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기'를 기억하자

by 김은유

몸도 마음도 지칠 때 감사일기를 썼다. 힘들고 지치니 부정적으로만 보이고, 짜증도 늘어날 때였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매일 '감사하는 일' 세 가지를 적기로 했다. 그때 뭘 감사했었나.


O월 O일
1. 2차 보고서 까였음. 자극이 되었음. 감사해.
2. TFT 저녁 함께하였음. 감사. 심적으로 조금 편안해짐
3. 처음으로 삼겹살집 OOO 4층 야외에서 먹었음. 감사해


보고서가 까여서 기분이 나쁘지만 다른 팀원들과 저녁을 먹었다. 보고서만 머리에 맴돌았지만 감사일기는 써야 하니까, 보고서 까인 것도 감사해했다. 불평 대신 감사를 하니 조금 나아졌었다.


O월 O일
1. 지갑을 집에 놔두고 왔는데, 가방에 비상용 카드가 있어 지하철을 탈 수 있었음. 감사해
2. 치과치료를 받음. 덜 아프게 하는 것 같음. 감사해
3. 일거리가 늘어났음. 일할 수 있는 건 감사한 일이지. 감사해


가방에 비상용 카드를 넣어둔 내 자신을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


O월 O일
1. 맑은 봄 날씨. 감사해
2. 출근길 지하철에서 앉아서 출근함. 감사해
3. 내가 짜증 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인식함. 내 짜증을 내가 알 수 있어서 감사해.


정말 감사할 거리가 없는 날에도 뭐든 찾아했다. 고마울 거리를 찾다보면 주위나 마음을 둘러보게 되고, 하루를 자세히 관찰하게 된다. 그게 또 도움이 된다.



빠진 날도 있었지만, 한동안 감사일기를 꾸준히 썼다. 힘든 날에는 오히려 더 썼다. 다이내믹하지는 않지만 은근한 힘이 되었다. 하루를 버티는 힘이 되었다.




뭔가를 성취해도, 안주하면 안된다고 스스로 채찍질을 해왔다. 이 덕분에 성장했겠지만,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는 못했다.


성취를 했을 때 나에게 해 줄, 기뻐하면서도 안주하지 않는 말이 있었으면 했다. 고민해 보니 '감사합니다'였다. 감사에는 '내가 잘해서 기뻐.'라는 뜻과 '도와줘서 감사해요. 앞으로도 열심히 할게요.'라는 말이 함축되어 있다. 성취를 만족하면서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말이 '감사'다.



감사는, 기쁜 날에는 좋은 걸 나누어 기쁨을 늘어나게 한다. 마음이 넓어지고 풍요롭워진다. 힘든 날에는 별 일 아니라며 위로해주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마음의 빈곤에서 벗어나게 한다.




올리버 색스(Oliver Sacks)가 삶 마지막 2년 동안 쓴 에세이 네 편을 묶은 얇은 책 『고맙습니다(Gratitude)』의 일부분이다.


나는 마흔한 살에 내가 딱 죽을 줄 알았다.혼자 산을 오르다가 심하게 추락해서
다리가 부서진 때가 있었다.

나는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
다리에 부목을 댄 뒤,
팔로 몸을 떠받치면서 꿈지럭꿈지럭
산을 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어진 기나긴 시간 동안
내 머릿속에는 온갖 기억이 엄습해 왔다.
좋은 기억도 있고, 나쁜 기억도 있었지만, 대부분 감사하고픈 기억들이었다.

내가 남들로부터 받은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내가 조금이라도 돌려줄 수 있었다는데 대한 감사.

맑은 도 흐린 도 감사할 수 있지만, '감사한다'라는 마음 자체를 잊을 때가 있다. 잊지 않고 '감사합니다'를 떠올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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