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을 하고 미국에 와서도 기상시간은 5시 40분쯤이었다. 다만, 회사 다닐 때는 출근을 준비했다면, 이제는 아이들의 도시락을 준비했다. 두 아이들은 유치원(kindergarten)을 다니기 시작했다. 미국 학교는 유치원인 K학년을 포함하여 음식을 먹는 시간이 오전 간식시간(snack time)과 점심시간(lunch time)이 있었다. 아이 한 명당 도시락 두 개, 총 네 개의 도시락을 싸야 했다. 요리는 처음이라 손이 느렸다. 도시락을 싸다가 마무리가 안 되면 대충 빵을 몇 개 집어넣었다.
도시락을 다 싸면 아이들을 깨웠다. 스쿨버스 정차 시각은 7시 19분. 하지만 이 놈의 버스는 먼저 도착하면 기다리지 않고 가버렸다. 지키지도 않을 거면서 왜 정차 시각을 ‘19분’이라고 1분 단위로 알려줬을까. 20분쯤이라고 해도 될 텐데. 안전하게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서 매일 7시 10분까지 정류장으로 갔다. 매일 아침 아이들은 잠투정과 함께 옷을 입었고, 눈을 반만 뜬 채 학교에 갔다. 학교(유치원) 수업은 7시 50분에 시작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아내를 학교에 데려다줬다. 아내의 학교는 왕복 50분 정도 거리였다. 아내를 데려다주고, 영어수업을 듣고, 잠깐 집안일을 하면, 벌써 아이들이 집에 올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학교 갔다가, 돌아서면 집에 온다'는 말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아이들은 오후 2시 40분에 스쿨버스에서 내렸다. 이제부터 아내가 올 때까지 혼자 감당할 육아 타임이다. 한국에서는 태권도, 만들기 공방 같은 학원들을 다녔다. 미국에서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아무것도 배우고 싶어 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아빠와 한 순간도 떨어져 있으려 하지 않았다. “아빠”를 부르는 소리가 시간당 수백 번은 되는 듯했다. (고맙다, 얘들아)
저녁때쯤 다시 아내를 데리러 갔다.아이들은 차 타는 시간을 지겨워했고, 투정은 아빠에게로 왔다. 밤에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미국 엄마들의 도시락 유튜브를 보며 빨래를 개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행복하지만 힘들었다. ‘이런 시간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야. 일할 때는 가질 수 없는 시간이잖아.’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래 보았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것이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도 수시로 들었다. 어느새 최대고민은 ‘아이들 도시락 메뉴’와 ‘아이들과 시간 보내는 방법’이 되었다. 하루 종일 바쁘고 힘든데,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도, 어떤 결과물도 없었다. 가끔 회사 동료에게서 전화가 오면 전화를 끊고 싶지 않았다. 카톡이 한 줄 오면 다섯 줄로 답했다. 시차 때문에 새벽에 온 전화도 반가웠다. 회사 동료들과 이야기할 때, 그나마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마저도 조금씩 뜸해졌다.
인간은 자기 합리화에 능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정말 필요로 하는 곳은 집이라는 생각을 했다. 먹는 것, 노는 것은 인간의 본질에 가까우니 아이들의 삶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나는 집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람이야!' 이때는 이렇게라도 스스로를 토닥여줘야 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자기 합리화로 비롯된 생각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지금처럼 놀기만 해도 애들이 제대로 배우고 적응할 수 있을지, 도시락을 싸다가 급하면 대충 빵만 넣어줘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아이들에 대해 의논하고 싶었지만, 아내는 바빴다. 회사에서의 기획안은 토론과 결재 과정을 통해서 조정되고 검증되었지만, 집에서의 아이들 교육은 온전히 나만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결과는 아이들이 커야만 알 수 있었다.
한탄할 곳도 없고, 칭찬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몸이 힘드니 날카로워졌고, 나만의 시간이 없으니 숨 쉴 구멍이 없었다.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도 컨디션이 좋을 때는 행복한 소리였지만, 힘들 때는 소음이었다. 이 상태로 계속 가는 건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좋은 게 아니었다.
과부하를 분산시키기로 했다. 아이들을 설득해 점심은 학교급식을 먹도록 했다. 조금씩 영어를 알아들어서 방과 후 학교를 보냈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며 영어가 빠르게 늘었고, 내 몸과 마음은 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 교육에 있어서는 모든 아이들이 우리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해서 걱정보다는 믿음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스스로에게는 ‘오늘도 수고 많았다’고 ‘잘하고 있다’고 위로와 칭찬을 해주기로 했다.
10개월이 지났고 처음과는 많이 바뀌었다. 많이 적응했고 편안해졌다. 더이상 '지금이 감사한 시간'이라고 억지로 상기시키지 않아도 된다. 물론 오늘도 여전히 아이들과 싸우고 소리를 지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제는 힘들 때에 깡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방법을 찾고 시간을 쪼개서 쉬려고 한다. 어떻게든 뚫고 나가야지 생각한 적도 많았지만, 현재로서는 휴식이 더 현명한 방법인 듯하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하지만 힘든 시간’이 아니라, 오롯이 '행복만 있는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