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였도다
성경에는 요셉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의 아버지는 야곱이라는 사람인데, 야곱은 부인이 넷이었다.
요셉은 가장 사랑하는 부인의 아들이다.
그 부인은 요셉을 낳고, 그의 동생을 낳다가 요셉이 어릴 때 죽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을 매우 사랑해서, 귀한 염료를 사용해
다른 자식들과는 다르게 채색옷을 지어서 입혔다. 루이비통 외투 뽑아서 준 거지.
이러면 요셉은 스스로를 삼가고 이복형들에게 잘해야 생존에 유리할텐데,
멍청하게도 형들과 양을 치러 나가서 형들이 잘못한 점을 아빠한테 일렀다.
요셉이 십 칠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야곱)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하였더니
그(요셉)가 그들(형들)의 과실(잘못)을 아비에게 고하더라
이러니 형들이 요셉을 좋게 볼 수 있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형들의 호감도를 수직으로 하락시키는 일이 발생한다.
요셉이 자기가 꾼 이상한 꿈을 형들에게 이야기한 것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러니까 꿈에서 형들이 자기를 섬기더라는 거다.
요셉은 맛탱이가 가 있다.
저 말을 들은 형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하지만 요셉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참고로 그의 형제는 열한명이다)
보통 내가 어렸을 때 설교에선, 이걸 번영신학적으로 해석해서
나중에 요셉이 잘되는 것을 예언한 것이다. 여러분도 이렇게 큰 꿈을 가져라(...)
라고 해석했는데, 내가 보기엔 저건 개꿈이고,
요셉이 금쪽이처럼 자라서 자의식이 그냥 맛탱이가 가있는 게 꿈에 반영된 것이다.
여느 17살 소년처럼 요셉에게 정치력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그는 특별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저 꿈 얘기는 아빠인 야곱이 들어도 좀 심했나보다.
그리고 야곱이 보기에 형들이 요셉을 너무 미워하니까
자기가 먼저 혼내서 큰 탈이 없게 하려고 요셉을 혼낸다.
그(요셉)가 그 꿈으로 아버지와 형들에게 고하매 아비(야곱)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진다.
이복형들이 양을 치고 있으니 야곱이 걱정이 되었는지
형들이랑 양들이 잘 있는지 보고 오라고 요셉을 보낸다.
형들은 다가오는 요셉을 잡아서
구덩이에 넣은 후 옷을 벗기고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버린다.
그 미디안 상인은 요셉을 이집트의 왕실 경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판다.
하루아침에 서울 양반집에 있다가 중국 베이징 귀족의 집에 노예로 팔린 것이다.
주님께서 요셉을 돌아보시고 보디발의 집에 복을 주셔서,
보디발은 자기 집 전체를 요셉이 관할하게 한다.
그러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독을 들이고 자기랑 자자고 하는데,
요셉은 그걸 거절한다.
그래서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이 자기를 덮치려고 했다고 보디발에게 모함하고
보디발은 요셉을 감옥에 가둔다.
다행히 감옥에서도 주님이 요셉에게 복을 주셔서,
감옥장이 요셉의 손에 모든 일을 맡기도록 하신다.
여기까지 쓴 뒤, 성경은 이상한 얘기를 한다.
여호와께서 그(요셉)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형통의 사전적 의미는,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잘되어 가는 것. 이다.
대체 무엇이 잘되어 가고 있단 말인가?
요셉의 입장에서 형통이란 아버지의 예쁨을 받으며 자라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이 당시를 요셉의 입장에서 서술한 게 시편 105편에 나와있다.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한 목사님에 따르면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다. 는 걸
히브리어로 직역하면 그의 혼이 쇠사슬에 꿰뚫렸다. 라고 한다.
혼이 쇠사슬에 꿰뚫리면 어떻게 될까? 그는 정신이 없다.
아무런 원대한 계획도 꿈도 없이, 전쟁같은 하루하루를 햇빛도 안 드는 감옥에서 살고 있다.
그에겐 희망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이집트 최고 통치자 파라오가 꿈을 꾼다.
그 꿈을 요약하면 이렇다.
1. 예쁘고 살찐 암소 일곱 마리가 강에서 올라와서, 밭에서 풀을 뜯는다.
2. 그 뒤를 이어서, 흉측하고 야윈 다른 암소 일곱 마리가 강에서 올라온다.
3. 그 흉측하고 야윈 암소들이, 잘생기고 살이 찐 암소들을 잡아먹는다.
으악 꿈 하고 일어났다가 파라오는 다시 잠드는데,
비슷한 꿈을 한 번 더 꾼다.
1. 이삭 일곱 개가 피어 있다.
2. 열풍이 불어서, 야위고 마른 이삭 일곱 개가 있다.
3. 야윈 이삭이, 토실토실하게 잘 여문 이삭 일곱 개를 삼킨다.
파라오가 꾼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파라오의 주방장이 요셉을 추천한다.
왜냐면 그 주방장이 파라오의 기분을 잡쳐서
감옥에 갇혀서 꿈을 꿨을 때, 요셉이 그 꿈을 풀어줬고,
그 풀이대로 주방장은 다시 복직했기 때문이다.
파라오는 요셉을 부르고,
요셉은 그 꿈을 풀어준다. 요약하면 이렇다.
통통한 암소 7마리와 이삭 7개는 7년의 풍년을 상징하고,
야윈 암소 7마리와 마른 이삭 7개는 7년의 흉년을 상징한다.
이제 7년의 풍년이 오고, 7년의 흉년이 올 거니까,
좋은 관리를 뽑아서 곡식을 저장하고 흉년에 대비해라.
파라오는 이 꿈을 푼 요셉을 이집트의 총리로 임명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꿈을 잘 푸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이다.
이집트 전국에서 7년의 풍년동안 곡식을 저장하려면 없던 시설들을 짓고
관리를 새로 뽑고, 행정적 서류적인 절차들을 수행해야 된다.
근데 왜 파라오는 꿈 푼 거 하나 가지고 그 중요한 총리직을 맡겼을까?
그 답이 시편 105편에 나와있다.
뭇 백성의 통치자(파라오)가 그를 자유의 몸이 되게 하였고,
그를 세워서 나라의 살림을 보살피는 재상으로 삼아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관하게 하며,
그의 뜻대로 모든 신하를 다스리게 하며,
원로들에게 지혜를 가르치게 하였다.
요셉은 10년 넘는 노예, 감옥 생활 동안 과연 형통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행과 싸우던 사이에 성장했다.
자기가 꾼 개꿈을 생각없이 형들에게 자랑하는 정치력 0점 요셉에서
이집트 궁정의 모든 신하들을 뜻대로 다스릴 수 있게 되고,
늙은 너구리 같은 원로들의 지혜를 뛰어넘는 총리감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요셉은, 나중에 자신을 미디안 상인에게 팔았던
형들과 재회한 뒤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실제로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리로 보내셔서, 파라오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고,
파라오의 온 집안의 최고의 어른이 되게 하시고,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단지 이 일이 요셉의 일화로 끝나지 않는 것은,
이 절차를 주님이 모든 신자들의 인생에서
똑같이 행하고 계신다는 데 있다.
나는 마케팅이 너무 싫었다.
결과를 내줄 수 없는데 내줄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것도 싫었고,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를 낼 수 없다고 판단해서 받은 돈 다 환불해주는 것도 싫었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1천 8백을 써서 3억 2천을 벌고, 2백을 써서 3천을 벌었어도
나한테 떨어지는 돈이 얼마 안되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일로 나를 동업하던 대표에게 크게 보이게 하셨고, 그의 직원으로 3년을 보내게 하셨다.
나는 그의 직원으로 일하는 것도 싫었다.
동업자가 상사가 되는 기분을 몇이나 알까 싶다.
1년 반쯤 지나 내 사업을 다시 차리려고 시도했고 계약을 따서 돈을 받았으며 추진하려던 차에
주님은 날 회심시키셨고 그의 옆에 남기셨다.
그리고 남은 1년 반동안 주님은 그를 통해 나의 언어능력과 사고력을 크게 트레이닝하셨고,
마케팅이라는 전술적 시야밖에 없던 나를 회사 전체를 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시키셨다.
그 1년 반동안 우리 대표와 다른 공동대표, 나는 셋이서 연매출 20억을 달성했다.
유튜브를 12만에서 36만까지 성장시켰고, 카페 인원은 1만5천에서 5만을 넘겼고, 인스타는 1만을 넘겼다.
나는 모든 상세페이지를 작성했고, 사이트를 만들었으며, 직원을 뽑고 트레이닝시켜서 성과를 냈다.
내가 일을 잘하는 것에서 벗어나 어떻게 사람을 다루는지 알게 되었다.
1대1의 싸움을 잘하던 사람에서, 만 명과 싸울 줄 알게 된 거다.
이제 주님은 나를 새로운 곳에 보내시며, 내 지난 시간의 의미를 알려주셨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름받았다.
재밌지 않은가. 왜 소금일까. 왜 양갈비와 돼지목살이 아니라, 소금으로 부름받았을까.
소금은 결코 메인디쉬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소금이 없다면 음식을 짜게 할 수 없다.
요셉은 결코 이집트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위에 한사람만 있고, 아래에 모든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책무를 다한다.
그렇게 이미 있는 메인디쉬에 맛을 더해주는 것,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을 경영이라고 부른다.
주님이 부디 나를 새로운 곳에서의 빛과 소금으로 부르셨기를.
그리고 내 역량과 신앙이 그곳의 양갈비, 메인디쉬인 사람들의
맛을 더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나중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