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하실주인 Mar 24. 2020

직장이 집이랑 가까울수록 좋다고요?

나는 아직도 차가 없다.

새벽 4시 50분에 울리는 알람 소리, 흘러내리는 눈꺼풀을 부여잡고 잠을 깨려고 안간힘을 썼다. 일어나기 조차 힘에 부치건만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위해 마신 맥주의 숙취가 나를 더욱 괴롭게 했다. 그저 그런 약속이나 취미생활이었다면 울리는 알람 소리는 꿈속에서 들리는 아리아로 취부 해 버릴 테지만, 출근을 그렇게 할 만한 배짱이 없었다. 어떻게든 일어나 씻고 출근을 해야 했다.


'대체 왜 새벽 4시 50분에 일어나야 할까?'


수용자는 본인 자비로 신문을 구독할 수 있다. 대략 20여 종 500부 정도가 매일 들어오는데, 교도소라는 특수한 환경 탓에 신문사가 직접 수용자에게  배달할 수 없다. 허가받지 않은 민간인이 통과할 수 없는, 교도소 정문 앞에 신문을 두고 가면 사회복귀과 직원이 챙겨 도서실에 전달한다. 교도소 정문에서 도서실로 신문을 운반하기 위해 사회복귀과 직원들이 교대로 새벽 7시에 출근해야 했다.


나는 차도 없었고 집도 멀었다. 대부부의 교도소가 그러하듯 우리 소도 접근성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역에서 교도소로 향하는 버스는 새벽에 시간대를 맞출 수 없었고, 자주 운행하는 것도 아니었다. 기본요금이라 할 지라도 매일 택시를 타는 건 결코 적절한 대안이 아니었다. 결국 걷는 수밖에 없었다. 새벽 이른 시간에 지하철역에서부터 걸어가는 것이 지속적이기도 했고, 피곤하지만 가장 안전한 시간에 도착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일주일에 적으면 한 번, 많으면 세 번, 그런데 어느샌가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부장님, 부장님~!!!"

누군가 나를 불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수용자 P가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신문 분류표를 뽑아줘야 작업을 시작하는데 내가 잠들어 있어 진행하지 못했나 보다. 나는 언제 잠든지도 몰랐다. 이런 일이 잦아졌다. 퇴근해서 씻고 잠깐 멍 때리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들었고, 눈을 뜨면 허무하리만치 출근 시간이 돼 있었다. 어지간한 약속은 평일에 잡지 않았고, 조금씩이라도 만지던 기타는 하드케이스 속에서 숙성돼 가고 있었다.


피곤함에 따른 내 행동반경은 집 교도소 집 교도소 주말이었다. 출퇴근하다 하루가 끝나버리는 허무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이 감정은 살아왔던 환경의 익숙함을 덮어버렸다. 매일 산책하던 공원, 책 읽던 카페, 운동하던 헬스장, 그리고 익숙한 얼굴들, 10년 이상 살았던 그런 익숙함을 덮고서 나는 이사를 결심했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고민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바로 교도소로 향하는 입구가 보인다. 드디어! 교도소 앞으로 이사를 했다. 보통은 교도소 주변에 사는 걸 꺼려할 만도 한데 나는 교도소 담장조차 반가워 보였다. 이제 7시 출근이면 6시 30분에 일어나도 됐고, 9시 출근 날에는 8시 30분에 일어나도 됐다. 퇴근은 어떠한가. 18시 정시에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면 18시 10분이다.


"부장님 요즘 좀 좋아 보이시네요. 좋은 거라도 드시나요"

"다들 직장 생활 좀 해봤지? 역시 집이랑 직장이 가까워야 삶의 질이 높아지는 듯 해"

오전 작업 후 P, H, K랑 잠시 한담을 나눴다.

"직장이 집이랑 가까울수록 좋다고요? 부장님 저희가 훨씬 가까운 곳에 사는데 저희들 사는 곳으로 오시는 건 어떤가요?"

"얼씨구 이제 좀 친해졌다 이거지?"

느닷없이 치고 들어온 H의 농담에 P와 K가 키득거린다. *P, H, K는 수용자다.

가까운 것에도 한계는 있다.


나는 아직도 차가 없다. 대부부의 교도소가 그러하듯 우리 소도 접근성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하릴없는 평일 저녁, 약속이 없으면 나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턴 약속이 생겨도 취소하거나 주말로 미루게 됐다. 집을 나서 번화가까지 가는 게 그렇게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다시 내 행동반경은 집 교도소 집 교도소 주말...

그리고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집 교도소 집 교도소 집집 교도소가 됐다.


어찌 보면 아주 사소한 이유들이었다. 수용자 신문 배달을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할 때가 있었고, 그 출근 과정이 힘에 부쳤다. 이사를 고민하다 교도소와 가까운 집을 물색했고, 지금의 우리 집으로 이사를 했다. 수용자 신문에서부터 지금 우리 집까지 얄궂은 인과관계가 생겼다.


얄궂은 인과관계들, 그  사이사이에서 고민했던 선택들이 내 인생에 기억에 남을 만한 중요한 일들을 만들진 않았다. 이사 전과 다를 바 없는 생활들, 출근과 퇴근, 딱히 중요하다 말하기 힘든 일상.


"P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하는 건 아닌 거 같지 않니?"

"어? 부장님 전 순간의 선택으로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데요."

"그건 순간의 그릇된 선택이겠지"

"아... 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언제부터 눈 오는 날 우산을 챙기기 시작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