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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nny Rain Jul 04. 2023

고양이가 사라졌다-4

소설입니다.

"어... 엄마!"

엄마가 그때 다니던 직장은 집에서 가깝지 않았다.

엄마는 집에서 역까지 15분 정도 걸어갔다가,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더 가야 하는 길을 매일 오갔다. 

그런데 조금 이른 시간 퇴근이네.

무슨 일 있는 걸까, 싶었다.

엄마는 그때 출판사에서 기획 편집 일을 했다.

출판사 일은 쉬운 일이 아닌 듯했다.

종종 퇴근할 때 팩 소주를 사서는 마치 우유 마시듯 빨대를 꽂아 마시면서 역에서 집까지 걸어오곤 하셨다.

그래서 더욱더 나는 그 시절, 엄마를 걱정했다.

"아, 엄마 조옴! 그러다가 건강 망친다고!"

아무리 어려도 거의 쉬지 못하고 일하는 데다가, 술로 그 피로를 해소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걱정하지 않는 자식은 없을 것이다.

쉬는 날엔 집안일에 진땀 흘리셨다.

도와드리려고 하면, 하지 못하게 했다.

"고등학생 때까진 집안일에 손도 대지 마.

넌 그냥 이 시절을 즐기기나 해."

엄마는 학창 시절을 우울하게 보내셨다고 했다.

"너는 즐겁게 보내야 해. 추억 많이 만들면서."

하지만 즐겁게 보내려고 해도 즐거운 일은 일어나지 않는걸... 

그래서 그때는 엄마가 그렇게 말해줘도 고맙지 않았다.

대신에 나는 늘 엄마를 걱정했다.


중학교 때까진 엄마랑 언제나 함께했다.

옷을 사러 가거나 노래방에 갈 때도 엄마랑 함께였다.

엄마는 내게 이렇다 할 친구가 없는 걸 걱정하면서도, 나랑 노는 걸 즐거워했던 듯하다.

엄마는 출근할 때 이용하는 자전거 뒤에 나를 태우고 역까지 데려다줬다.

그때도 엄마는 회사에 갈 때 지하철을 이용했고,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역을 가로질러서 가야 했다.

역 근처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학교까지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주로 역에서 학교까지 걸어갔다.

나는 엄마의 따뜻한 온기를 안고, 매일 아침 등교했다.

중2 때까지는 늘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3부터는 친구들이 조금 더 내 인생을 차지하면서,

종종, 아니 자주 엄마의 자전거 뒷자리를 피했다.

고등학생이 되고는 엄마의 자전거 뒷자리에 앉는 게 무척이나 드문 일이 되었다.

지금, 그리고 그때, 중학생 시절 자전거 뒤에 앉아 엄마 허리를 꼭 붙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엄마 뒤에 앉아 엄마의 허리를 붙들고, 엄마에게서 나는 섬유유연제 냄새를 맡는 걸 즐겼다.

그 냄새는 엄마의 냄새와 섞여 기본 좋은 향을 만들어 냈다.

엄마의 냄새는 기분 좋은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아기 때 맡았던 엄마 냄새가 언뜻 기억날 때도 있었다.

물론 그 기억 속의 냄새가 엄마의 냄새인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그것은 어쩌면 그냥 냄새가 아니라, 추억이 감각에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파도인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이 갑자기 생각났다.

왜, 그런 거 있잖아, 갑자기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뒀던 기억이 불쑥 떠오르는 거.

머리가 굵어졌다고 엄마가 부끄러워졌던 건 아니다.

그냥 나 자신이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려면, 엄마에게서 멀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려면, 엄마의 치마폭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섭섭해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 그 감정이 느껴졌다.

그래도 나는 그 울타리에서 조금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혼자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건 내게 중요한 변화였다.

엄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건 독립하려는 내 의지를 인정해 준 것이었다.

아니, 그 이후로 오히려 엄마와 나는 더욱더 친밀해졌다.

내 위에 있던 존재가 내 생각을 인정하고 수용해 줄 때,

그 관계는 한 단계 발전하는 게 분명하다.

엄마도 나의 성장을, 한 사람의 내딛음으로써 받아들여주셨다.

마냥 어린아이의 생각이 아니라, 한 독립체의 의지로 받아들여준 것이다.


나는 엄마가 내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여자아이 이름이 규민이가 뭐야.

그래서 그때, 입을 삐쭉 내밀고 말았다.

엄마가 바로 내 마음을 알아채고 물었다.

"왜 또 입 삐쭉이야, 귀여운 아가씨가?"

엄마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콩 했다.

다른 때 같으면 그러다가 말았을 테지만, 그땐 마음속에 있던 말을 해버렸다.

"엄마, 또 팩 소주야? 몸 버려! 그리고 내가 길거리에서 이름 불리는 거 싫다고 했잖아."

"간만에 한잔이다, 뭐. 그리고 네 이름이 어때서 그래? 네 할머니가 얼마나 애써서 얻은 이름인데. 너 알잖아."

"... 내가 뭘 알아? 그런 거 이야기해 준 적 없잖아."

"아, 그랬던가. 맞다, 이야기한 적 없었지. 언젠가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말 나온 김에 이야기해 볼까.

안 그럼, 네가 할머니를 원망하며, 평생을 보낼지도 모르니까."

"...무슨 이야기?"

"원래 네 이름은 규민이가 아니었어."

"에, 정말?"

"응. 실은 할머니가 원래 이름에서 규민이라는 이름으로 바꾼 거야."

"그럴 줄 알았어. 여자애에게 그런 이름이라니, 너무 하잖아. 역시 아들이 아니라서 남자 이름으로 바꾸신 거지?"

"이그, 아니야. 그리고 원래 이름도 할머니가 지어오신 거였어."

"... 원래 이름은 뭐였는데?"

"음... 그래 다 이야기해야겠다. 잠깐, 마음속에서 정리 좀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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