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봤습니다.

나 혼자 놀기

by 김은유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봤습니다.

예전에 앞부분을 봐서, 10화 중간부터 봤어요.


드라마에 문지웅(최현욱 배우)이라는 친구가 나옵니다. 공부는 꼴찌인데 애가 참 괜찮습니다.


친구들과 여행 가서 엄마랑 스피커폰으로 통화합니다.

엄마가 소리 지릅니다 “전교 꼴찌가 뭐니, 전교 꼴찌가!”


문지웅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차분하게 대답합니다. “성적표 봤어?”

엄마는 더 열받아서 소리 지릅니다. “넌 뭐가 그렇게 맨 날 차분해?”


문지웅의 이 차분함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내가 선택한 건 공부가 아니니 꼴찌라도 괜찮다는 느낌입니다.

우리는 흔히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어도,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어 스스로를 자책하잖아요. 이 아이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교 꼴찌가 아무렇지도 않아요. 지웅이 엄마의 대사가 이어집니다.


“전교 꼴찌가 아무렇지도 않아?”, “고작 이렇게 살아?”라고 소리칩니다.

스피커폰이라 함께 여행을 간 친구들이,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옆에서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화를 안 냅니다. 여전히 차분하고 애정 있는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알았어, 엄마. 다신 꼴등 안 할게, 잠은 좀 잤어?”라고.

전교 꼴등이지만 배려가 넘치는 아이예요.


드라마 중간에 문지웅의 순수하고 배려 있는 모습이 많이 나와요. 전교 꼴등이라고 나쁜 아이가 아니죠. 누구보다도 인간적이고 똑똑합니다.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입니다. 문지웅을 보고 있으면 자유가 느껴집니다. 마음에 드는 캐릭터예요.




주인공인 나희도(김태리 배우)와 엄마 신재경(서재희 배우)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나희도는 어렸을 때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엄마는 돌아가신 아빠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잊으려고만 합니다. 일에만 열중합니다. 나희도는 이런 엄마의 모습에 속상해하죠. 뉴스 앵커인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속보를 하느라 오지 않았습니다. 나희도에게 상처로 남아있죠.


나희도의 엄마가 말해요.

“넌 네 아빠에 대한 그리움뿐이지? 난 아니야. 난 8할이 원망이야. 너 키우면서 쭉 그랬어”


엄마가 혼자서 아이를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남편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싶어요. 어린 나희도는 그걸 모르죠. 계속해서 엄마는 말합니다.

“잊으려고 피하려고 하는 내 노력을 비난하진 말아 줘. 그게 내가 버티는 방식이니까.”


그리고 아빠 기일이 됩니다.

나희도와 엄마는 아빠 산소에 갑니다. 아빠 산소에서 엄마는 나희도에게 말해요.

“너 다 크면 이야기하고 싶었어. 나 사실... 네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너무 그리워”


울라고 눈물을 쥐어짜줍니다. 드라마인 것도 알고, 울라고 만든 장면인 것도 압니다.

그래도 마음 아파요. 그래서 저는 꼬박꼬박 잘 웁니다.




나희도의 학교 펜싱부에 펜싱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이예지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펜싱이 너무 힘들고, 더 이상 재미있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코치(김혜은 배우)는 그만두지 못하게 합니다.

열심히 하지 않으니 실력이 늘지 않고, 실력이 늘지 않으니 재미없고, 그래서 관두고 싶어 한다고 말하죠.


코치는 대신 조건을 겁니다. 8강에 올라가면 펜싱을 그만둬도 된다고요. 열심히 노력하고, 꽤 잘하는데도 펜싱을 그만두고 싶으면 허락을 해주겠다는 거죠. 하지만 예지에게 8강은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입니다.


예지는 열심히 연습을 합니다.

마침내 8강으로 올라가기 위한 경기가 펼쳐집니다. 이 경기에서 이기면 펜싱을 그만둘 수 있습니다.

경기 장면이 나오는 동안 예상을 해봤습니다.

'이기든 지든, 열심히 했으니 "이제 펜싱이 좋아졌어요"라고 말하겠지?'


아니었습니다. 예지는 8강에 올라가고, 남은 경기를 기권하고 펜싱을 그만둡니다.


코치는 예지에게 말합니다.

“오늘을 꼭 기억해라. 새로운 기회를 어떻게 얻어냈는지 절대 잊지 마라. 힘들 때마다 생각해라. 그 시작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맞아요. 하지만 항상 맞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힘들 때 어렵게 쟁취한 시작점을 돌아보면, 초심으로 돌아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죠. ‘어떻게 시작한 일인데! 어떻게 들어온 회사인데!’라고 생각하면 버티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 조차도 내 마음을 혹사시키고 있는 것 같아요. ‘무조건 버텨야 해!’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조금 벗어나서 쉴 때도 필요하죠.


살다 보면 어렵게 얻은 기회가 꼭 인생을 바꾸는 것도 아니에요. 우연히 시작한 일이 평생의 일이 되기도 하고, 힘들게 노력해서 얻은 일을 그만두기도 하죠.

좋아하는 일,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해야 해요. 하지만 시작이 어려웠는지 쉬웠는지로 스스로를 옭아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상황마다 선택지는 다 다릅니다. 그리고 정답은 아무도 알 수가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해온 펜싱을 그만두는 게 누군가에게는 오답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답일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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