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헬프 (The help)>
영화 <더 헬프 The Help>
테이트 테일러 감독, 캐서린 스토켓 원작
최근에 <더 헬프>를 다시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나에게 남았던 것은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으로부터 느낄 수 있었던 유쾌함과 재미도 있었지만, 영화의 시대와 배경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고 있는 관습과 가치관에 대한 불쾌감과, 분노와 답답함, 그리고 용기를 느꼈다. 미국 사회에서 외면 받고 차별받았던 흑인들, 특히 흑인 여성의 삶에 주목했기에 사회에서 제쳐진 사람들의 삶을 가장 구체적으로 풀어낸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인종차별’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지만, 등장인물들 고유의 에피소드는 보는 이들이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이끈다.
영화는 1960년대 초반의 미시시피 잭슨이라는 마을을 다루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미시시피 주는 인종차별의 본거지라고도 불리우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미시시피 주의 경제가 대농장 위주로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대농장이 많았던 남부는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데려와 노예로 삼고, 그들을 대신하여 농장 일을 하도록 했다. 남부의 노동력을 흑인 노예들을 통하여 채울 수 있었기에 노예제 폐지에 크게 반대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는 그러한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흑인과 백인들은 함께 공존하지만, 흑인들은 백인들의 소유물이었다.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자동차와 집과 같이 ‘가정부’라는 재산으로 취급당했다. 한 가정에서 다른 가정으로 옮겨가기도 하며, 그들은 백인들을 위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가부장적 성격이 강했던 1960년대 미국의 풍경이 있다. 화목하고 부유한 미국의 중산층 가정들이 등장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지위와 역할이 눈에 띄게 구분되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남성은 직장에서 승진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성취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여성은 깨끗한 집을 유지하고 맛있는 요리를 가족들에게 대접해야 비로소 인정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의 백인 여성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은 마을에서 열어지는 파티와 사교모임, 그리고 남자였다. 출산과 결혼, 그리고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 궁극적인 인생으로 여겨졌던 백인 여성들에게 흑인 가정부들은 유일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존재였기에, 흑인 가정부들에게 채워졌던 족쇄와 편견들은 더더욱 강화되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지니아 스키터는 금발머리와 초록색 눈을 가진 활기찬 백인 여성이다. 언론사에 취업하기 위해 소재를 찾던 중, 주변에 살아가는 흑인 여성 가정부들의 삶을 인터뷰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와 가정부들의 이야기는 도서로 출판하게 되고, 곧 베스트셀러로 널리 읽혀지게 된다. 스키터는 마을 사람들 중 유일한 흑인들의 편이 되어주며 그들의 주체적인 삶을 이끌어주는 인물이기에 영화의 흐름 속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녀 또한 흑인 여성 가정부 콘스탄틴의 손에 의해 자랐다. 스키터는 콘스탄틴을 진정으로 사랑했으며, 그녀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워나갔다. 그녀의 엄마 샬럿은 스키터의 성향과는 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인데, 당시의 보통 백인 여성들처럼 허영심이 가득하고 사교를 중시한다.
어느 날 나이가 많아 귀가 안들리는 콘스탄틴과 콘스탄틴을 찾아온 딸이 샬럿의 사교모임을 망쳐버리고, 샬럿은 콘스탄틴을 해고한다. 도시에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콘스탄틴이 떠난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스키터는 엄마에게 매우 서운함을 느낀다. 하지만 사실 영화에는 반전이 드러난다. 엄마 샬럿은 콘스탄틴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녀를 데려오기 위해 찾아갔었지만, 이미 콘스탄틴은 나이가 많아 세상을 떠나버렸다. 샬럿은 잭슨 마을의 보통의 백인 여성들처럼 허영 가득하고 흑인들을 하위적인 존재로 여기는 인물이지만, 한편으로는 뒤늦은 죄책감을 느끼며 흑인과의 인간적인 관계를 보이기도 하는 면모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샬럿의 흑인을 향한 시선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계점을 지닌다.
한편 평생 동안 콘스탄틴과의 교감으로 정서적 안정을 유지해온 스키터는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알자 매우 슬퍼한다. 콘스탄틴이 자신의 딸과 스키터의 자라나는 키를 함께 표시해둔 흔적을 만지며 슬퍼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콘스탄틴이 스키터가 자신의 고용주의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딸처럼 생각하며 얼마나 섬세한 관심과 사랑을 주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잠시 스키터의 과거 장면이 교차하며 등장하는데, 무도회 파트너를 구하지 못해 상심하고 있는 스키터에게 콘스탄틴이 다가와 자신감을 심어준다. “사람은 태어나서 땅에 묻히기 전엔 아침에 눈을 뜨면 뭔가 결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물어야 한다. ‘바보들이 나에게 하는 나쁜 말들을 믿어야 하나?’고.” 이 장면에서의 콘스탄틴의 말은 아마도 스키터가 (아무도 하지 않았던) 세상에 흑인들의 고통 받는 삶을 알리는 일 등을 하며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개척하는 데에 원동력이 되어주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장면은 스키터의 개인적인 추억으로 보여지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장면으로도 볼 수 있다. 결국 영화가 <헬프> 일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흑인을 차별적으로 대했던 과거 사회, 그리고 아직까지도 잔존하는 인종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성찰해보자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차별적으로 여겨졌던 존재들이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그들을 향한 존중과 이해가 필수적이다. 스키터는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기득권에 속하는 백인 여성으로서 차별받던 흑인들의 삶에 아파하고 분노하며 그들의 존엄성을 위해 움직였던 존재였다. 만약 스키터에게 콘스탄틴이 없었다면, 콘스탄틴이 스키터를 사랑으로 대해주는 가정부가 아니었다면 아마 스키터 또한 흑인과의 정서적 교감을 통한 이해를 경험하지 못하고, 다른 또래처럼 수동적이고 관습적인 삶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스키터와 콘스탄틴의 관계 외에도 가정부 에이블린과 모블린의 관계는 감동적인 여운을 안겨준다. 에이블린은 자신의 고용주인 힐리의 딸 모블린을 대신 돌봐준다. 축축한 모블린의 기저귀를 갈아주지도 않고, 힐리는 자신의 딸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한창 엄마의 사랑이 필요할 나이인 모블린은 에이블린을 엄마처럼 여긴다. 에이블린이 모블린을 돌보는 장면에서, 모블린은 에이블린이 꼭 엄마인 마냥 편안하게 잠들고, 무언가가 필요한 상황에서 힐리를 찾지 않고 에이블린을 부른다. 모블린에게 옷을 갈아입혀 주는 사람은 엄마 힐리가 아니라 가정부 에이블린이었고, 천둥이 칠 때 모블린의 곁을 함께하는 사람 또한 에이블린이었다.
에이블린은 모블린에게 항상 이야기해준다. 힐리에게 모블린이 거칠게 훈육당하고 난 후에도, 아침이건 밤이건 눈을 꼭 맞추고, 꼭 기억하라고 이야기한다., “넌 친절하고, 넌 똑똑하고, 그리고 넌 참 중요한 사람이야.”. 엄마에게 끝없이 사랑을 받는 딸보다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힐리의 소품으로 내세워지며, 제대로 된 유아 시절을 보내지 못하는 모블린에게 에이블린의 말은 모블린이 건강한 내면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기억일 것이다. 모블린이 에이블린의 교감을 기억하며 성장한다면, 스키터처럼 높은 자존감과 주체성을 가지며 어른이 되어가지 않을까 잠시 상상해보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흑인 가정부들이 용기를 내는 과정이 중요하게 그려지고 있다. 화장실조차 같은 공간에서 사용하지 못하며 굴욕감과 분노를 느끼지만 그들은 그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다스리려고 했다. 미니는 대학을 포기하고 가정부로 일하러 가는 자신의 딸에게 백인들이 자신을 건드려도 말대꾸하지 말고, 무조건 자신을 깎아내리라고 이야기한다. 미니는 백인의 화장실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해고한 못된 고용주 힐리에게 똥파이를 먹이는 시원한 복수를 해내지만, 자신의 행위가 큰 일로 번져날까봐 불안해하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인다.
1막은 에이블린의 인생 이야기로 시작된다. 가정부 에이블린은 스키터의 인터뷰 요청을 받고 그 인터뷰로 인해 자신이 지역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노출되고, 위험에 빠질까봐 한참을 고민한다. 하지만 곧 용기를 내어 인터뷰에 응한다. 그녀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아들 때문이었다. 에이블린은 평생을 백인 아이들을 대신 키워오며, 자신의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키우지 못했고 그녀의 아들은 타인에 의해 길러지다 사고로 죽음을 당했다. 에이블린은 스키터의 요청을 듣자마자 단칼에 거절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아무도 없는 어두운 집으로 돌아와 밤새 머리를 붙잡고 고민하는 장면, 그리고 스키터에게 인터뷰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장면들을 통하여 그녀가 용기를 내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 망설였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그리고 그녀가 어렵게 내었던 용기는 결국 자신이 겪었던 비참한 과거로부터 출발한 것이었다. 영화의 결말인 – 인터뷰를 엮은 스키터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보다, 가정부들이 용기를 내는 순간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인 것이다. 에이블린과 미니의 용기로 시작한 인터뷰는 곧 10명 이상의 가정부로 이루어지게 된다.
스키터가 인터뷰를 요청했던 마을의 가정부들은 모두 거절했지만, 아들의 등록금을 위해 보석을 훔쳤다는 이유로, 그녀의 입장을 들어보지도 않고 억울하게 경찰에 끌려간 한 가정부가 가혹하고 잔인한 형벌을 받고, 흑인을 향한 이유없는 총격 사건이 일어나자 그에 분노를 느낀 가정부들은 스키터의 인터뷰에 응하게 된다. 에이블린이 자신의 아이를 생각하며 용기를 냈었다면, 잭슨 마을 흑인 가정부들의 용기는 ‘분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백인들의 차별에 수긍하고 대항하지 못했던 과거와 다르게, 사회로부터 느끼는 질색과 억울함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동안 쌓여왔던 분노를 터뜨리게 된다. 그들은 사회가 흑인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바라볼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더 이상 참고 있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시골 출신의 사랑스러운 성격을 가진 백인 여성 샐리아는 마을의 주도권을 가진 힐리의 일행에 끼지 못하고 조금은 외롭게 지낸다. 모두가 질투하는 잘생기고 능력있는 남편을 가졌지만, 남편이 자신과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를 임신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임신했던 모든 아이를 유산했고, 그 죄책감을 자신의 새로운 가정부가 된 미니에게 털어놓기도 한다. 조금은 모자라 보이지만 다른 백인들과 달리 자신이 흑인과 다른 점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이 영화에서 스키터와 함께 평등을 실천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스키터와 샐리아는 주변 흑인들을 동반자로 여기는 점에서 같은 교차점을 가지지만, 삶의 태도에 있어서 조금은 구분된다. 남자와의 연애보다 기자로서의 커리어를 중요시하는 주체적인 스키터와 달리,샐리아는 백인 가부장 사회가 요구하는 전형적인 여성상을 따르려는 인물이다. 그런 차이점이 존재하기에 샐리아의 흑인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과 인식은 더욱 특별하게 볼 수 있다. 백인우월주의에 젖은 다른 전형적인 백인 여성들과는 달리, 샐리아는 흑인들을 있는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흑인에 대한 차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미니가 백인인 샐리아가 흑인인 자신과 같은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고 충고하는 장면은 꽤 역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샐리아는 세상 물정 모르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영화의 의도를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하고 전적인 인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스키터와 에이블린, 미니가 함께 주도한 책이 출판되고, 책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한 힐리는 자신이 미니의 똥을 먹었다는 사실이 마을에 알려질까봐 기겁을 한다. 익명으로 쓰여진 인터뷰이지만 미니가 자신이 그의 똥파이를 먹었다는 것을 퍼뜨릴까봐, 미니와 스키터에게 경고를 하며 불안해하는 애처로운 모습을 보인다. 힐리가 미니의 똥을 먹었다는 사실이 결국 힐리의 어머니를 통해 퍼지며 힐리는 마을에서 웃음거리가 된다. 항상 당당하던 그녀가 스키터의 책에 의해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웃음과 통쾌함을 안겨준다. 그렇게 출간된 책 <The help>는 수천 부 이상이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고, 잭슨 마을을 넘어 미국 전역에서 읽히게 된다. 특히 스키터의 엄마 샬럿은 딸의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자신의 일화가 스키터의 책에 실린 것을 보고 찾아온 힐리에게 샬럿은 힐리를 골리며 딸의 편을 든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키터의 모친이기에 태도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 일수도 있겠지만, 기성 세대 사람인 샬럿이 그동안의 세월을 반성하고 새로운 관점을 갖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책을 통해 에이블린과 미니는 가정부 뿐만 아니라 많은 흑인들에게 용기와 위로, 변화를 향한 격려와 자극을 주었고, 백인들에게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그동안의 부끄러움을 느끼고 반성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들 또한 변화를 위해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은 힐리와 에이블린의 장면으로 마무리되는데, 힐리가 자신의 집에 있는 은수저 세 개가 사라졌다며 에이블린을 의심하고 도둑으로 몰아세운다.
에이블린은 과거처럼 힐리에게 비굴한 가정부로 남으려 하지 않았다. 과거의 그녀였다면 무조건 잘못을 빌고 불리함을 피하려 했겠지만, 상황에 맞선다. 그녀는 은수저를 훔치지 않았다고. 힐리의 딸 모블린이 은수저를 만졌다고. 힐리는 물론 에이블린이 그것을 훔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의 부끄러움과 굴욕을 알아버린 에이블린에게 경찰에 신고할 것이라고 오히려 더욱 협박한다. 하지만 에이블린은 당당하게 말한다. “당신은 늘 거짓과 협박을 일삼죠. 당신은 구제불능이야. 지겹지도 않나요?” 집을 떠나려는 에이블린의 앞을 막는 모블린에게 마지막으로 이야기해준다. “넌 똑똑하고, 넌 친절하고” 그러자 모블린은 이어서 말한다. “그리고 넌 중요한 사람이야”. 어쩌면 에이블린과 모블린의 마지막 대화는 에이블린이 자신 스스로에게 건네는 대화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불합리함을 견디지 말고 “중요한 사람”인 자신을 위해 살아가라고. 그리고 영화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건네는 메시지일 것이다. 당신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인격체 또한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임을 꼭 명심하라는 당부. 영화는 힐리의 집을 떠나 걸어가는 에이블린의 뒷모습으로 페이드 아웃된다. 오후의 햇살에 비친 메타세쿼이아의 긴 그림자 사이로 걸어가는 에이블린의 뒷모습은 한껏 가벼워보인다.
인종차별의 비극적인 일상을 흑인 가정부들을 통해 풀어 다루어, 다소 무거운 영화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러한 힘든 배경 속에서도 웃음을 잊지 않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려는 그녀들의 밝은 모습이 있었기에 관객들은 유쾌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스키터와 미니의 복수는 잔혹하기보다는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로 등장했으며, 백인 여성 힐리와 그 무리들은 철저한 악역보다는 바보 머저리같은 어딘가 부족한 모습을 보이며 웃음을 자아낸다. 요리 실력이 뛰어나 마을에서 높게 인정받는 미니, 작가가 꿈이었던 아들 대신, 인터뷰 책을 통해 그 꿈을 이뤘다고 웃어보는 에이블린의 모습 등 흑인 가정부들의 비극과 극복 과정 속에 웃음과 유쾌함을 넣은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억압받는 삶 속에 아름다운 웃음과 소소한 행복들이 전달되었기에, 그들의 비극과 – 비극을 바꿔내려는 용기들이 아름답고 찬란하게 돋보일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