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신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종교가 참인가,
우리의 존재란 허무한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것인가.
이걸 실존적 고민이라고 정의해보자.
실존적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답이 없음을 알면서도
이 고민을 벗어던질 수가 없다.
그리고 어떤 실존적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걍 사는 거야' '술이나 먹지' 의
자리로부터 답을 찾아 나서고, 구도자가 된다.
구도자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무엇이 진리인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진실에 가깝다고 체험적으로, 이성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가' 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많은 것들을 소거해나간다.
이건 경영의 과정과 아주 비슷하다.
'무엇이 진리인가' 를 경영에서는, '문제가 무엇인가' 로 부르기 때문이다.
결국 '무엇이 참인가' 의 싸움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세계에 대한 가장 나은 설명양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이 구도의 과정이 반드시 이성적으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감정으로 한 종교를 선택한 다음, 거기에 맞는 증거를 수집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못만 보인다.
결국 믿음이란, 상당부분이 감정적이다.
그래서 어떤 종교에 대한 믿음이 강할수록, 다른 종교나 사고방식을 배척한다.
그것이 나에 대한 공격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사회는 종교의 우월성을 '다른 생각이나 사상을 배척하지 않음' 에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이것도, 저것도 진리라는 식인데, 내게는 그건 진리가 없다는 소리와 같다.
현대사회는 그렇게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가 도시화되면서 여러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한 데 섞여 일하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리의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
그래서 무엇이 진리인지 알기란 정말 어렵다.
개인적으로 나는 일차적인 구도의 과정이 끝났다.
나는 예수가 신이며, 기독교가 참이라고 믿고 있다. 많은 돈과, 더 많은 시간을 갈아서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직 더 탐색해야 할 것들이 남아 있다.
어려운 구약의 난제들, 그리고 과학은 어떻게 성경을 확증하는가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인격도 갈고닦아야하고...
성경을 과학에 끼워맞춘다가 아니라,
성경이 만약 진리라면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과학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봐도 참이어야 한다.
이 과정을 주님께서 의심이 아니라 진지함으로 받아들여주시길 바라며,
나는 기대하고 있다.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주님께서 진리의 빛을 내 앞에 더욱 강하게 비춰주시기를.
또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하셔서, 그들과 나의 믿음을 한데 묶어서 더 많은 걸 알려주시기를.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욥기 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