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문학 감상이 주는 만족감에 대하여
즐거움을 기대하는 즐거움
- 장르문학 감상이 주는 만족감에 대하여
평소 장르문학을 잘 읽지 않았다. 전공 수업에서 배운 내용들을 제외하면 장르문학에 대한 지식도 없었다. 장르문학, 하면 ‘마니아층’이 뚜렷하다는 인식 때문인지, 장르문학을 읽어내려면 ‘마니아층’들이 공유하는 이슈들과 요소들을 전부 이해하고 즐겨야 한다는 왠지 모를 부담감이 있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니, 나는 어릴 적부터 장르문학을 즐기는 것에 익숙한 독자였다. 초등학생과 중학교 저학년 시절의 나는 ‘인터넷 소설’을 꿰고 다니는 독자 중 하나였다. mp4와 전자사전의 작은 화면으로 수백 편의 인터넷 소설을 감상했다. 밤을 새면서까지 작은 불빛에 기대어 소설을 읽었고, 눈물과 콧물을 질질 짜기도 했다. 지금보다 더 순수하고 열렬하게 인터넷 소설이라는 콘텐츠를 대했던 것 같다.
문학의 영역이라고는 일컫기엔 다소 애매하지만, 나는 인터넷 소설을 통해 로맨스 장르의 매력을 깊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인터넷 소설의 대다수는 비슷한 플롯, 비슷한 캐릭터, 비슷한 사건 등 복사 붙여넣기 한 것처럼 비슷한 클리셰로 가득했다. 이를 테면, 남자주인공은 까칠하지만 여자주인공만을 바라보는 순애보이고, 여자주인공은 발랄하고 지켜주고 싶은 허당이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여자주인공의 연인으로 자리하지 못하는 서브 남자주인공이 있다. 인터넷 소설이 주로 그 당시 중,고등학생들에 의해 쓰였기 때문인지, 주인공들은 대체로 고등학생으로 등장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인터넷 소설을 읽으며, 중고등학생에 대한 어이없는 착각을 가지기도 했다. 인터넷 소설에는 조직폭력배와 주인공들이 대결하거나, 영화 같은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 등 실제 고등학생과는 거리가 먼 소재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 인터넷 소설과는 다른 평범하고 조용한 일상에 환상은 모두 깨졌고 더 이상 인터넷 소설은 읽지 않았다. 인터넷 소설을 마지막으로 읽은 지 10년이 넘어가고 있는 지금이지만, 인터넷 소설이 남겼던 특유의 여운과 감성은 내 안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인터넷 로맨스 소설은 한국 밀레니얼 세대라면, 특히나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접했을 장르성이 짙은 텍스트다. 지금은 이북이 발달하여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가독성 좋게 텍스트를 독서 할 수 있지만, 2000년 후반과 2010년 초반까지만 해도 스마트폰 시대가 아닌 피쳐폰 시대였고, 이북리더기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텍스트 리더기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로맨스 소설은 엄청난 독자층을 쌓으며 독자들의 애정을 받았다. 단순한 텍스트 파일의 형식으로 공유되던 인터넷 소설은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로도 제작되며, 전자 파일이 아닌 종이 물성의 형식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학교 도서관에 가면 인터넷 로맨스 소설의 표지가 갈수록 너덜너덜해지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기도 했다. 지금은 인터넷 로맨스 소설이 그 시절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추억 중 하나로 남았지만, 그 당시 인터넷 로맨스 소설은 90년생 10대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텍스트였고, 획기적인 콘텐츠였다.
인터넷 로맨스 소설이 10대 소녀들을 유입하고,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두 가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는 짙은 로맨스 장르 위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는 점이고, 다른 한 가지는 1020 청소년들과 청년들 위주의 독자와 저자의 나이대가 뚜렷하여 그들만의 문화와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자극적이거나 과장된 인터넷 로맨스 소설의 요소들은 이성과 사랑 서사에 대한 기대감과 만족감을 자극 및 충족시키기 충분했다. 허무맹랑하지만 언젠가는 인터넷 소설과 같은 사랑이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그러한 기대에서 오는 즐거움이 인터넷 소설을 계속 읽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뉴미디어가 발달한 지금은문화 발전과 전반적인 흐름에 1020 청소년, 청년들이 주도하며, 다른 세대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지만, 20년 전 만 해도 청소년과 청년들의 시선이 담긴 문화는 어른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는 ‘그들만의 문화’의 측면이 강했다. 1020에 의해 제작되어 1020에게 소비되기에, 인터넷 로맨스 소설은 1020의 공감대와 니즈를 오롯하게 반영하고 재현한다는 점에서 매력도가 컸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인터넷 소설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디지털 기기와 함께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라는 점 또한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소설은 블로그나 카페 등 ‘랜선’을 통해 등장하고 공유되었다.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 커뮤니티가 지금만큼 편리하게 발달하지 않았음에도, 인터넷 소설의 독자층이 10대 초반의 청소년이었다는 것을 보면, 그들이 다른 세대와는 달리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성장한 세대였기 때문에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에서도 거부감 없이 그들만의 문화를 놀랍게 생성하고 확장시켜 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웹 소설이 문학의 영역으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에 관한 논의는 끊이지 않는다. 인터넷 소설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르문학으로 여길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을 한다면, 나는 인터넷 소설은 장르문학의 요소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웹소설이라는 개념과 산업이 등장하기 전인,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의 인터넷 소설의 장르성에 대해 들여다보고 싶다. 인터넷 소설로 분류되었던 작품들은 전문 작가가 아닌 마니아 독자층에 의해 제작되었던 경우가 많았기에, 완성도적인 측면에서는 빈약한 경향을 가졌다. 그러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한 연재는 독자와 작가가 익명으로 쌍방향적인 소통을 이룰 수 있게 했고, 작가로 하여금 독자들이 기대하는 요소들, 그리고 충족되길 바라는 요소들을 작품 속에 구체적으로 반영할 수 있게 하였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소설은 로맨스,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문학의 마니아를 키웠을 뿐 아니라, 소설이라는 텍스트 그리고 더 넘어 문학과 창작에 대한 매력을 깨닫게 해준 경로가 되어주었다는 생각을 한다. 접근하기 쉬운 영역인 만큼, 인터넷 소설의 독자들은 독자의 영역에서 작가의 영역에까지 나아가며 텍스트 창작욕을 만족시켰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을 겪은 밀레니얼들은 문학 자체에 대한 관심과 애정 또한 자연스레 지니며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문예창작학과 학생이라면 소싯적 인터넷 소설 작가들을 줄줄 외우고 다녔거나 커뮤니티에 장르 작품 한 편 이상을 연재해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13살의 나는 그랬다. 로맨스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로맨스 클리셰가 가득한 어색하기 짝이 없는 소설을 20회 넘게 연재해본 경험이 있다. 물론 그 소설이 올라갔던 곳은 초등학생 여자아이들로 가득한 귀여운 카페였다.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선은 참 모호하다. 시간이 갈수록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이 모호한 경계에 놓인 작품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장르가 되는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 나는 장르문학과 순수 문학을 뚜렷하게 구분 지어 ‘이름’ 붙이거나 무게를 재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순수문학이 장르문학보다 우월하다는 고정 관념이나, 순수 문학은 장르문학에 비해 고리타분하다는 고정 관념은 다양한 작품의 등장과 의의를 주목받게 하지 못하게 만든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등장하고, 읽혀지는 텍스트들이 문학으로 분류될 수 있는가 등과 관련된 문학의 형식에 대한 질문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그 위치와 위상 등 내용적인 면과 영향력에 관한 비평은 신중하고 입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 또한 한다.
순수문학에 비해 장르문학은 만족감과 즐거움을 위한 독서의 측면이 강하다. 장르문학 또한 마찬가지로 작품의 의의와 작가의 맥락이 독자에게 큰 영향력을 주지만, 그보다는 작품의 세계관과 캐릭터, 사건 등에서 오는 흥미로움과 매력도가 독자에게 만족감을 준다. 전형적으로, 때로는 낯설게 결합되고 변형되는 장르적 요소들은 독자들이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만족감과 즐거움을 남긴다. 다시 말해, 장르문학은 일상적이지 않은 요소를 통해 일상적이지 않은 잔상과 여운을 남기기에, 적지 않은 독자들을 자연스럽게 유입하거나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장르문학은 순수문학에 비해 독자의 욕망을 자연스레 반영하거나 자극한다. 시대의 독자에 따라, 혹은 그 나이대의 독자에 따라 취향과 관점은 다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장르문학은 이러한 면을 가장 잘 담아낸다고 생각한다.
2020년 SF 장르가 청년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까닭을 살펴보면, 장르문학의 매력 포인트에 대해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2019년과 2020년 김초엽을 비롯한 작가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순수문학과는 다른 SF장르의 매력과 의의가 이전보다 자주 거론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2020년을 되돌아보면 경제적으로 여전히 힘든 시기에 전염병까지 터진, 희망과 낙관이 부재한 힘든 시기였다. 청년들은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에서 위로와 만족감을 얻지 않고, 미래의 ‘정해져 있지 않은’ 미지의 이야기를 통해 헤아릴 수 없는 위로와 만족감을 얻었다. 그리고 ‘정해져 있지 않은’ 시공간을 상상하는 낯선 즐거움 또한 얻었다. 과학 기술, 미지의 존재 등 우리 생활에 밀접하지 않은 소재들이 등장하여 낯선 분위기를 형성하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와 질문이었다. 순수 문학에서도 적지 않게 마주칠 수 있었던 질문들, 이를 테면 가족의 존재 의의, 사랑과 이별,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이 던져져 있음을 느끼며, 인간의 바깥을 담은 SF가 그 어떤 장르보다 인간적인 장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인간을 둘러싼 이야기와 질문들은 SF 만의 장르적인 요소들을 통해 가공되거나 비틀어지며, 그 여운과 충격은 극대화되어 독자에게 전달된다.
SF 외에도, 추리소설과 판타지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문학작품은 독자에게 각기 다른 결의 만족감과 즐거움을 남긴다. 추리소설은 탐정의 사유를 쫓아가는 재미와 사건의 반전에서 생기는 긴장감을 느끼게 하고, 판타지소설은 인간 세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존재들의 이야기와 세계관을 감상하는 즐거움과 몰입감을 남긴다. 장르문학은 어떤 분위기, 어떤 소재들을 어떤 방식으로 다룰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이를테면 추리소설에는 반드시 탐정이 등장하거나 판타지 소설에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는 전형성을 갖춘다. 그 정도와 활용되는 방식은 물론 다양하게 변형되지만, 장르문학에는 늘 전형적인 소재와 문법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문학 감상이 저마다의 만족감을 남기는 이유는, 장르문학이 ‘정형화된 관습’을 통해 늘 ‘만족감’을 보장한다는 것이라고 역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순수문학과 다른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르문학이 어떤 즐거움과 만족감을 제공할지 우리는 이미 예상하고 있지만, 그 작품이 장르의 전형성을 어떤 식으로 비틀고 변형할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작품이 어떤 차별화를 택할지에 대한 나름의 기대감을 안고 감상한다. 그리고 장르문학 감상만이 주는 쾌락은 이 작품을 읽는 과정에서 크게 발생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지점이 장르문학의 존재 가치를 직관적으로 드러낸다는 생각도 함께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