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의 눈을 통해 본 '스즈메의 문단속'

그리고 우리가 잊지말아야할 것

by 김레비

주의) 본 콘텐츠에는 약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른이 날 연휴를 맞이하여,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그동안 보고 싶었는데 볼 수 없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즈메의 문단속’이었죠. 영상 콘텐츠의 매력에 빠져 대학 시절 ‘문화콘텐츠와 창조적 상상력’이라는 교양 수업을 찾아들었던 저는, 영화를 보고 감독의 의도가 담긴 장면 장면과 대사들을 함께 나누길 즐겨했습니다. 해당 수업에서 배운 가장 큰 레슨런은 문화 콘텐츠는 감독의 의도가 없었더라도 수용하는 관람객이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그것이 정답이 된다. 그게 콘텐츠의 매력이다.라는 것이었죠.


오늘 관람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아직도 휘파람으로 맴돌 정도로 중독성 강한 OST와 감각적인 영상미 정도를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엄청난 여운을 남겨주었습니다. ‘과연, 영상 콘텐츠의 매력은 이런 것이구나, 이렇게 강한 힘을 가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서 언급했지만, 이번 영화는 대놓고 ‘대지진을 기억하자’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그의 이전 작품인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도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자연재해를 소재로 다뤘으나 자연재해보다는 주인공 사이의 감정선에 전체적인 영화의 흐름이 담겨 있었습니다.


news_1678061400_1208379_m_1.jpeg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대표작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


하지만, 이번 스즈메의 문단속은 달랐죠. 등장인물들 사이의 감정보다 지진이라는 소재에 조금 더 몰두하게끔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영화 내내 관람객들의 뇌리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세기고 있었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영화 콘텐츠를 통해 머릿속 깊이 각인시켰습니다.




“100년 전에도”


영화 초반부에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100년 전에도 문단속에 성공하지 못해 큰 지진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는 메시지를 심어줍니다. 100년 전인 1923년은 바로, 사망자와 실종자만 40만 명에 달했던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100년전인 1923년은 관동대지진 보다 같은 시기에 발생한 ‘조선인학살’임은 이 콘텐츠를 통해 다시금 상기시켜야겠습니다. 당시 『독립신문』 에 발표된 학살당한 조선인이 6,661명 이라는 것 또한 오늘 스즈메 덕분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올해로 100주기를 맞은 1923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




“3월 11일”


영화 중후반부에는 주인공이 맞닥뜨리기를 꺼려했던 아픈 과거가 적힌 일기장이 등장합니다. 잊고 싶은 과거를 까맣게 지워가던 주인공의 일기장을 거꾸로 넘겨보다가 마침내 등장하는 ‘그날’ 그리고 ‘3월 11일’이 모든 관객의 머릿속에 또렷하게 각인됩니다. 3월 11일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불리는 쓰나미가 동일본 전역을 덮친 자연재해가 발생한 날이죠.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생각했겠지만, 스즈메의 문단속은 철저히 동일본대지진을 기억하라 ‘Remember 0311’을 외치고 있습니다. 지진 피해의 심각성이나 대처법을 알리고자 하는 내용이 아닌, 그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기억하자, 그리고 잊지 말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되는 이세계(저승) 씬에서는 쓰나미로 인해 폐허가 된 마을과 그 마을에 살았던 모든 이들의 행복했던 일상을 감각적으로 보여주죠. 저는 이 씬에서 가슴 뭉클해짐을 느꼈습니다. 또한, 이야기의 가장 결정적인 씬에서 폐허가 된 이세계 속 건물 위에 올라가 있는 배의 모습은 감독의 의도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죠(보시면 아실겁니다!).


동일본대지진 당시 폐허가 된 마을의 모습 출처:AFP=News1




“사람들의 무거운 마음이”


영화의 마지막에 정말 짧고 빠르게 지나간 대사에서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 중간에 휴대폰에 메모를 할 수는 없기에 해당 대사를 듣고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기억하려 애썼지만 아쉽게도 정확하게는 써 내려가지 못했네요. 저에게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임팩트 있는 명대사는 바로 이 대사였습니다.


“사람들의 무거운 마음들이 땅을 진정시키고 있지만,
이제 그 마음이 약해진 곳들이 있어”


그리고 주인공은 여전히 피해를 막기 위해 문단속을 다녀야 한다는 것이죠.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아픈 피해를 잊지 못한 땅들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으며, 우린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지진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스즈메의 아픈 과거를 극복하게 하는 것이 세상에 없는 스즈메의 엄마가 아닌, 미래의 스즈메 자신이라는 설정은 감독이 어떤 메시지를 의도하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즈메3.png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의 한장면


감독은 미래의 스즈메가 자신의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장면을 통해 아픔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픈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앞으로 나아가자,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이 너의 아픔을 기억할 테니"




영화 콘텐츠가 지니는 웅장한 힘을 다시금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국내에서 520만 명이 넘는 관객 수를 기록하고 있고, 일본에서는 1,000만 명이 넘는 관객 수를 기록했습니다. 모든 관객이 저와 같은 감정을 느끼지는 않을지라도 이 콘텐츠를 통해 적어도 동일본대지진에 대해 한 번은 다시 생각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감독의 의도는 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죠.


자연재해 앞에 한 없이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이기에 그 어떤 대형 사건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든지 산 사람의 이득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극히 경계하는 편입니다. 그렇기에 ‘스즈메의 문단속’은 그 어떤 메시지를 내포한다기보다는 그저 잊지 말자, 그리고 다시 일어서자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문화 콘텐츠로써 굉장히 만족스럽다는 후기를 남기고 싶습니다.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고 배포하는 크리에이터로서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은 상당한 웰메이드 ‘Remember 그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Don't forget 1923'의 100주기입니다.

메타버스 김프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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