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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 Nov 25. 2020

하필 우리는 살아 있어서 겨누는 일을 멈추지 못하고

이소호, 『캣콜링』


우리의 경진이는 어디까지 기울어지고 있었을까     


 우리는 각자 마주하고 있는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혹은 살아간다는 것보다는 견뎌간다는 말이 어울리기도 한다. 끊임없이 우리를 거쳐 가는 크고 작은 마찰들에 견뎌내고 쓰라림을 머금는다. 우리를 그토록 쓰라리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세계는 대체 어떻게 흘러가기에 작고 보잘 것 없는 한 존재를 고달프게 만드는 것일까. 

 시집『캣콜링』은 ‘경진이네’, ‘가장 사적이고 보편적인 경진이의 탄생’, ‘한때의 섬’, ‘경진 현대 미술관’, ‘서른한 가지 이경진을 위한 아카이브’의 5부로 이루어진다. 소제목에서 읽혀지듯, 이 시집에서는 ‘이경진’의 입에서 맴도는 목소리와 ‘이경진’을 향하는 목소리가 전체적으로 울려 퍼지고 있다. 우리는 시집을 통해 이경진이라는 이름을 외우며, 어딘가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보편적인 이경진의 존재감과 마주할 수 있다. 이처럼『캣콜링』은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화자의 시선과, 시적 세계를 통해 독자적으로 짜여 지고 있다. 

 시적 화자는 날 것의 인간 ‘이경진’으로 존재하지 않는데, 그는 타인으로부터 정체성을 부여받고 하나의 개체가 된다. 딸, 언니, 애인 그리고 아시아 여성 등과 같은 정체성은 시적 화자로 하여금 자신을 타자화하도록 유도한다. 다시 말해, 외부에서 형성된 자신의 존재감은 스스로를 낯설게 느끼게 하며 거리감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인은 뉴욕에 거주하며 느꼈던 자신의 낯선 존재감을 녹였다. 시적 화자인 ‘나’가 외국인에 의해 거칠게 취급되는 장면들이 돋보이는데,「나는 스페인어를 읽지도 쓰지도 못해요」는 스페인어 문장들과 번역된 각주로 구성되어 있다. 스페인 택시 기사가 스페인어를 하지 못하는 동양 여성인 ‘나’에게 고함치는 내용에서, ‘나’는 택시 기사로부터 ‘이방인’과 같은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룩앳미 여러 켤레의 히치하이커 헤이 헤이룩앳미 젖은 레코드판 빈티지 미녀 룩앳미걸 두유워너퍽 수수깡으로 지은 경찰청 헬로헬로 종이컵 속에서 짤랑짤랑 우는 치나 오솔길 지름길 아유이그노잉미 낯선 몸과 학교로 가고 구석에서 조는 퍼킹비취 엄마 괜찮아요 잘 살고 있어요 행복해요 그 사이 나의 소원은 고백투유어컨트리

                                              - 『캣콜링』 ,「캣콜링」 中          


 누군가에게 의해 ‘헤이뷰티풀, 치나’로 조롱되는 화자는 ‘낯선 몸’을 이끌고 엄마에게 ‘괜찮다’는 안부를 전한다. 그러는 사이 ‘나’의 소원은 “고백투유어컨트리”라는 시어로 나타나는데, 나의 개별적 실체를 되돌아보는 화자의 시선이 드러나는 듯하다.          



입에 담기 어렵지만말해야만 했던 것들           


      가진 게 다리뿐인 우리는 살아야 했다 

      배고플 때마다 이불 속에서 똥구멍을 조이는 연습을 했다

      한 호흡에 한 번씩 조여지는 똥구멍, 수축하는 질 

      (…)

      젖을 빠는 대신 우리는 자궁에 인슐린을 꽂고 매일매일 번갈아가며 

      엄마 다리에 사정을 했다 

      그 때마다 개미가 들끓었다 


      잘 들어 엄마 

      엄마는 이제 여자도 뭣도 아냐 

      내가 이렇게 엄마 다리 사이를 핥아도 웃지를 않잖아 

      봐 봐 

      이렇게 손가락 세 개를 꽂아도 느낄 줄을 몰라 엄마는 

      (…)

      엄마를 향해 사정을 했다 다리 사이로 개미들은 끓고, 턱을 벌리고 엄마의 축 처진 살을 꼬집었다

      울었다 엄마는 

      영등포 로터리에서 핑크색 유두를 잃어버린 소녀처럼 똥파리가 들끓는 1989명의 동생을 뜯어 먹으며

      (…)

      하얀 천과 삼베 탄수화물과 초콜릿 구더기와 거머리 그리고 씨 다른 아빠, 아빠, 아빠


      나는 이미 죽음의 추상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제

      가족을 말하지 않고 나를 말하는 방법은 

      핑계뿐이다


      “엄마는 늘 내게 욕을 했어요 

      애미 잡아먹는 거미 같은 년이라고“

      (…)

                                                - 『캣콜링』 ,「경진이네-거미집」 中      


   

 「경진이네-거미집」에서, 엄마를 강간하고 있는 것은 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딸’이 엄마를 강간하는 행위를 묘사하기에 수치심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공존해야 할 모녀’의 관계가 파괴되고 있으며, 두 존재 사이의 적대감이 시를 압도한다. 엄마와 딸 사이에 숨김없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욕망과 폭력은 두 존재를 차갑게 마찰시키고 있다.       



  있잖아 엄마, 배 안에 누굴 태운다는 것은 정말 징그러운 일이야 징글징글하지 그러니까 아빠한테는 비밀이야 내가 아직 여자라는 건

                                                          - 『캣콜링』 ,「엄마를 가랑이 사이에 달고」 中  


        

 위의「엄마를 가랑이 사이에 달고」에서도 앞서 소개한 시와 같이 충격적인 발화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엄마와 아빠, 나 사이에 흐르는 외설적인 기류가 돋보인다. 아빠와 자신을 성적으로 관련시키는 화자의 목소리는 상식적이지 않아 보이기까지 하다. 우리는 이러한 입 밖에 꺼내기 어려운 - 가족 서사에 녹아들고 있는 이러한 외설의 지점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위의 두 시 외에도 시집에는 성적인 요소들이 충격적으로 전달되는 시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러한『캣콜링』시들의 외설은 어떤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본질적으로 보았을 때, ‘경진이네’와 같은 가족 집단은 여자와 남자의 결합으로 통해 발생된다. 결혼과 가족제도는 마치 인류의 신화와 같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우리에게 제공하는 심리적 안정, 편안함은 결혼과 가족이 지니는 최대의 강점이자 매력이고, 유혹이다. 가족의 ‘신화적’ 면모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찾아낼 수 있는데, 결혼과 가족제도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여자와 남자의 섹슈얼리티는 일반적으로 남성 중심적 가부장제 권력 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결혼제도와 성별은 ‘권력관계’로 파악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약한 권력을 가진 집단은 지배되고 통제되기 마련이다. 

 따라서,가족 서사에 성적인 요소가 충격적으로 삽입된 『캣콜링』의 시들은 가족의 구조를, 더 나아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전형적 위계’, 다시 말해 ‘가부장제’가 가진 한계를 전달한다. 앞서 언급했던 시「경진이네-거미집」,「엄마를 가랑이 사이에 달고」의 외설은 가부장제의 그늘을 노골적으로 병렬시킴으로서 얻는 기대효과 - “재현”을 위해 사용되었던 요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캣콜링』의 가족 서사들이 모두 외설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사소한 일상의 사물과 장면들이 비틀어져있는 시 또한 존재한다.      



엄마는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는 온 가족의 머리를 깎아 제사상에 올렸다 

홀수여야 하는데 우리는 둘 둘 넷이잖아 어떡하지? 아빠는 밖에서 다른 여자를 주워다가 머리를 깎아 우리집 식탁에 앉혔다 자 이제 우리 모두 모였구나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보살의 마음으로 까까머리가 되었다     

 (...)     

 아버지는 제기 위에 온 가족의 손바닥을 두고 못을 쿵쿵 박았다 이제 우리는 영원히 헤어질 수 없단다 가족이니까 아빠는 마지막으로 못 머리를 자르고 영원히 뽑지 못하게 두었다      

                                                  - 『캣콜링』 ,「경진이네 – 5월 8일」 中     



 「경진이네 – 5월 8일」은 가족의 제사가 있는 일상을 다루고 있다. 이소호는 이 시를 실제 자신의 아버지를 보고 떠올렸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제사 준비를 끝낼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가, 제사상이 모두 차려질 무렵 한지에 이름을 쓰는 등 가장만이 할 수 있는 행위를 보였고, 이러한 시인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면모와 강하게 대비되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소호는 가족 사이에 울리고 있는 목소리들을 잡아 낚아채었다. 그는 가부장제의 폭력을 노골적이면서도 공격적인 화자의 목소리로 풀어낸다. 날 것의 목소리가 새파랗게 날이 선 채 내뱉어지고 있다. 가장 원초적인 관계인 ‘가족’을 다루며, 그 관계에서 울려 퍼지는 폭력과 상처를 이야기한다. 시인에게 있어 폭력의 중심지가 바로 가족인 것이다. 하지만 가족 사이에서의 권력관계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폭력은 아무렇지 않은 것들로 전락해버린다. 그만큼 가족의 일상이 화자에게 ‘아무렇지 않은’ 폭력이 되어 버렸기에, 시가 남기는 충격의 강도는 극도로 최대화되는 것이다. 

 시인은 가족에서 느끼는 고초를 털어놓기 보다는, 가부장제 아래에 놓인 화자의 경험과 주변 상황 ‘그 자체‘를 무심하게 바라본다. 이소호의 문장들은 시의 외부를 향해 강하게 튕겨 나가고 있기 보다는, 시 세계의 일상에서 무한하게 맴돌며 고유한 맥락을 이룬다.      

 시집의 마지막 장은 “행복한 부모에게 어떻게 우울증을 설명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활자 없이 한 사진이 오롯하게 삽입되어 있다. 시인은 각주를 통해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라는 퍼포먼스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전달한다. 『캣콜링』의 독자들은 이소호의 묘사에서 드러나는 가족의 괴기스러움이 독자 자신의 부모와 가족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는 계기로 향해 갈 수 있다고 떠올려볼 수 있겠다. 


 그러나 죽은 토끼에게 설명하는 그림은 토끼에게 아무런 의미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부모를 비롯한 가족구성원에게 근본적인 이야기-가족의 그늘을 끄집어 이야기하는 것도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할 확률이 크다. 오히려 가족 간의 거리감을 비대하게 넓히는 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정 폭력과 부조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한, 가부장제에 대한 의문을 가짐으로서 가족 집단이 흔들리거나 전복되기를 바라는 이들은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족 집단은 구성원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고, 앞서 말한 것처럼 심리적 영향이 크게 일어나는 인간의 일차적인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 무엇보다 부모는 자신을 발생시킨 근원이기도 하기에. 그러나 우리는 개별적인 실체이다. 기울여져가는 스스로의 존재감에 낙담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시인의 문장처럼‘살아 있기 때문에,‘겨누는 일을 멈출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사적이고 보편적인 경진이들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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