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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 Jul 10. 2020

현대인의 몽타주

브이로그

 



  14년 전, 유튜브에 최초로 올라온 콘텐츠는 창립자 중 한 명인 자베드 카림의 ‘동물원의 나’를 다룬 영상이었다. 동물원에 갔던 이야기를 하는 이 영상은 요즘의 브이로그에 해당된다. 동물원을 거닐며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아주 소소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잔잔한 일상을 다룬 영상은 주목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용자들의 곁을 소리 없이 스쳐지나갔지만, 2019년 현재 ‘동물원의 나’가 업로드된다면 그 반응과 위상은 과거와 다른 양상을 가질 것이다. 뉴미디어 시대가 오며 브이로그라는 하나의 장르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브이로그를 통해 자신의 사생활을 익명의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관음증적인 호기심으로 누군가의 일상을 지켜보는 이들의 관계가 생성되었다. 생산자와 시청자의 관계를 잇는 ‘매개체’ 혹은 ‘영상 텍스트’ 로 기능하는 브이로그는 현대인의 일상과 욕구를 영상으로 가시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모순 또한 존재한다. 아직까지 ‘브이로그’와 그 형식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적다고 생각하였기에, 이를 다루어 볼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영상의 시대다. 지난 2016년 페이스북의 최고 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비디오 퍼스트 (Video First)’를 외치며 ‘5년 안에 동영상이 글과 사진을 뛰어넘어 가장 많이 소비되는 온라인 콘텐츠가 될 것‘ 이라고 예언했고, 콘텐츠 플랫폼이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되도록 발전됨에 따라 우리의 일상에서 영상 콘텐츠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또한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과 프로그램 등이 등장하며 누구나 쉽게 영상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던 영상 제작의 문턱이 한결 낮아지며. 다양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영상 생산자로 뛰어들게 되었다.



  이처럼 미디어의 양식이 변화하면서, 미디어의 이용 양식 또한 변화한다. 사람들은 블로그, 개인 홈페이지와 같이 텍스트와 이미지를 매개로 한 플랫폼에서,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기반의 플랫폼으로 넘어가고 있다. 정보를 얻고 일상을 공유하기 위해 블로그와 카페의 스크롤을 내리고 글과 사진을 읽어 내려갔다면, 이제는 유튜브 어플을 켜고 영상을 켠다. 친근한 목소리와 흥미로운 영상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맥락과 키워드를 다뤄준다. 연관 검색어를 타는 것과 같은 소모적인 노력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몇 분의 영상물들은 사용자의 니즈를 관통하고 채워준다. 특히 뉴미디어 사용에 보다 익숙한 밀레니얼과 Z세대들이 네이버와 같은 포털사이트보다 유튜브의 콘텐츠를 신뢰하고 있다는 양상이 생겨날 만큼, 우리는 영상 콘텐츠와 영상 플랫폼의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유튜브가 지구상의 대표적인 영상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 요인은 다름 아닌 ‘이용자’이다. ‘유튜브’라는 단어 자체도 You(사용자)+Tube(영상)의 합성어이기도 하다. 유튜브는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영상을 자유롭게 올리고, 다른 누군가가 업로드한 영상을 볼 수 있는 ‘오픈 플랫폼’ 그 자체이기 때문에, 이용자들에 의한 이용자들의 콘텐츠들이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오픈 플랫폼’의 특성은 유튜브를 이용자들의 욕구와 관계가 교차하는 창구로 만들었으며, 때문에 유튜브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과 같은 SNS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이용자들은 유튜브를 보며 정보를 얻고 영감을 받을 뿐 아니라 영상 생산자와 유대감을 느끼며 가까운 관계를 형성한다. 이처럼 경계 없는 생산자와 이용자의 자유로운 관계는 유튜브를 매력적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유튜브의 자유로운 생태계는 대중으로 하여금 이용자의 역할에서 만족하지 않고 생산자의 역할까지 나아가도록 유도한다.



  콘텐츠 생산자와 이용자의 허물어진 경계는 ‘1인 미디어’라는 새로운 미디어 콘텐츠 포맷을 촉진시켰다. 유튜브의 콘텐츠 생산자들은 형식과 완성도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우며, 다양한 주제와 독자적인 양식으로 콘텐츠를 제작한다. 독자적인 아이디어를 품고 실현하는 이들은 먹방과 ASMR 등 매스 미디어 방송에서 다뤄진 전형적인 콘텐츠와 차별화되는 독자적인 장르의 콘텐츠들을 등장시키고 발전시켜 왔다. 이처럼 1인 미디어의 영역과 영향력이 대중적으로 점차 확장되면서, 영상을 통해 자신의 일상적인 모습과 이야기를 콘텐츠화하고, 이를 매개로 타인들과 소통하는 것은 이제 낯설지 않을 만큼 평범한 개인의 일상적인 생활양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브이로그’는 자신을 콘텐츠 화하는 대표적인 장르로 부상한다. 브이로그 (V-log)란 비디오(video) 와 블로그(blog)의 합성어로, 영상의 형식으로 제작되는 블로그 콘텐츠를 뜻한다. 브이로그는 최근에 등장한 장르는 아니다. 1993년 영국의 BBC에서 방송했던 ‘비디오 네이션’ : 시청자들의 일상을 찍은 영상물을 프로그램화하여 방송했던 시리즈물이 브이로그의 시초가 되며, 200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블로그’가 영상의 영역으로 옮겨옴에 따라 브이로그로 재탄생했다. 브이로그는 특별하지 않은 것들을 다룬다. ‘크리에이터’에 대한 정보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떤 화제에 대한 미시적 관점을 전달하거나 유용한 정보를 설명하고 추천하는 목적을 궁극으로 두지도 않는다. 브이로그의 주된 목적은 바로 채널을 가지고 있는 크리에이터의 일상적인 모습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에 있다. 브이로그의 크리에이터는 자신의 모습과 자신이 보내온 일상을 다룬 영상을 통해, 구독자들과 소통하고 유대감을 나누려는 의지를 보인다. 시청자들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어느 낯선 타인의 일상을 관찰하며, 가상적인 친밀감에서 비롯되는 만족을 얻는다.



   브이로그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은 2017년 이후이다. 2016년 8월부터 브이로그를 업로드해온 ‘ondo 온도’ 는 브이로그의 대중화를 일으킨 대표적인 채널이다. 2019년 12월 기준, 83.7만 명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온도의 ‘구독’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주로 ‘주말에 보내는 일상’을 찍는다. [집순이의 중국당면 떡볶이, 토스트, 방구조 바꾸기, 택배 언박싱하는 집순이의 일상], 혹은 [퇴근 후 맛있는 저녁 먹으면서 보내는 소소한 일상]과 같은 제목을 걸고, 소소한 일상의 장면으로 구성된 20-30분 정도의 영상을 업로드 한다. 시청자들은 댓글을 통해 영상에 꾹꾹 담겨진 ‘잔잔한’ 분위기를 칭찬하며, 영상에 보여진 제품들과 패션 아이템들의 정보를 질문하기도 한다.



  브이로그의 테마는 다양한 갈래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ondo 온도’의 영상처럼 여유로운 일상 자체에 초점이 맞춰지는 채널이 있다면, 자신의 직업을 밀착적으로 담아내거나, 공부를 하는 수험생의 일과를 다룬 테마들도 있다. 변호사 ‘킴변’은 ‘변호사의 공부법’, ‘변호사의 가방 털기’, ‘변호사의 출근부터 퇴근까지’ 등 시청자들이 흥미를 가지고 몰입할 만한 주제로 자신의 직업적 특색을 살린 브이로그 영상을 업로드한다. 킴변의 ‘변호사 브이로거’라는 이색적인 타이틀이 화제가 되면서,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을 걸고 채널을 만드는 이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경찰관과 약사 등과 같은 전문직과 전도사와 경매사, 승무원, 웨딩플래너 그리고 일반 회사원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브이로그를 업로드한다. 브이로그 시청자들은 크리에이터와 함께 출근하고 업무를 보는 듯한 몰입을 느끼며 평소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직업세계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학교 시험,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 등을 위한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 모습을 찍는 브이로그 또한 자주 볼 수 있다. 중학생부터 대학원생까지 넓은 연령대와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공부하는 자신의 모습을 찍어 올린다. 시청자들은 공부에 몰입하고 있는 크리에이터의 모습을 통해, 공부 자극과 의욕을 받는다고 반응한다. 이들에게서 주목해볼 지점은, 얼굴 한 번 마주해보지 않은 서로를 응원하는 등 역시 유대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크리에이터의 삶을 재현한 브이로그를 통해, 시청자들은 타인의 일상을 지켜보는 것을 넘어, 그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낯선 이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더군다나 브이로그는 크리에이터의 1인칭 시점으로 주변 세계를 바라보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크리에이터의 ‘체화된’ 경험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렇기에 시청자가 낯선 타자를 보며 느끼는 ‘내적 친분’은 더욱 강화되는 것이다. 크리에이터 또한 자신의 일상과 정체성을 ‘감상’하고 ‘반응’해주는 낯선 타인들에 의해, 자신의 ‘실존’적인 주체라는 것을 새로이 실감할 수 있다. 무엇보다 크리에이터는 자신의 영상을 ‘컨셉화’ 시키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영상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기호화되며 표출된다는 새로운 경험을 겪게 된다. 알고리즘에 의해 영상이 누군가에게 추천되고, 시청 횟수 등 여러 요인에 의해 수익을 얻게 되기도 하고, 다른 SNS를 통해 공유되는 등 크리에이터 자신의 정체성과 일상은 누군가에게 새로운 기호로 여겨지게 된다.   



  브이로그의 형식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많은 크리에이터들과 미디어에 의해 다루어지면서 전형화 되고 있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크리에이터들은 제목과 썸네일 등으로 자신의 영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전시한다. ‘대학생의 시험기간 일상’, ‘평범한 자취생의 24시간’ 등의 제목과, 영상을 함축적으로 압축한 썸네일 이미지를 통해 브이로그에 담긴 크리에이터의 개성과 주변 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들은 영상과 이미지, 글을 통해 자신의 존재 방식과 일상적 세계를 재의미화하여 전달한다.



  브이로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서사적인 특징을 가진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브이로그를 구성하는 영상 클립들은 대부분 짧고 파편적이기 때문에 연속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작은 순간들을 조각조각 덧대어 놓는 브이로그는 마치 ‘콜라주’와 같다. 브이로그는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혹은 ’일을 시작하여 일을 마칠 때까지’ 등과 같은 ‘시간’적 순서에 크게 따르지만, 영상에 등장하는 사물과 사건은 크리에이터가 생각하는 중요도에 따라 편집되거나 강조된다. 브이로그의 크리에이터들은 생중계처럼 그들의 모든 순간을 녹화하지 않는다. 그들은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영상으로 기록한다. 브이로그는 업로드 되기 위해 컷 편집과 자막 편집, 효과 등 2차적인 가공을 거친다. 의미 없는 시퀀스는 삭제하고, 짤막한 영상들을 이어 붙인다. 크리에이터의 말과 생각들을 자막으로 옮기고, 감성적인 배경음악과 상황을 꾸미는 효과들을 기교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 우리는 크리에이터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쉽게 초점을 맞춰볼 수 있다.



  카메라에 등장하는 크리에이터의 등장 방식 또한 주목할 법하다. 이들은 주로 셀프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담아내거나, 자신이 보고 있는 사물과 풍경을 1인칭 시점으로 촬영한다. 이들은 자신의 브이로그 세계 안에서 오롯한 ‘주인공’이 되어간다. 카메라를 향해 혼잣말을 하기도 하는데,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다양한 감정을 내보이기도 한다. 쌓아두었던 고민을 말하며 홀가분함을 느끼거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처럼 브이로그는 개인의 고백적인 발화행위가 전면화되고, 1인칭 시점에서 시청자들을 2인칭으로 지칭하며 직접적인 발화를 수행한다. 이러한 브이로그의 양식은 면대면 대화의 상황을 연상시키게 한다. 따라서 브이로그는 ‘담화를 조성하여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기대하는 대화적인 텍스트’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브이로그라는 매개체를 사이에 두고, 크리에이터와 구독자의 이름을 갖게 된 시림들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소통을 하고 있을까? 일상을 공유하는 것은 왜 그들에게 위안과 만족감을 가져다주는 방식이 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이 자연스럽게 들기 시작한다. 인간은 다른 종족과 달리 사회성을 가진 존재라는 본질적 측면에서 앞의 의문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항상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기를 갈구하고, 연결된 상태에서 유대감을 느끼며 안전함을 느낀다. 그러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지 않는다면 외로움을 느끼고 자신이 불리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여기며 불안해하기 마련이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누군가와의 ‘관계’ 그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 속에서 확인되어지는 자신의 존재감’이다. 즉 인간은 항상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중요시하며, 작고 큰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생활 속도가 빨라지게 되면서, 현대의 인간관계는 효용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회의감을 불러일으키며 의미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정서를 중점으로 두며 서로의 존재감을 공유하는 인간관계는 우선이 되기 쉽지 않다. 일상적으로 얽혀진 이해관계는 서로의 존재감을 ‘수단화’하며 결국 현대인을 소외시킨다. 누군가가 자신의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들어주길 원하고, ‘잘 살고 있다’라는 인정을 받기를 원하지만 누군가에게 쉽게 털어놓는 것은 가벼운 일이 되지 않고 있다. 가까운 친구와 가족이 옆에 있더라도 말이다. 시공간을 초월하고, 닉네임이라는 새로운 정체성 혹은 익명의 정체성이 가능한 인터넷에서의 소통은 현대인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준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와, 타인의 존재감과 나란히 있고자 하는 정서적인 관계에 대한 욕망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정서적인 측면의 욕망은 실질적이고 이해적인 측면의 욕망에 비해 비교적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무엇도 아닌 ‘인간’이기에, 정서적 관계에 대한 욕망은 우리의 깊은 맥락을 이룬다. 따라서 ‘브이로그’는 인간의 정서적 관계에 대한 욕망을 입체적으로 표출하고 해소할 수 있는 하나의 창구가 된다고 볼 수 있겠다. 답해야 하는 물음표가 가득 찬 현실 속에서 크리에이터는 브이로그로 일상 속 자신의 모습을 콜라주하며,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라는 느낌표를 던지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브이로그의 시청자는 이러한 크리에이터의 영상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채울 느낌표를 수집한다.          



  이처럼 브이로그를 통한 적극적인 자기표현은 수동적으로 영상을 받아들였던 시청자를 크리에이터의 위치로 이끌며 활발한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정서적 관계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긍정적인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브이로그는 모순적인 측면 또한 가지고 있다. 브이로그 시청자들은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자신의 삶과 비교하면서 오히려 소외를 느끼기도 한다. 크리에이터를 보며 시청자는 그를 통해 대리 만족을 하기 보다는, 브이로그 속 그의 일상과 자신의 일상을 저울질하며 가치를 매기도록 유도할 수 있다. 이는 시청자로 하여금 크리에이터와의 거리를 멀리 두게 하고, ‘실재’적으로 느껴야 할 크리에이터를 ‘비실재’적으로 느끼도록 한다. 또한 브이로그는 다양한 테마와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이 등장하고는 있지만, 그들의 일상은 다른 ‘브이로거’를 모방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아보카도와 무인양품, 예쁜 카페 나들이 등은 브이로그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그리고 물론 다른 소재들도 등장하겠지만, ‘브이로그’를 찍는 사람이라면 한 번씩 거쳐 갈 법한 공통적인 소재가 있다는 것에 공감할 만큼, 각자의 개성을 담아야 할 브이로그가 획일화적인 모습을 가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보고 타인과 소통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충족되기도 하지만, 브이로그로 표현되는 자신의 일상이 ‘감각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형성될 수도 있다. 브이로그에서 만큼은 흠이 없고 ‘완벽’한 존재이며, 남들과 구분되는 감각을 가진 캐릭터로 존재하고 싶은 욕망은 자신을 깎아내리기 마련이다.



  이러한 ‘보여주기식’ 콘텐츠에 대한 열망은 크리에이터로 하여금 자신의 일상을 결코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느끼게 하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의 일상마저 의식하는 삶을 유도한다. 브이로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크리에이터로 하여금 또 하나의 페르소나를 가지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순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순은 앞의 맥락과 같은 선상에 놓인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사람들은 굴욕적이고 보잘 것 없는 순간을 드러내는 것보다, 황홀하고 만족스러운 순간을 강조하고자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상을 도려내고,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일상적 모습을 강조한다. 또한 가공된 브이로그 속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전부라고 ‘믿고’ 싶어할 지도 모른다. 이러한 모순은 크리에이터가 현실과 가상의 경계, 진정한 정체성과 꾸며진 정체성 등 자신의 존재감과 존재 방식에 대해 방황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위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특별하고 이색적’인 자신만의 콘텐츠를 찍고 싶다는 욕망은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디야 알바생 브이로그’ 타이틀을 걸고, 카페에서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업로드한 이디야 커피 아르바이트생이 화재가 된 적이 있었다. 크리에이터는 자신의 브이로그 영상에 이디야 프랜차이즈의 음료 레시피를 ‘소개’해주었고, 이를 본 이디야 담당자는 크리에이터를 향해 법적인 문제를 걸기도 했다. 또한 최근에는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한 손자가 슬퍼하는 친척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다 걸린 것이 누리꾼들의 비난적인 목소리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브이로그는 소소한-미시적인 삶과 맥락을 표현하고 공유함으로서 현재성을 강하게 느끼도록 하고, 복잡한 사회 속에서 행복감과 만족감을 확장해나가는 실존의 방식이라는 의의를 부여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들춰보아야 할 그늘 또한 존재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브이로그는 다른 콘텐츠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보다 현실성과 실감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얻었지만, 앞서 언급한 모순적인 맥락과 상황 등을 보았을 때 역시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브이로그가 개인의 실재성과 현재성을 강화하는 지점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공유된다는 본질적인 속성 때문이다. 개성 넘치거나 자극적인 콘텐츠가 살아남는 온라인 뉴미디어 생태계 특징 상, ‘브이로그’가 현대인들에게 마냥 ‘소소한’ 콘텐츠로 끝까지 남아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2019년에 제출했던 학교 과제물이다.


*참고 문헌 :

나스미디어, 2019 인터넷 이용자 조사, 2019

공한나, 「유튜브 브이로그의 타자 담론」,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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