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우리 집 셰프가 되었다

by 김은유

나는 우리 집 셰프다. 아이들이 그렇게 부른다. 육아휴직 후 끼니의 상당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요리는 집안일 중에서도 최상위 레벨이다. 기술과 힘, 시간관리, 재고관리 모두 필요하다. 이런 요리를 하면서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김영민 교수는 칼럼 ‘설거지의 이론과 실천’에서 ‘요리의 시작은 장보기’라고 했지만, 내 생각에는 요리의 시작은 ‘메뉴정하기’이다. 무엇을 먹을지를 정해야 재료가 있는지, 장을 봐야할지가 결정되고 요리가 시작된다. 메뉴정하기는 중요한 동시에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직장에서 ‘사서’ 먹을 메뉴정하기도 어려운데, 집에서 ‘요리해서’ 먹을 메뉴를 정하는 건 더욱 어려운 문제다.


“오늘 뭐 먹을까?”라는 질문은 많은 배려와 고민이 내포되어 있다. ‘혹시 회사에서 먹은 음식이라서 집에서 먹기 싫은 메뉴가 있을까, 며칠 전 먹었던 메뉴인데 또 먹어도 될까, 오늘따라 특히 먹고 싶거나 먹기 싫은 음식이 있을까,’라는 배려와 ‘집에 있는 재료로 가능한 음식일까, 재료가 없으면 마트 가서 사올 시간이 있나, 오늘은 좀 귀찮은데 간단한 음식으로 할까’라는 고민이 내재되어 있다.


요리를 전혀 하지 않을 때, 아내가 요리도 설거지도 안 해도 되니 메뉴정하기만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아무거나 다 잘 먹으니까, 아무거나 다 좋아. 음식 가리는 사람도 많다던데, 이런 남편이 어디 있어?”라고 쿨 하게 망발*을 했다. 인간에게는 직접 겪지 않아도 간접경험으로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던데, 공감커녕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망발이었다. 이제는 아내가 메뉴를 정해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 ‘망발’의 유의어 : 개소리, 헛소리, 허튼소리(네이버 국어사전)




요리할 때 노동의 대부분은 재료손질이다. 재료손질의 대부분은 ‘칼질’이다. 칼질은 귀찮고, 눈물 나고(양파), 힘들다(특히 당근). 요리할 음식에 따라 깍둑썰기, 채썰기, 나박썰기, 어슷썰기 등 방식도 다양하다. 음식에 맞게 재료를 손질하지 않으면 요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재료가 음식으로 변하는 연금술 같은 요리에는 반드시 귀찮은 재료손질이 선행되어야 한다. 요리는 하고 싶지만 재료손질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칼질은 약간의 노하우도 필요하지만 반복할수록 실력이 좋아진다. 머리가 알았다고 몸이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반복해서 몸에 익어야 한다. 칼질을 하다 보니 요리사처럼 ‘타다다다다다’는 아니지만 ‘또각또각 또각또각’ 정도의 리듬도 생기기 시작했다.


칼질이 늘었다고 생각한 어느 날, 심혈을 기울인 나의 두부가 대충 자른 아내의 두부보다 두께가 일정하지 않은 걸 보고 좌절했다. 쌓인 시간을 섣불리 뛰어넘을 수 없었다. 칼질은 단번에 잘할 수 없어서, 편법이 통하지 않는 정직한 장르라서, 익숙해질수록 뿌듯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조리에 들어갔을 때 중요한 건 ‘불의 세기’다. 음식을 처음할 때는 뜨거운 건 다 똑같다고 생각했다. 항상 가장 센 불로 요리하고, 늘 망했다. 불의 세기는 강하게, 중간, 약하게, 강했다가 약하게, 약했다가 강하게…… 음식과 때에 맞춰서 조절해야 한다. 불이 강해야 할 때 약하면 맛이 떨어지고, 약해야 할 때 강하면 타서 먹을 수 없다.


스테이크는 강한 불로 굽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약한 불로 바꿔줘야 맛있다. 강한 불로 음식을 할 때는 타지 않도록 기름을 많이 둘러줘야 한다. 팬케이크는 약한 불로 줄곧 익혀야 한다. 약한 불로 할 때는 들러붙지 않도록 바닥을 버터나 기름으로 살짝 코팅해줘야 한다. 빨리 익기를 기다리다가 마음이 급해져서 불을 세게 하면, 겉은 까맣게 타버리고 속은 덜 익는다. 지금까지 한 음식을 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 아니면 아까우니까 탄건 그냥 내가 먹는다.




음식을 해서 식탁에 내놓으면 ‘이제 내 새끼들, 내 가족들을 먹일 수 있겠군’하는 안도감이 든다. 원시시대 때 사냥에 성공하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다. 먹는 사람이 맛있게 먹어주면 기분이 좋다고 하는데, 나는 먹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남’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는 맛있게 먹어주는 게 좋지만, ‘가족’이 먹을 때는 싹싹 다 먹을 때가 좋다. 아이들이 맛을 보고 ‘엄지 척!’을 할 때도 좋지만, 엄지를 지평선과 평행에 맞추고 “미들(middle)!”이라고 해도 음식을 다 먹었을 때가 더 좋다. ‘이 녀석들이 살아갈 영양소를 채웠구나’하는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어둑어둑한 새벽, 주방에 불을 켠다. 약간 졸리고 피곤해하며 냉장고 문을 연다. 하품과 함께 냉장고 안을 쭉 훑어보며, ‘오늘은 뭐 해 먹이지’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우리 집 셰프가 되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이 대부분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