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직장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과정이 참 묘한데,
내가 주도적으로 뭘 했던 것이 아니라
재앙처럼 보이는 상황을 통해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다.
한 사람은 오랜 연애의 이별을 통해서 성경공부를 하게 됐고,
다른 한 사람은 인생의 공허와 허무를 통해서 성경을 보게 됐다.
나는 이 현상을 보면서 주님의 십자가 사역을 떠올린다.
예수의 제자들은 로마와 싸워서 독립을 쟁취해줄 메시아를 원했다.
그러나 그 메시아는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버렸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자들은 하던 일 계속하러 고기나 잡으러 갔고
그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다.
인생의 기대가 좌절되고,
재앙이 밀려오는 것처럼 보이는 일을 통해서 주님이 일하신다.
재앙이 밀려와서 배가 침몰한 뒤 나뭇조각이나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때도 주님이 일하신다.
난 사람들에게 내 모든 시간을 써서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얘기하고 있었고
주님께도 그렇게 기도를 드렸지만
사실은 어느정도는 체념하고 살았다.
왜냐면 모든 시간을 써서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그런 인생을 살게 설계된 사람들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문성이란 걸 가져보니 전문성이란 오랜 시간동안 그 분야에서 일한 사람들이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게는 5년이고 10년이고 주님께만 헌신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그런 여건을 따지는 것 자체가 목회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월급을 모으고 투자를 하면서 언젠가 그런 날이 올 수도 있는 걸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장에서 벌써 두 사람과 같이 성경을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내가 한 것은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 주님이 부르실 사람을 부르신다. 정말 신기하다.
그리고 내가 기도했던 시간들이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게 놀랍다.
난 어떻게 보면 이중직 목회를 하고있는거다. 일과의 대부분을 일을 하고, 마치는 시간에 같이 성경을 보는.
내가 기도했던 그 시간들은 그냥 흘러가 버린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주님은 그 시간들을 잊지 않으셨다. 그리고 정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들을 통해 그것을 이뤄주시고 있다.
마치 주님이 떠나 계신 것 같던 그 시간에 주님은 일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인간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이런 것들이 점점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믿어보고 싶어진다.
내가 손써줄 수 없는 가까운 사람들의 회복도, 이 나라의 회복도 말이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 이 땅에 주님의 나라가 오기를 믿어보고 싶어진다.
나의 소망과 관계없이 주님은 그것을 이루실 것이다.
그분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니까.
모든 일을 주님의 뜻대로 이뤄주시길 기도한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로마서 11:3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