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편력

매일하나의 배경

by 하룻강아지

사람들은 가끔 내게 묻는다. 하고 많은 사업 중에 왜 매일하나를 하시냐고.

사실 남들의 이야기를 매일 들어준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아직 내게는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고, 남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재미있으니 듣는 것에 가깝지만.


그런 질문을 받으면, 항상 나는 산에 들어가서 노래를 했던 이야기를 해준다.

몇 년 전에 나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아이돌은 아니고, 락 가수가 되고 싶었다. 사실 가수가 되고 싶었던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는데, 그때는 노래를 정말 못했다. 가수가 되겠다고 집에다가 얘기하니, 당연히 엄청나게 혼났다. 비범한 중학생들은 보통 이러면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 뭔가 액션을 취하는데,

정신이 비리비리했던 나는 그러질 못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 때 참으로 멍청한 생각을 했다. 지금 보면 정말 멍청한데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해서 만약 서울대에 가면, 집에서 나를 터치하지 못하겠지. 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돌아보면, '서울대에 갔으면 더 터치했으면 했지 무슨...'이라고 웃어넘기지만 그때는 진지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등교해서 화장실 두 번 가는거, 점심 저녁 배식받는 두번 합쳐서 네 번 빼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공부하니 첫 중간고사때 반에서 2등을 했다.

1등과 점수차가 많이 났지만 만족스러웠다. 태어나서 반에서 5등 안에 들어본적이 없었으니까. 초심자의 행운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2학년때는 더 열심히 했다. 매일 아침 5시 반에 일어나서 학교에 6시 반까지 등교했다. 사계절 내내 그렇게 했다. 수위아저씨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얼굴을 보는 사람이 수위아저씨 아내 되시는 분이 아니라 나였다.

어느 날은 수위아저씨가 바뀌었는지 무슨 학생이 6시에 등교하냐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하필이면 그날 따라 조금 학교에 일찍 갔었다. 그래서 나는 화를 냈다. 매일 이렇게 등교했는데 무슨 말이냐고. 그래서 교장선생님과 전화통화를 했다. 내가 학생인걸 믿지 못하는 수위아저씨가 6시에 교장선생님과 통화연결을 시켜준 것이다.

아침 자습을 하러 왔는데 수위아저씨가 들여보내주지 않는다고 교장선생님께 말씀드렸고 결국 그날도 무사히 자습을 할 수 있었다. 7시 20분쯤에 교장선생님이 반에 와서 어깨를 두들겨주고 가셨다.


그때부터는 거의 반에서 1등을 했다. 수업시간을 제외한 나만의 순수 공부시간이 학교를 가는 날에도 9시간이었다. 스탑워치로 매일 시간을 쟀었다. 그렇게 뭔가에 쫓기는 듯이 공부했다.

그랬더니 어느새 원래의 목표였던 노래는 사라져 있었다. 좋은 현상이 아니었지만 그때는 공부가 더 중요했다.

맹목적으로 서울대를 목표로 해서 그랬는지 수능을 아주 거하게 말았다. 고3 기간 내내 받아본 적 없는 점수를 수능 때 받았다. 그래도 서울에서 괜찮다 싶은 대학은 갈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인천으로 대학을 갔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열심히 했건 서울대를 갈 깜냥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때 생각해보면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 노력은 배신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인천으로 대학을 가서는 노래방만 다녔다. 중학교 때 못한 걸 지금 하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밴드부를 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노래를 너무 못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어느날 퀸의 86년 웸블리 공연 영상을 보게 되었다. 지금도 영상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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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장면이다. 저기 우글우글한게 다 사람이다.

나는 이때 남자라면 저렇게 살아야지! 생각하고, 노래를 배울 데를 찾아봤다. 다 비쌌다. 돈이 없었다.

그러면 보통 알바를 해서 돈을 벌어서 노래를 배우러 가는데, 도서관에서 그 때 하필 판소리 책을 봤다.

옛날 사람들은 폭포에서 소리를 질렀다고 하더라. 그런데 우리 동네엔 불행히도 폭포가 없었다.

그래서 산에 들어갔다. 그때가 11월이었는데, 삼다수 병 조그만거 하나 들고 산에 올라가서 3개월 내내 5시간씩 노래랍시고 소리를 질렀다. 추울 법도 한데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주 행복했다.


그랬더니 웃긴게 목에 가닥이 잡혔다. 그 이후로 노래방을 자주 다니게 되었고 결국엔 밴드부도 했고 공연도 하게 되었다.

그랬지만 결국 가수는 하지 않았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재능의 한계 같은 게 너무 명확히 보였다.

우상이었던 머큐리가 너무 뛰어난 보컬리스트여서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냥 언젠가 기회가 오면 하겠지...하고 꿈을 덮어버렸다.


나는 내 꿈을 쫓아서 인생의 방향을 틀지 않았다.


현실적인 문제가 너무 많았다. 현실은 현실이고, 꿈은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그냥 언젠가 하겠지...하고 덮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평생 그 꿈을 이룰 수는 없게 된다.


인생은 한 번인데.


그 꿈 언저리에도 못 가 보고, 죽을 때 그때 밀고나갔어야 한다며 후회할 것이다.

이건 내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한다. 꿈을 쫓아서 인생의 방향을 틀지 않는다.

그러기는 쉽지 않으니까.


그래도, 매일 일상 속에서 꾸준히 꿈을 쫓아나갈수는 있지 않을까. 사실 노래연습을 한다고 해도, 하루에 네 시간 정도면 충분했을 것이다. 네시간까진 아니어도 어떻게든 일상이랑 융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열정이라는 것은 그냥 기분일 뿐이라, 금방 사그라든다. 나도 열정이 사그라들었었고.

지금 돌아보면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 산에 들어가서 소리지르던 내 옆에 한 사람만 붙어있었어도,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한다.

더 오래 지속하고, 그사람에게 노래를 들려주면서 평가를 받으며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이 노래에 조예가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좀 더 꾸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쉽다.

나는 산에 들어갔었지만 포기했던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매일하나를 한다. 이게 나의 사명감이다.


노래는 노래방에서 부를 수준 정도로 남았지만, 인생의 방향을 튼다는 거창한 것 없이도,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들을 이루기 위해 매일매일 노력하도록 돕고 싶다는 것이 그 겨울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결실이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일을 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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