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돌이켜, 광야길로 해서 다마스쿠스로 가라.
대통령이 탄핵됐다.
나는 주님이 이번 탄핵을 막아주실 줄 알았다.
보수와 진보 중에 누가 친기독교적이고, 반기독교적인지 너무 명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민감한 '차별금지법' 이 어느 진영에서 발의되는가?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중국과 북한에 친화적인 진영은 어느쪽인가?
중국의 기본적인 전략은 초한전이다.
한계를 초월하는 전쟁을 하겠단 얘기다.
그 초한전은, 타국에 대한 선거개입, 마약 반입, 해킹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들이 허울좋게 내세우는 일대일로라는 것도
정상적인 무역행위가 아니라,
타국에 대한 사채업이다.
민주당은 중국과 한통속이며,
중국의 도를 넘는 정치공작과 내정간섭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난 그래서 주님이 탄핵을 막아주실 줄 알았다.
역사는 주님이 이끄신다며. 이건 너무 명확하잖아.
그러나 보란듯이 탄핵은 8대 0으로 인용되었다.
주님이 또 생각할 거리를 주시는구나. 하고 담담하게 넘기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엘리야를 떠올린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이 타락했던 시기의 선지자다.
이스라엘은 당시에 타락해서, 주님이 아니라 우상인 바알을 섬기고 있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왕에게 누가 진짜 신인지 보여주겠다고 하고,
갈멜이란 산에 바알을 섬기는 사제들과, 이스라엘 백성을 죄다 모으라고 한다.
그리고 엘리야는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리지른다.
엘리야가 그 모든 백성 앞에 나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머뭇거리고 있을 것입니까?
주님이 하나님이면 주님을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나 백성들은 한 마디도 그에게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의 예언자라고는 나만 홀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바알의 예언자는 사백쉰 명이나 됩니다.
이제, 소 두 마리를 우리에게 가져다 주십시오.
바알 예언자들이 소 한 마리를 선택하여 각을 떠서,
나뭇단 위에 올려 놓되, 불을 지피지는 않게 하십시오.
나도 나머지 한 마리의 소를 잡아서,
나뭇단 위에 올려 놓고, 불은 지피지 않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바알의 예언자들은 바알 신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나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그 때에, 불을 보내셔서 응답하는 신이 있으면, 바로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하였다.
바알의 사제들이 수가 많아서,
먼저 바알에게 불을 내려달라고 기도한다.
하지만 나무로 만든 목상이 뭘 할 수 있겠는가?
엘리야는 그들을 비꼰다.
"더 큰소리로 불러보시오. 바알은 신이니까, 다른 볼일을 보고 있을지,
아니면 용변을 보고 있을지, 아니면 멀리 여행을 떠났을지,
그것도 아니면 자고 있으므로 깨워야 할지, 모르지 않소!"
결국 바알의 사제들은 당시의 제사 관습에 따라서
자기 몸을 자해하기 시작하는데,
아무 효과가 없었다.
엘리야의 차례가 되고,
그는 주님께 기도드린다.
주님, 응답하여 주십시오. 응답하여 주십시오. 이 백성으로 하여금,
주님이 주 하나님이시며,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시는 주님이심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자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누가 신인지 보여준다.
뻔한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이 이야기의 결말은
'누가 신인지 보야줌' 에 있는 게 아니다.
엘리야는 이제 누가 신인지 확실해졌으니 이스라엘이 주님께 돌아올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왕과 왕비는 회개하지 않고, 백성도 주님께로 돌아오지 않는다.
엘리야는 너무나 좌절해서 수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동굴로 도망간다.
그때 주님이 엘리야에게 말씀하신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돌이켜, 광야길로 해서 다마스쿠스로 가라.
거기에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서, 시리아의 왕으로 세우고,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라.
그리고 아벨므홀라 출신인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서,
네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워라.
하사엘의 칼을 피해서 도망하는 사람은 예후가 죽일 것이고,
예후의 칼을 피해서 도망하는 사람은 엘리사가 죽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알아먹지도 못하겠는 인명도 지명도 아니다.
중요한 건 주님은,
"너 삐진거 알겠다. 이스라엘이 타락한 것도 안다.
근데 난 역사를 계속할거다. 아무것도 취소하지 않을 거다.
내가 역사의 주인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역사는 눈이 멀었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온 이후, 역사는 꾸준히 진보해왔다.
오늘날 우리는 카페에 누가 가방을 놓고 가면 줍지 않고 경찰서에 갖다준다.
예쁜 여자가 지나간다고 강간하지도 않는다.
물론 많은 범죄가 있다.
그러나 남의 것을 탐내지 말고,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계명에 인류는 어느 때보다도 가깝다.
역사는 진보해왔다.
중국이 마약을 한국으로 반입하고,
서해 공동수역에 구조물을 세워 영해를 침범하며,
민노총의 김정은 찬양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시기에 우파 대통령이 탄핵됐다.
눈이 멀다 못해 뽑힌 것 같은 역사지만,
주님은 역사를 계속하신다.
주님이 역사의 주인이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일생을 주님께 헌신한 목회자였고 신학자였다.
그가 살고 있던 히포라는 동네 주변에서 전쟁이 나서,
히포로 사람들이 몰려들자 어거스틴은 그들을 받아주었다.
그러나 히포까지 포위되고,
히포는 식량이 부족해지고 전염병이 돌게 된다.
고령의 아우구스티누스는 병상에서 자신이 세운 교회가
전부 무너져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는 아마 좌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일생 동안 했던 일이 전부 무너져도,
역사의 주인은 주님이시라는 걸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임종할 때 읊었다고 전해지는
시편 7장 마지막절이,
오늘날 내가 가져야 할 믿음을 대신 말해준다.
내가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시편 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