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와서 한동안 아이들에게 “한국이 좋아? 미국이 좋아?”라고 질문하곤 했다.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가늠하려는 질문이었지만, ‘한국’이라고 답해도, ‘미국’이라고 답해도 마음이 편할 수 없는 바보 같은 물음이었다. 매번 다른 이유로 ‘한국’이라고 답하던 아이들이 어느 날 ‘미국’이라고 답을 했다. 이유를 물으니 한국 사람은 화를 내고, 미국 사람은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자세히 물었더니, 무언가를 가르칠 때 아빠, 엄마, 운동이나 악기를 가르치는 한국인 선생님들은 화를 내는데, 미국 선생님은 화를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기서 약간 억울한데, 정말 '화'까지는 아니었다. 가족에게 운전을 가르칠 때의 언성보다는 분명히 낮았다고 확신한다.)
이해가 되었다. 우리는 9개를 잘하고 1개를 못하면, 못한 1개를 잘하게 하려고 여념이 없는데, 많은 미국인들은 조금만 잘해도 “Perfect!” “Excellent!” “Beautiful!”을 외친다. 아주 큰 리액션과 함께.
미국 한 대학의 사회학 강의에서 미국 학생과 한국 학생을 비교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너는 똑똑하냐(Are you smart?)’를 비롯한 여러 가지 교수의 질문에 미국 학생은 전반적으로 잘한다는 어조로 대답하고, 한국 학생은 공부를 잘하고 싶지만 모르겠다고 대답을 한다.
한국 학생이 겸손하게 말을 했지만, 알고 보니 높은 학점으로 대학 4년 과정을 2년 만에 조기 졸업할 예정이라는 말에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이 크게 박수를 친다. 강의 내용은 서양 문화는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자부심을 통해 성장하지만, 동아시아 문화는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잘하지 못하는 점에 초점을 맞춰 자기비판을 통해 성장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겸손하지만 뛰어나다는 영상이었다.
처음 이 영상을 봤을 때 우리나라 학생들이 훌륭하다고 자부심만을 느꼈었다. 다시 이 영상을 떠올렸을 때는 우리나라의 아이들에게, 언젠가 아이였던 어른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잘하면서도 남에게 다그침을 받고 스스로 채찍질해오진 않았는지, 만족보다 불만족으로 행복보다 불행으로 삶을 채워온 건 아닌지 마음이 무거웠다. 만족해하고 뿌듯해한 게 언제였던가.
경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만족하지 않고, 한 발이라도 앞서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혹독한 경쟁이 만들어낸 이 노력이 우리의 성장에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개개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과연 옳기만 한 방법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성장이라는 이유로 늘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다그치는 것이 몸에 배서, 만족하고 행복해야 할 일상에서도 즐거워하지 못할까 봐 우려스럽다.
골프선수 김주형은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의 기록(20세 9개월) 보다 어린 나이(20세 3개월)에 PGA 2승을 달성했다. 김주형 선수는 평소에 자신의 공을 치고 이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와! 이것보다 더 잘 칠 수 없어요!” 그는 첫 홀에서 쿼드러플 보기를 한 최악의 상황에서 PGA 첫 번째 우승을 거뒀다. 두 번째 우승은 4라운드 내내 정해진 타수를 한 번도 넘지 않는 ‘노보기 우승’이었다. 100년 동안 3번 나왔다고 한다. 순간을 만족하고 음미하면서도, 한 발 더 정진해 나가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