성당교육관'이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여 그의 정신을 기리고 지역 사회에 다시 기여할 예정입니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의 김현지 감독은 그를 "살아 움직이는 사회보장제도"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그의 헌신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깊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의 삶은 수많은 개인과 진주 지역 사회 전체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요즘은 나이가 좀 들었다고 어른 행세하다가는 '꼰대'라는 말을 듣기 쉬운 세상입니다. 저 역시 스스로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늘 경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득 '어른이란 과연 누구인가? 어떤 사람을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됩니다.


김장하 선생님의 삶은 진주라는 한 지역을 넘어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의 조용한 헌신과 나눔의 정신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입니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진정한 성공의 의미,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던져줍니다. 그의 따뜻한 마음과 숭고한 정신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제가 소개한 김장하 선생님은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분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제목이 <어른 김장하>인데, 참 적절한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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