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삶을 살아야 한다
매일하나를 지난 10월에 그만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내려놓았다.
내려놓은 이후 나는 무슨 일이 퍼뜩 생길 줄 알았나보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일을 맨 처음 시작할때만큼 열정적으로 찾지 않았고, 그저 그것이 오겠거니 하고 있었다.
그리고 2개월이 지나 12월에 산타를 했다.
방문산타를 온라인에서 마케팅해 팔아보는 게 목적이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스토어팜 구축의 A부터 Z까지 했어야 하니까. 20일 내 단기간에 상품까지 팔아야 했으므로 열심히 일했다. 다만 너무 온라인 마케팅에만 치중했고 기간이 짧았기에 잘 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산타가 나를 구해줄 계기가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과가 안 나왔고, 나는 분노했다.
3월에는 캐리커쳐 사업을 돕게 되었다.
작가를 모집하고 면접보고, CGV 돌방해서 미팅잡는거 보고. 메가박스 가서 어디다 매대 깔지 협의하고. 수입 관리 엑셀시트 만들고. 이런저런 일들을 역시 많이 했다. 하지만 의기투합했던 사람들의 에너지 고갈로 흐지부지됐고, 나는 또 분노했다. 뭐가 이렇게 안되나 싶었다. 난 많이도 안 바랬고 한달에 100만원 정도만 벌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캐리커쳐가 끝나자 한가지 계기가 더 찾아왔다.
그즈음에 사람을 한 명 만나게 되었다. 나는 이걸 계기로 내가 다시 뭔가 진취적으로 할 줄 알았으나 도저히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고, 그 사람은 실망했는지 곧 떠났다. 최근 책을 보니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겠더라. 나는 연애를 할 상태가 아니었다. 어쨌든 그때는 그걸 몰랐고, 나는 그냥 좌절했다. 그리고 포기했다.
성공은 나랑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내 존재가치는 없고 난 죽어 마땅하다. 라고 생각했고 웃긴 얘기지만 밥을 먹으며 쌀에게 미안해했다. 내가 지구의 공기 일부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3개월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 방구석에서 누워만 있었다. 우울감은 더 깊어갔고 정신차려보니 텅 빈 집에서 나는 죽으려고 칼 들고 주방에 서있었다. 차마 긋지는못했다.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고 싶었는지 난 이런저런 영성 책을 찾아봤다. 그러다 명상에 빠졌지만 곧 내가 하는 명상이 삶을 살기가 두려워서 그걸로부터 도망치는 수단이라는 걸 스스로 알 수 있었다. 영성은 도피가 아니고, 삶을 직면하는 수단이었다.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극심한 두려움에 빠졌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 같은데, 이 삶을 살아서 대체 뭘 어째야 된다는 건가. 이렇게 평생 고통스러울거라면 지금 죽는 게 낫지 않나. 이러면서 스스로를 괴롭혔다.
하지만 사람은 기본적으로 삶을 지향하는 것 같다.
슬럼프에서 벗어난 계기는 세가지인데, 첫째는 미움받을 용기를 읽은 것, 둘째는 신사임당 채널을 본 것, 셋째는 주변을 돌아본 것이었다.
그때 추천받은 미움받을 용기를 우연한 계기에 읽게 되었고, 그걸 읽고 나는 왜 내가 슬럼프를, 우울감을 스스로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들러 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은 감정을 선택한다.
이 견딜 수 없는 공포와 우울감도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자 나는 대체 내가 왜 이런 감정을 선택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세상에 나가기가 두려우니, 방구석에서 우울해하며 자학하는 감정을 스스로 선택했었다. 뭐가 그렇게 두려웠는지 모르겠으나 인간관계에서 상처받고 일로 인해 상처받기 싫었던 것 같다.
둘째는 주변에 대한 복수였다. 내가 뭔가 열심히 했었을 때는 그런 건 때려치고 공무원이나 하라고 했던 사람들이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으니 힘내라고 응원을 한다. 그게 가족이었고 난 그런 식의 응원이라도 받으면 기뻤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더욱 우울해했고 스스로를 자학했다.
내가 고작 이런 이유로 여태까지 우울과 비관을 선택해왔다는 걸 알게 되자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정신차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마음을 먹고 나서 신사임당 채널을 보게 되었다.
예전에 추천은 많이 받았는데 보고 있지 않았었다. 거기서 한 말이 내게 아주 깊이 꽂혔다.
기회비용을 사람들이 오해한다는 것이었다.
뭐라도 선택해야 기회비용이 발생하지, 그걸 할지말지 고민하는 상태에서는 기회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컴퓨터를 공부할지 일본어를 공부할지 고민한다고 하면, 컴퓨터를 공부하면 일본어를 공부 못하고, 반대도 마찬가지라 '기회비용이 아까워서' 둘이 저울질하고 있는 상태는 기회비용조차 발생하는 상태가 아니다.
뭔가 선택하고 그걸 해나가야 그때 다른 한쪽이 기회비용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좋아하는 기회비용조차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3개월간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계속 산다면 정말로 스스로가 만든 감옥에 갇혀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모를 거라고 더욱 절감했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봤다.
내 주변에는 자기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돌아보니 각양각색의 발전상들을 일궈 내고 있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3개월동안.
그걸 보고 나는 내가 이렇게 불쌍하게 누워 있는다고 뭔가 계기가 발생하지는 않으며, 뭐라도 행동을 해야 그런 계기가 발생한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이미 알고 있는데, 정말로 다시 깨달았던 것 같다.
이 세가지 요소가 더 이상 나를 우울에 빠져 있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나는 문제들을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공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공부하기로 결단한 순간 내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다시 일어났고, 이제 어떻게 인생을 다뤄나가야 하는지 좀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
공부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다뤄야겠다.
절대적인 명제는 이것이다.
사람은 감정을 선택할 능력이 있고,
우울한 감정은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다.
대체 왜 우울한 감정을 선택했는지 생각해보면 그 이유를 알아낼 수밖에 없다.
자기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울에 빠져서 더 이상 소중한 인생을 하수구에 처박지 않았으면.
나도, 다른 사람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