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휴가 로망은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는 것이다. 오롯이 나만의 휴가를 보낼 수 있다면 책을 쌓아놓고 뒹굴기, 책 읽기, 꾸벅꾸벅 졸기를 하루 종일 반복하고 싶다.
하지만 막상 휴가 때면, 일 년에 며칠밖에 안 되는 황금 같은 휴가를 허비할 수 없었다. 어딘가를 가야 했고 무언가를 해야 했다. 여행일 때도 있었고, 멀리 사는 가족들을 만나는 시간일 때도 있었다.
여행을 가게 되면 로망의 부스러기라도 잡으려고 꼭 책을 갖고 갔다. 모두가 잠든 밤에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으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잠깐 보는 책이 재미있을수록, 책을 실컷 읽을 수 없는 휴가가 아쉬웠다. 그렇게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얻기는 요원한 줄로만 알았다.
코로나가 한창 유행인 시기에, 휴가 겸 자가격리를 하게 되었다. 어디를 갈 수도, 누구를 만날 수도 없었다.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시간과 공간! 오랜 시간 가져온 나의 로망을 실현하기에 완벽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하필 당시에 너무 지쳐있었다. 격리한 방은 책을 보기에는 너무 불편했고, TV를 보기에는 매우 편했다. 넷플릭스에는 미뤄둔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너무 많았다. 어쩔 수 없었다. 로망을 뒤로하고 누워서 TV를 정주행 하는, 출근하는 날보다 책을 더 적게 읽는 휴가를 보냈다.
보람찬 휴가였다.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서 그동안 휴가 로망을 실현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책을 실컷 읽고 싶었으면, 아내, 아이들, 가족에게 “나만의 휴가를 가겠어!”라고 선언하면 되었다. 돌아오는 불평, 불만을 감수하고, 대신 “내가 한 달간 집안일을 다 할게” 같은 지키지 못할 공약이라도 내세웠어야 했다. 후폭풍들을, 감당해야 할 일들을 기꺼이 감수하면 충분히 로망을 실현할 수 있었다.
귀찮음, 불편함, 용기를 감수하지 않았을 뿐이면서, '여건상 어쩔 수 없었다’고 푸념한다. 너무 지쳐 만사가 귀찮을 때도 있다. 지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달리다간 진짜 쓰러진다. 힘들 때는 쉬어 가야 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을 때,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못하는 것"인지, 단지 무언가를 감수하지 않아서 "안하는 것"인지는 생각해보려 한다. 다음 번에는 감당해야 할 일들을 감수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육아휴직을 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 책 읽기를 시도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하루 종일 한 가지에 집중하기는 피곤한 일이었다. 로망이 노동이 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의 휴가 로망과는 작별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