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일은 된다를 읽고
레이스 1기를 시작하면서 나의 포부는, 아이템을 잡기까지의 운의 영역을 구체화해보자는 것이었다.
아이템을 잡고 첫 매출을 내는 모든 과정 전부를 내 힘으로 통제해보자는 것이 목표였다. 그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까.
항상 아이템 잡는 것은 얼렁뚱땅이라고 말하고는 했다.
뭔가 정신없이 하다보면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했는지는 일일이 설명할 수 없다.
레이스를 진행하면서 나는 운의 영역을 체계화할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템을 잡은 모든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는 인풋을 데리고왔다.
사실 운의 영역을 체계화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인생을 예지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슨 아이템을 잡을지는 예측할 수 없다.
레이스가 거의 끝난 요즘에 운의 영역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운의 영역을 없애보겠다는 내 생각은, 결국 불확실한 인생을 확실한 것으로 만들어보겠다는 말이었다.
요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는데, 불확실한 인생을 확실한 것으로 만들겠다는 이 생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깨닫고 있다.
결국 내 인생의 모든 것은 삶이 데려다 준 것이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모두가 이것을 알지만,
모두가 계획을 세운다.
계획이라는 것은 결국 불확실한 삶을 확실하게 내 통제 안에 두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계획을 짜다 보면, 불안이 마음속에서 피어오른다. 당연하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해야만 한다고 마음에 주장하고 있으니, 거기서부터 걱정이 생겨난다.
마음은 걱정으로 불확실성을 통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될 리가 없다. 걱정한다고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나는 건 아니고, 안 일어날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걱정을 그만두려고 하면 마음은 아우성친다.
야, 제정신이냐? 걱정을 그만둔다고! 걱정을 그만두면 나쁜 일이 우후죽순으로 일어날 게 뻔해!
하면서.
사람은 삶의 불확실성을 참지 못하고, 그래서 마음에게 걱정이라는 방어벽을 항상 세워두도록 명령한다.
여기서부터 모든 스트레스가 생겨나고, 마음의 혼란이 생겨난다.
마음의 혼란이 생길 때, 그 혼란의 뒤편에서 마음의 혼란을 보고 있으면, 혼란은 증폭되다 서서히 가라앉는다. 가라앉는 데 며칠이 걸릴 수도 있다. 마음은 계속 나를 자신의 혼란에 동참시키고 싶어한다.
가령 화가 났다면, 야, 어떻게 이 상황에서 화를 안 내! 널 호구로 볼거야! 빨리 화를 내! 라던가, 어떻게 이 상황에서 짜증을 안 낼 수가 있어! 이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왔는데 없어! 빨리 짜증내자고! 이런식으로, 나를 계속 자신과 동화시키려 한다.
그렇지만 물러나서 그렇게 소리치는 마음을 보고 있으면, 나는 화가 나지 않고, 짜증이 나지 않는다.
결국 그것들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은 떴다가 가라앉으며 명멸한다. 그 감정들이 없어도 나는 그대로 남아 있고, 결국 감정은 내가 아니다.
여기서, 그럼 의지력을 발휘하지 말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그건 아니다. 의지력은 발휘해야만 한다. 어떤 것을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나면, 인생은 그것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던져준다. 하지만 그게 무슨 신성한 목소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던져 주는 게 아니라,
아주 사소하게 다가온다. 친구의 어떤 부탁, 아니면 인터넷상의 어떤 요청, 아니면 뭔가를 해볼까? 하는 생각들. 이런것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면 주저 말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결국 떠오르는 일 다 하면 삶은 나를 목적지로 데려다준다. 아이템 잡는 것도 마찬가지다.
감정에 딸려가지 않는 맑은 상태로 이것을 하다보면, 어떤 때는 삶의 신호를 읽을 수 있다.
아, 이게 되려고 그때 그 일이 일어났구나! 하면서. 정말로 신호가 읽힐 때가 있다.
삶을 예측하지 않고, 맑은 상태로 주변의 일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결국 나는 잘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러다 깡통을 찰 수도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렇게 걱정을 내려놓고 살면, 불확실성이 나를 덮쳐서 뼈와 살을 분리하지 않을까요!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아우성치는 것을 본다.
그렇지만 이 인생의 불확실성인 운, 이걸 신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신은 나를 틀림없이 사랑하고 있다. 심판하는 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신은 오직 사랑이며, 사랑은 사랑밖에 못한다.
그러니 삶을 사랑하고, 불확실성에 모든 것을 내맡겨도 좋다. 계획할 필요는 전혀 없다.
주어진 일들에 항상 최선을 다하면 말이다.
정리하면,
삶을 계획하지 말 것. 여기서 모든 걱정이 생겨난다.
감정에 항상 딸려들어가지 말고, 마음의 작용을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볼것.
주어진 일들에 항상 최선을 다할 것.
이 세가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있던 삶이 항상 평온할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