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앓고 남편의 갱년기를 앓고 나는 성장통을 앓는다.
딸은 언제나 모범생이었다. 학교에서는 ,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여 왔다. 그런 딸이 어느 순간 흔들리기 시작했다. 잘하리라고 믿었지만 어쩌면 아이가 알아서 잘해나가는 것이 편해서 방치했던 것일 수도 있다.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학원 숙제에 대한 스트레스 등으로 심한 불안이 엄습하면 아이는 엘리베이터에서 칼로 자해를 했다. 폭식을 반복하며 체중이 늘어갔다. 그저 공부하느라 운동할 시간이 없어 , 먹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이니 뚱뚱해진다고 생각했지 그것이 아이의 마음을 반영하는 것인지 몰랐다. 학원 스케줄 때문에 학교 급식과 김밥, 라면 햄버거로 점심과 저녁을 때우고 아이는 학원 스케줄로 마음과 몸이 피폐해져 갔다. 하지만 공부는 해나가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아이 말대로 자신의 일상이기 때문에 다른 것을 함으로써 나아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난 주말에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과자와 쵸코 음료 , 떡볶이 등으로 식사를 대신하며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토요일 저녁 모임이 있어 집을 비운 사이 그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남편은 못 견뎌했고 일요일 아침 운동을 하고 들어와 보니 남편은 나가고 없었다. 집을 탈출한 것이다. 아이가 주는 무언의 폭력에 힘들어한 것이다. 불안과 우울 장애라고 하지만 그것을 앓기 전에도 공부를 핑계 삼아 자신의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거나 식사를 하고 나면 먹던 반찬통의 뚜껑을 그대로 열어두거나 반쯤 먹다 남은 음식이 있는 그릇을 침대 밑이나 책상에 두고 썩은 내가 날 때까지 치우지 않았다. 옷장은 입던 옷을 그대로 처박아 두어서 냄새가 나기 일쑤였다. 공부를 핑계로 가족과 함께 쓰는 집이라는 공간을 마치 쓰레기장처럼 이용하거나 같이 생활하는 가족이 보기 싫은 듯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것을 지켜보는 남편과 나는 공부할 거리가 많아서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그런 것이다. 우리가 배려해줘야 한다라는 생각에 아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나에게는 그것이 감정적인 폭력처럼 느껴졌다. 정말 아이러니했다. 정작 아픈 것은 아이인데 그것에 공감하고 치료를 도와줘야 하는 어른이자 부모로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연민도 있었지만 폭력으로 인해 아픔과 자기 방어기전이 작동한 것이다. 남편은 이제 미래에 대해 불안해한다. 아이의 학업이 끝나면 과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남을 배려하면서도 자신을 건강하게 지킬 수 있을까? 타인과의 갈등이 많은 회사에서 일할 수 있을까? 더 나이가 들어 아내인 내가 혼자되었을 때 지금은 투정에 가까운 아이의 행동이 엄마에게 협박에 가까운 감정적 폭력 상태가 되지 않을까? 그러면서 불쑥 그런다. ' 내가 죽고 없고 네가 나이가 많아지고 힘이 없어져도 아이들에게 먼저 재산을 물려주지 마라.' 그러면서 웃픈 표정과 함께 눈물을 보인다.
사실 아이가 그런 진단을 받기 전에 엄마로서 걱정과 불안, 분노, 상처로 난 조금씩 힘들어했다. 아이의 무심하면서도 부모의 호소에도 냉정한 모습에 상처를 받았다. 기다리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육아이기에 아이의 그런 모습에 회의가 느껴지기 시작했고 가정생활보다는 자신의 변화와 성장에 즐거움과 쾌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중에 시작한 운동과 독서, 공부가 지금 이 과정을 버티게 해주는 것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아이의 그런 뭔가 포기한 것 같은 생활적인 면을 고쳐야 한다라고 남편에게 말했지만 쉽게 되는 것이 아니었고 갈등을 피하는 나의 유약한 성격에 아이에게 단호하게 대처할 수도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크면 좋아진다. 공부 때문에 일시적으로 그런 것이다라고 말했고 나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난 안다. 일시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아이는 공부만 하는 것이고, 거기에 매달려야만 자신을 인정받고 그것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불안한 것이라는 걸,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아이에게 잘못된 태도 , ( 공부만 열심히 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다른 것을 용인해 준 것 , 결핍 없이 자라는 환경; 사실 이것은 나의 잘못도 누구의 잘못 도 아니다. ) 심어준 것, 그것으로 아이가 지금 힘들어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기면서 치유되리라는 것을, 그때까지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이 너무 깊은 상처 받지 않고 버텨주길, 무엇보다 아이가 버텨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